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가 없어 특별히 짬을 내었다. 대단하리만치 많은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스케줄을 정리했다. 해야 하는 일과 꼭 해야 하는 일 사이에 기어코 시간을 쪼개 넣어 노트북을 펼치고 앉았는데, 아 왜일까. 나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조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무엇을 하겠다고 짬을 낸 건가.
사실은 알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은 나만의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할당되어야 하는 관심까지 다른 무언가에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때 인간은 속된 말로 멘탈이 나간다. 이런 순간 한낱 소시민이 무얼 할 수 있겠나. 나는 죽은 생명을 살릴 수도, 거대한 목돈을 뚝딱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결국은 그다지 없는 몇 가지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언제나 '치부하기'다.
열댓 살 즈음 친구와 목욕탕을 갔다. 등을 밀어주고 바나나 주스를 하나씩 사 먹고는 밖으로 나와 알몸으로 살랑살랑 머리를 말렸다. 거울을 보고 서서 둘이 함께 드라이기 박스에 동전을 추가하던 바로 그 타이밍, 검은 사람 하나가 바깥문을 밀고 들어왔다. 한 눈에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술이 잔뜩 취한 아저씨였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어느새 친구는 드라이기를 내동댕이치고 사라졌다. 나는 위잉거리는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카운터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캐비닛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숨어있던 친구는 한참 후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욕을 하며 울었다. 나도 울어야 하나 싶었지만 왜 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울지 않았다. 친구는 멀뚱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야, 너는 왜 안 울어. 너 이상해.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일이 없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재수가 없었고 결국 그 일은 벌어졌다. 나는 시간을 돌리는 방법을 모른다. 어쩔 것인가. 그런 순간 나는 늘 치부하기가 발동된다. 낯선 주정뱅이가 내 알몸을 본 것이 나에게 상처로 남을 만큼 중요한 일인가. 물음표가 뜨고 NO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단순하게 치부해버린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살다 보면 참 별 일이 다 있어. 마침표를 찍으면 정말로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벌어진 사건을 자꾸만 곱씹어 봤자 남는 것은 장기 기억 장치로 넘어간 상처와 불안뿐. 나에게 득 될 것은 없다.
열심히 세상을 치부하며 살아왔지만 나라고 마냥 태평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면 아주 오래전에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을 것이라 확신한다. 인생의 방향이 적어도 구십도는 틀어졌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저쪽의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안타까움에 가슴을 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테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매일을 치부하며 살아간다. 갈수록 두툼해지는 삶의 무게에 마음이 강퍅해져도 기어코 노트북을 펴고 이런 글을 써내고야 만다. 잘 고른 치부하기는 늘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주었으니 이 습관을 버릴 이유가 없다. 살아가는 매 순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즐거울 때 즐기는 일이야 무엇이 어렵겠나. 필요한 것은 어떤 순간에도 두 발로 설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는 일이다. 어쩌면 나락의 깊은 곳에 있는 그 순간이 한 평생 당신을 일으켜 세워줄 노하우를 찾을 기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