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흡사 두 얼굴의 여인과 같은 것은 해 아래의 산은 고르나 달 아래의 산은 적기 때문이다. 둥그런 몸통을 잘 드러낸 날에는 달도 등불 못지않게 밝으나 잎사귀 틈새 가지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태양에 비할 것은 못된다. 마음의 치유를 위하여 산속에 집을 지었다가 스산한 기운에 놀라 창문 틈새를 판자로 못 박고 도망치는 이들의 이야기는 대개 달을 가리는 두툼한 잎과 울림이 좋은 생명이 밤에 풍기는 기운을 파악하지 못하여 벌어진다.
산 초입에 살던 어린 시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산자락에서 보냈는데 해가 지려고 마음을 먹으면 어찌나 재빠르게 몸을 감추는지 눈을 댓 번 깜빡이고 정신을 차려보면 사방이 짙은 남색이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사아악 소리를 내고 산 지네의 형체 같은 것이 마구 보여 '나는 하나도 안 무서워, 안 무서워' 하다가 결국은 개의 쇠 목줄을 쥐고 정신없이 산길을 내달리곤 했다.
산을 참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근래에는 산에 오를 일이 (혹은 그럴 의지가) 별로 없었다. 몇 해 전 아픈 친구의 회복을 위해 함께 도봉산 760미터를 오르고 기절해 나자빠진 것이 마지막 등산이었다. 그 친구가 먼 길을 간 이후로는 어쩐지 산에도 오르기가 싫어졌다. 산에 오르면 늘 삶을 생각하기 마련이고 삶을 생각하면 죽음이 꼬리처럼 따라오고 그렇게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린 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묵직해졌다. 어떤 날에는 그런 것이 영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나 어떤 날에는 버거움이 되기도 했다.
지난 주말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에 이끌려 인왕산 초입에 올랐다. 뜬금없이 산을 오르자는 말에 우리는 어리둥절했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몇십 분을 걷다가 목적지에 닿은 후 산내음을 맡으며 기뻐했다. 온통 푸른 것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개구리와 가재가 살고 있으니 함께 보호해 달라는 표지판. 저만치 평평한 바위에 몸으로 별을 만들어 누운 청년. 꽃이 방울방울 아래로 열린 때죽나무와 그것을 찍겠다고 서 있는 친구와 '너 거기 벌있다' 겁을 주는 나. 별 것도 아닌 짧은 시간. 감회가 새로웠다.
「귀신이 막 튀어나올 것 같단 말이에요.」
지난날, 산에 오래 살던 어르신이 말했다.
「수연아. 산이 왜 너를 겁주겠니.」
그렇다. 두 얼굴의 산이라고 해도 악이 없는 이유는 그곳에 일체의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푸르고 거친 나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고유한 무언가를 하며 한 평생을 그렇게만 있기 때문이다. 밤의 산이 풍기는 스산함이 두려워 창문에 못을 박았다는 누군가처럼 나 역시 언젠가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던 아이였으나 이제와 보면 내가 무엇에 겁을 먹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겁을 준 이는 없는데 겁을 먹은 이만 홀로 망망대해에서 발을 구른다.
오랜만에 맡은 산내음과 때죽나무의 올망졸망함은 여전히 순결하여 나는 다시 산에 오르고 싶어 졌다. 밤의 산도 사라진 추억도 무엇도 나를 겁주지 않는데 산에 오르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할 뿐인 것을. 살고 죽고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