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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하면 나중에 '못'합니다.

프롤로그: 자녀와 잘 놀기 프로젝트 비긴즈

by 이싸라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Yang Liu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과거와 현재의 차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의 이런 관심으로 만들어진 책이 바로 ‘Today meets yesterday’입니다. 이 책은 총 72가지 주제로 간단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그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기술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책은 어느 한쪽이 더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차이점을 그저 간단한 그림을 통해 보여줄 뿐이죠. 하지만 보다 보면 자연스레 비교하게 됩니다. 아날로그의 과거와 디지털의 현재를 말이죠. 그러다 보면 어느덧 과거의 로망을 추앙하기도 합니다. 제가 바로 그 경우입니다. "그래, 맞아. 예전이 훨씬 더 인간적이었어. 이게 바로 사람 냄새지. 암, 이렇게 사는 게 진짜 삶이지"를 연신 외칩니다. 미리 고백하자면 인간적이란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을 동경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특히 ‘친구와의 만남’을 비교한 대목에 이르면 그 생각이 극에 달합니다. "애들은 역시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게 최고지". 책은 친구와 만나는 장면에서 현재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각자 모바일과 패드를 들고 보고 있는 장면으로 말이죠. 반면, 과거는 다릅니다. 서로 테이블에 두런두런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 역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이 한 장면으로 많은 것을 일반화합니다. 마치 제 속마음을 조금 들킨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은 쟤(온라인)보다 얘(오프라인)를 좀 더 좋아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제 선입견을 말이죠.


하지만 이내 예전의 제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균형을 맞춥니다. 고백하자면 초등학생 시절 오락실에 빠져 살던 저는 어머니께 자주 혼이 났습니다. 방과 후 틈만 나면 ‘스트리트파이터’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이 동네 저 동네 원정도 다녔습니다. 새로운 상대를 꺾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말이죠. 분명히 많은 시간을 오락실에 쏟아붓긴 했지만 당시의 전 억울했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잘할 건데 왜 이리도 간섭을 많이 하느냐는 생각에서요. 아니나 다를까 전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오락실을 끊었습니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 마냥 ‘스트리트파이터’를 끊었습니다. ‘스트리트파이터’를 하지 않는 오락실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 길로 오락실 출입도 끊었습니다. 이럴 수가. 역시 전 한다면 한다는 대단한 아이였던 건가요? 도대체 제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요?


저는 온라인게임/서비스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규제와 정책을 다루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업무에 깊이를 더해가던 과정에서 예전에 잊고 지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뜯어말려도 주야장천 갔던 오락실을 어떻게 끊었는지에 대해 말이죠. 온라인게임 과몰입에 대해 다룬 그 논문은 대다수 (90% 이상)의 학생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를 자료를 통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최근에 출판된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p284)’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전 그저 대다수의 캐주얼 게이머 중 한 명이었던 거죠. 제가 특별해서 그런 게 아니었던 겁니다.


저는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아직 초등학생입니다. 그렇기에 이 친구의 놀이 시간 대부분을 저와 함께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 딸도 뭐 별 수 있나요. 그중 한 명입니다. 밖에서 놀 때도 있지만 집 안에서 놀 때도 있습니다. 당연히 놀이 중에서는 온라인게임도 있습니다. 패드로 하는 것, 콘솔(닌텐도 스위치 등)로 하는 것 등 다양합니다. 분명한 건 게임을 즐기는 제 딸의 표정이 흥에 겨워 싱글벙글한다는 겁니다. 저희 가족 역시 주위에서 보는 흔한 가족 중 하나입니다. 즉,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 겪는 비슷한 문제가 저희 집에서도 일어납니다. 온라인게임과 관련한 크고 작은 각종 갈등 역시 그 문제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친구가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쥐고 게임을 하려 할 때마다 다짐합니다. 순간순간 저도 모르게 '욱'하는 상황을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기 역시 기도합니다. 그 시간이 저도 이 친구도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기를 말이죠. 아니, 그저 놀이인데 이런 다짐까지 왜 필요하냐고요?


전 제 딸과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리고 즐겁게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 길을 닦아야 합니다. 무조건 오냐 오냐는 답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안'하면 나중엔 '못'한다는 겁니다. 자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존중 없이 그저 컨트롤하려고만 하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좋을 리 없습니다. 저는 제가 직업인으로 밥 벌어먹고 있는 이 산업군이 좋습니다. '놀이'라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다루고 있으니깐요. 전 딸과 함께 즐기는 게임이 좋습니다. 반면 자신의 일상을 오랜 기간 내팽개치고 게임만 죽어라 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아니, 싫습니다. 그것이 비단 공부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생인 제 딸이 숙제를 하기 위해 매일마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것도 싫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초등학생인 이 친구가 푹 자는 것이 더 중요하니깐요.


전 지금부터 딸과 잘 놀아서 앞으로도 잘 놀고 싶습니다. 목표가 창대한 만큼 저 역시 부모로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라인게임에 대해 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사랑합니다. 알기 위해 정리를 했습니다. 지금껏 온라인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며 알게 된 내용과 딸을 키우며 경험한 내용을요.


이제부터 그 내용을 여러분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과정은 이렇습니다. 우선 게임 세상에 존재하는 이슈를 짚어봅니다. 또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다룰 겁니다. 해결해야 되는 것이 있으면 2가지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자녀와의 대화가 가진 힘입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 약속하고 신뢰를 쌓지 않으면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약속한 부분을 잘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적 장치가 있다면 같이 소개합니다.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은 과도한 게임플레이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 상당한 해를 입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건 제 영역 밖이니깐요.

(*주의!! '행복의 나라'로 가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고 될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그럼 떠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어디로요? '자녀와 함께 파헤치는 온라인 게임 세상'입니다. 어디부터 파헤치냐고요? 우선 게임부터 깔아야 뭐라도 얘기할 게 있지 않겠습니까. 자, 그럼 우선 게임부터 깔아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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