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귀하게 하라

진짜는 귀하다.

by 지수연

기업에서 채용 청탁 비리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있는 분들께서 귀한 본인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덜 귀한 남의 자식들의 취업을 방해했다는 건데, 누군가는 ‘그런 더러운 일들 벌어진 게 하루 이틀인가’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삼산체육관역 화장실에서 열심을 다해 힘을 주고 있는데 옆 칸과 어딘지 모를 칸에서 두 아주머니의 대화가 들렸다. '전 세계 화장실 중에 우리나라 화장실이 제일 깨끗한 거 알아요 언니? 젊은 애들이 뭘 몰라서 저러는 거지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란데 난리들인가 몰라.' 장을 비웠는데도 장이 안 비워진 찝찝한 느낌이 든다. 나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젊은 애들이 뭘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깨끗한 화장실 부심으로 살기 힘들다는 젊은 애들을 공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내 앞가림 하기에도 팍팍한데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더욱 심란한 밤, 지인에게 우울함을 토로했더니 '내가 그럴 때마다 읽는 기사야'하고 링크 하나가 돌아온다. '진짜는 귀하다, 나를 귀하게 하라' 라는 제목의 영화배우 최민식 인터뷰 기사였다. 심드렁하게 제목을 지나쳐 무심히 읽어내려간 본문에는 특이하게도 위로를 담지 않은 위로가 가득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나의 밑바탕에 있는 정서는 연민인 것 같다. 모두가 불쌍하다. 세상이 불쌍하고, 그 안에서 제각기 먹고살겠다고 바둥대는 사람이 불쌍하고, 나쁜 놈이든 좋은 놈이든 뚝 떨어져서 보면 모두가 다 측은하다. 나도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영화를 합네, 뭐를 합네 하면서 더운 날 이게 뭔가. 삶 자체가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삶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지랄 같나.


아, 뭔지 모를 울컥함이 올라와 같은 문단을 다시 읽고 또다시 읽었다. 세속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 역시 세상에 대한 연민이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다시 일어날 희망이었다. 가진 것이 없음에도 좌절보다 세상에 대한 연민을 더 많이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내가 조금 기특해지는 순간. 그제야 인터뷰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진짜는 귀하다. 나를 귀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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