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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콘텐트는 대부분 유료다

돈 주고 살 것인가 아니면 이용하면서 계속 돈을 낼 것인가

by 이싸라

딸은 점점 커갑니다. 커갈수록 다양한 친구들을 만납니다. 관계가 다양해지는 만큼 놀이도 다양해집니다. 놀이는 두 가지입니다. 밖에서 뛰어놀든지 아니면 가만히 앉아서 도구를 갖고 놀든지.


대부분의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제 딸 역시 유치원에서 초등 2년 정도까지는 밖에서 노는 게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고 온 날엔 새로운 바깥놀이를 배워오곤 했습니다. 혹시 ‘사탈’이란 놀이를 들어보셨나요? 애들 사이에서는 ‘지탈’이라고도 하는데요, 놀이터에서 하는 탈출 놀이입니다. 사탈은 사이다탈출의 줄임말이고, 지탈은 지옥탈출의 줄임말이죠. 딸에게 물어봐도 왜 이름이 사이다탈출인지는 모르겠답니다. 그냥 자기들끼리 특별한 의미 없이 그렇게 부르는 거라 생각합니다. 게임은 단순합니다. 술래가 한 명 있고, 나머지는 도망 다니는 이들입니다. 이 게임은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과 사다리 그리고 계단으로 구성된 커다란 구조물에서 이뤄집니다. 눈을 감은 술래가 이 공간 안에 있는 다른 친구들 중 한 명이라도 잡으면 게임이 끝납니다. 제 딸이 아마 7살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요, 주말마다 저한테 집 앞 놀이터에서 ‘사탈’을 하자고 얼마나 졸랐는지 모르실 겁니다. 이렇게 뭔가 하나 배워오면 저한테 옵니다. 놀고 싶은 거죠. 친구들이랑 너무 재밌게 했으니까요.


이제는 좀 컸다고 바깥놀이보다는 실내에서 하는 놀이를 배워올 때가 더 많습니다. 빙 둘려 말할 필요 있나요. 바로 유튜브 콘텐트와 온라인 게임입니다. 제 딸이 집에서 쓰는 패드가 있습니다. 처음에 이 패드에는 유튜브앱도 게임도 없었습니다. 2학년에 올라간 지 조금 지났을 무렵, 자기가 갖고 놀던 슬라임에 대한 유튜브 채널을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이랑 놀다가 같이 봤는데 신세계였답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슬라임을 요리조리 갖고 노는 유튜버 언니가 제 딸에게는 연예인이었던 거죠. 검색해 같이 봤습니다. 제가 봐도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화면에는 슬라임과 유튜버의 손과 목소리만 나옵니다. 나중에 친구들과 노는 걸 보면 자기들끼리 손만 비춰 슬라임을 갖고 노는 걸 찍고 보고 까르르 웃고 그렇게 즐거울 수 없습니다. 이제는 게임앱으로 확대됐습니다. 제 딸은 친구들의 수만큼 새로운 게임을 접합니다. 학교나 동네 친구들과 놀 때마다 새로운 뭔가를 발견하고 오는 듯합니다. 자녀의 나이대가 비슷한 제 친구 가족들과 종종 1박으로 여행을 갈 때 있습니다. 갔다 온 다음 날에는 거의 저한테 옵니다. 바로 새로운 게임앱을 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매우 단순한 게임입니다. 손가락을 패드에 대고 캐릭터를 요리조리 움직여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까지 가면 끝입니다. 이런 게임들은 거의 대부분 공짜입니다. 이젠 대부분 익숙하실 겁니다. 인터넷에서 무료라면 저희가 반드시 해야 할 게 있다는 걸요. 네, 돈대는 사람들을 만족시켜 드려야 합니다. 바로 그들의 광고를 봐야 하는 거죠. 이런 게임들의 공통점은 한판 할 때마다 '인게임 광고'를 무조건 봐야 한다는 겁니다. 마치 유튜브 유료회원이 아니면 영상 사이사이에 '광고'를 봐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루는 주말에 열심히 패드 위에서 손을 놀리고 있는 딸을 보며 물었습니다. "딸, 이거 한판 할 때마다 광고 뜨는데 귀찮지 않아? 한판 할 때 시간도 금방 끝나잖아. 좀 불편한 것 같은데, 괜찮아?" 딸은 한 손으로 앱을 내렸다 올렸다 하며 자연스럽게 광고를 끄고는 대답합니다. "처음엔 불편했는데, 이렇게 내렸다 올리면 광고 금방 꺼지게 할 수 있어. 근데 좀 불편하긴 해"


역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파세대인가요. 전 사실 제 딸의 적응력에 흠칫 놀랐습니다. 또 뭔가 대견하기도 했고요. '그래, 너희들은 언제든 방법을 찾아내는구나'. 하지만 사실 이 얘기의 반전은 지금부터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전 딸의 어깨너머로 그걸 보고야 말았습니다. 딸이 모든 광고를 그렇게 바로 내리진 않는다는 걸요. 특히 게임 관련 광고는 끝까지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중 관심이 가는 게임은 저한테 물어올 때도 있습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견물생심입니다. 눈에 보이니 마음이 갔나 봅니다.



좋은 게임이란 곁에 있는 이들과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여야 합니다.


최인철 교수는 행복을 연구합니다. '굿 라이프'에서 그는 행복한 삶의 기술 10가지를 열거합니다. 하나같이 끄덕이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그중 제가 더 끌린 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돈의 힘보다 관계의 힘을 믿는다'의 일부분입니다.


“일련의 연구에서 우리가 발견한 사실은 행복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자신의 카트에 집중적으로 쓸어 담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금전적 이득'을 주로 담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행복한 사람들은 친밀한 사람들이 주는 위로를,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돈이 주는 위로를 찾았다.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친구와의 저녁 식사보다는 길에서 우연히 돈을 줍는 것을 선호했다. (p110)”


다음은 '돈으로 시간을 산다'입니다.


“시간을 벌어주는 데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가사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끔 가사도우미를 쓰거나 운전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등, 자신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행복한 사람의 특징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는 소득 수준과 상관이 없었다. 다시 말해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이런 소비를 더 많이 할 수는 있지만, 시간을 벌어주는 소비가 주는 효과는 소득 수준과 무관했다. (p123)”


흔히 얘기합니다. 관계란 쌓아가는 거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딸과 아내와 좋은 관계를 쌓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 만무합니다. 차곡차곡 시간의 무게를 쌓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즐거운 기억은 쌓여갑니다. 그래야 다음에도 같이 놀고 싶다는 마음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니깐요. 혼자서 하는 게임보다는 저랑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딸에게 소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자, 이제 딸에게 새로운 게임을 보여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가족(혹은 친구)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딸의 시간도 벌어줄 수 있는 그런 놀이로 말이죠.


아무 일정도 없는 일요일 아침, 저희 가족은 모처럼 늦잠을 잤습니다. 침대 위에서 꼼지락 하는 딸을 보며 닌텐도 스위치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혹시 수박게임 알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딸은 곧바로 화색을 띠며 안다고 대답합니다.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 돌았나 봅니다. 그 자리에서 온라인샵에 접속했습니다. 가격은 겨우 2,500원 참 착합니다. 곧바로 결제해 딸에게 건넸습니다. "우리 수박 만들기 게임 같이 해볼래?"


게임의 룰은 간단합니다. 같은 과일을 두 개 합치면 다음 과일이 됩니다. 그렇게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면 최종 보스인 수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룰은 간단한데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테트리스처럼 현재 놓여 있는 과일을 보고 다음번 과일의 위치를 정해야 합니다. 계속 고민해서 플레이해야 하기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수박까지 갈 듯 말 듯 자꾸만 실패합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딸을 보며 물었습니다. "딸, 광고 없으니깐 좋지?" 딸이 대답합니다. "우와, 닌텐도에 2,500원짜리 게임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광고 없으니깐 너무 좋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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