적당한 놀이 시간 달성을 위한 대화와 시스템 보조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개구쟁이 뽀로로~"
지금은 달라졌지만 뽀로로 2기까지의 오프닝 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뽀로로도 아는데 저희라도 왜 모르겠습니까. 과연 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노는 것도 재밌는데 그걸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요? 옛말에 누울 자리를 봐가며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가령 저희 부부 역시 애가 커가면서 한 번씩 덩어리 자유시간을 구하고자 서로에게 적당히 다리를 뻗곤 합니다. 근데 그 이유는 거의 같습니다. 각자의 친구들이랑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저희도 그런데 어린 딸은 오죽하겠습니까. 이런저런 방과 후 활동을 마친 주중의 저녁시간과 주말의 오후시간이 딸에게는 항상 짧기만 합니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항상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놀아도 놀아도 항상 부족합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수다 떨고 식사까지 하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돌아올 시간입니다. 그렇게 아내의 놀이 시간도 '휘리릭', 딸의 놀이 시간도 '휘리릭', 저 역시 평일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시간도 '휘리릭'하며 지나갑니다. 그렇게 '휘리릭' 하면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의 순간입니다. 저희 모두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 각자의 역할을 하러 집을 나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쉽지만 지금 하는 놀이를 끝내고 씻고 자야 합니다.
적당히 해야 다음에 또 놀 수 있습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심지어 노화 방지와 건강한 정신유지에도 탁월한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랍게도 너무 많이 하면 몸을 상하게 합니다. 달리기가 좋다고 일주일 내내 달리면 다리에 탈이 날 수 있습니다. 근력을 키우겠다고 계속해서 웨이트 증량을 늘리다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하물며 몸에 좋은 운동도 이런데 노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놀아야 탈이 없다는 걸 말이죠.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 치고 저녁 먹고 술까지 한잔하고 이른 새벽녘 집으로 들어가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내의 등짝 스매싱 혹은 그 이상의 UFC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근데 반대가 되면 이상하게 제가 당한 만큼 뭐라고 못하는 상황도 있기는 합니다)
게임은 일찌감치 이런 관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2024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게임에 중독되면 뇌 기능이 떨어진다'. 근데 그 기준이 생각보다 너무 높습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1주에 30시간 이상 게임을 해야 그렇다고 합니다. 자녀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뭐랄까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매일 같이 자기 자녀가 4시간 이상씩 게임만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까요?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위 상황이 벌어지면 왠지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근데 찾아보면 이런 연구 자료가 꽤 있습니다. Jane McGonigal은 'Reality is Broke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참고로 그녀는 게임에 굉장히 우호적인 인물입니다.
Practical Advice for Gamers (p365)
게이머를 위한 현실적인 조언
1. Don't play more than twenty-one hours a week.
1. 주당 21시간 이상은 플레이하지 마세요.
Studies shows that games benefit us mentally and emotionally when we play up to three hours a day, or twenty-one hours a week. (In extremely stressful circumstances - such as military deployment - research shows that gamers can benefit from as many as twenty-eight hours a week.)
최대 하루 3시간까지는 게임이 정신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군사작전행위와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의 경우 최대 주당 28시간 까지는 괜찮다는 결과가 있긴 합니다.)
But for virtually everyone else, whenever you play more than twenty-one hours a week, the benefits of gaming start to decline sharply. (This is especially true for children and adolescents.)
그러나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경우, 주당 21시간 이상을 플레이하면 게임이 주는 효능은 급격이 사라집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들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Source: Gentile, Douglas, et al. "Pathological Video Game Use Among Youths: A Two-Year Longitudinal Study." Pediatrics. Published online January 17, 2011. http://pediatrics.aappublications.org.content.early/2011/01/17/peds.2010-1353.abstract)
By the time you're spending forty hours or more a week playing games, the psychological benefits have disappeared entirely and are replaced with negative impacts on your physical health, relationships, and real-life goals. So always strive to keep your gaming in the sweet spot: seven to twenty-one hours a week.
주당 40시간 이상을 플레이할 경우, 정신적인 효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신체적 건강, 인간관계 그리고 현실세계의 목표달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니 부디 주당 7시간에서 21시간까지만 플레이하세요.
예전의 저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제 딸과 크게 다르게 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오락실의 스트리트파이터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20대에는 당구도 치고, 그 당시 폭발적인 인기였던 스타크래프트를 미친 듯하며 놀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저녁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PC방 야간 정액제를 밥 먹듯 끊었습니다. 그렇게 저희의 새벽은 지난 판의 복기와 다음 판의 전략을 짜는 것과 더불어 컵라면으로 마무리되길 반복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한 때였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놀려고 해도 체력이 안돼 못 놉니다.
한때 푹 빠졌고, 또 빠져나왔습니다. 저희가 특별해서 또 인내심이 남달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저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큰 확률에 저희도 포함돼 있었던 것뿐입니다. 즉, 평범했기에 그랬던 거죠.
딸 역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놀이에 빠지고 나오기를 반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저희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저희의 입김이 닿는 면적은 줄어들겠죠. 나중에 커서는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겁니다. 다만 기대하는 건 그 과정이 저희와 대화를 통해 이뤄졌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부모-자녀 간의 약속을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적인 보조는 없을까요?
'해빗: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의 저자 웬디 우드는 말합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란 참 힘든 일이라고.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건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요. 대신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자제하거나 인내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바로 그 습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점으로 꼽은 1단계가 '늘 동일하게 유지되는 안정적인 상황을 조성'하라는 겁니다.
영국은 온라인게임 상 청소년보호를 위해 AADC (Age Appropriagte Design Code)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지킬게 꽤 많아 보이지만 의무사항은 사실 단 한 가지입니다. 18세 이하의 이용자에게는 회사가 제공하는 몇몇 서비스의 기본값을 'off' 즉, 꺼야 한다는 겁니다. 채팅 기능도, 친구 추천도, 맞춤형 상품 제안도, 스마트폰에 뜨는 앱의 알람 기능도, 광고를 위해 쿠키를 수집하는 것 등도 모두 기본적으로 꺼놔야 합니다. 이용자가 이 기능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가서 'on' 시켜 줍니다. 물론 바로 해주진 않습니다. 청소년 계정을 부모 계정의 Parental Controls (i.e. 자녀 지킴이) 기능에 연동해 바꿔줘야 합니다. AADC는 아는 것 같습니다. '늘 동일하게 유지되는 안정적인 상황'인 기본값을 이렇게 off 시켜 놓음으로써 뭔가를 바꾸려면 에너지가 든다는 것을 말이죠. 물론 완벽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끄덕여집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보조할 수 있는 기능으로서 말이죠.
적당한 게임 놀이 시간은 가정마다 모두 다를 겁니다. 허용되는 시간이 다른 만큼 그 이유도 모두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자녀가 원한다고 모든 걸 해줄 수 없는 법입니다. 각 가정이 모두 다르더라도 자녀가 잘 커가길 바라는 마음은 같기 때문입니다. 게임에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최대한의 게임 허용시간은 둘 다 같습니다. 근거도 과학적입니다. 그들의 연구결과로 저희는 그 '선'을 알았습니다. 만약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면 해결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더라도 저희는 경험으로 압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있을 거란 점을요. 이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적당한' 수준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적당한 수준을 찾는데 대화는 필수요, 시스템(Parental Control)은 보조일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