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원본으로 태어나 복사본으로 죽는다구요. 별 것 없는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하나 있는데요. 바로 나의 이야기를 노래한다는 겁니다. 남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노래를 부르며 몇십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 적지 않은 시간 그 길을 지켰다는 것 말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야기를 하자면 말로 다 담을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하지요. 자, 오늘 이 자리에 온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곳에서 어떤 마음을 노래하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꿈과 일상이 어떤 종류의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고유한 것이길 바랍니다. 타인이 들이민 낯설고 흔한 것들이 아니라 부디 여러분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이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그의 노래에는 삶의 고난과 그것을 견뎌낸 소망. 그 길을 지나 깨달은 마음의 깊이 같은 것이 잔뜩 묻어났다. 그것을 듣고 나는 조금 울었다.
권민이라는 기업인은 '자기다움'이라는 저서에서 말했다. 우리는 유일한 존재임에도 세상에 의해 자기 자신을 희석하며 그 결과 원본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복사본으로 죽게 된다고. 감명 깊은 공연을 보여준 싱어송라이터가 말한 그 문장이었다. 뒤통수를 때림과 동시에 한숨이 푹 뱉어진 문장.
누군가의 복사본으로 죽고 싶은 인간은 없지만 '유별한 나'라는 것이 그렇게 주먹 쥐듯 간단히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보다 내가 주인공일 수 없는 이유에 더 많은 대답이 쏟아질 테다. 이유는 수두룩하다. 타인과의 관계가 우선된다. 부모님과 배우자가 바라는 역할의 무게. 사회적 연결망에 있는 동창과 직장 동료들. 진급부터 결혼까지 비교의 대상은 끝이 없이 늘어나고 알 수 없는 혐오가 판을 치고 대중의 관심사는 사회를 뒤흔든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이야기에 위로받던 독자들은 곧이어 시력과 삶을 바쳐 일하는 외상외과 의사에게 존경을 표하고 소소하고 확실한 소확행을 추구하는 이들은 거대하고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산다. 그러니까 사실은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휘둘리지 않는 것이고 무엇이 나의 마음이고 무엇이 너의 마음인지 조차 분간이 되질 않는다.
그 날의 싱어송라이터는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사회적 이슈에 미동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타인이 원하는 역할을 외면하며 독고다이로 살아서가 아니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함으로 자신의 원본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어떨까 생각했다.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대단한 기분 같은 건 들지 않았지만 확신은 있었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 글을 쓰고 있어서 혹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사람들에게 나의 깊은 이야기를 덤덤히 나눌 수 있어서 혹은 상대의 이야기에 내가 먼저 울어버릴 수 있어서일까. 그러니까 이렇게 저렇게 말해도 결국은 내면의 이야기를 꾸준히 꺼내어 놓고 있어서다. 그렇게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하루하루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어주고 있어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확신은 거기에서부터 왔다.
언젠가 사랑에 대해 적었다. 내 사람을 얻을 자격도 그렇지 않은 이를 구분해 낼 자격도 용기를 내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이건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에도 적용된다. 나를 나로 두기 위해서도 언제나 용기는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놓을 용기. 그것에 따르는 결과를 수용할 더 큰 용기. 우리가 매일 누르는 꾸준한 업데이트를 윈도우나 어플만 하라는 법은 없다. 그건 인간에게도 필수적인 일이다. 이전보다 개선되는 일. 걷고 듣고 읽고 말하여 기어코 더 나은 원본이 되는 일. 그러면 조금 낯이 식은 언젠가, 우리도 그날의 싱어송라이터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변변찮은 나의 자부심이라고. 나의 이야기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