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의미

by 지수연

독수리들이 서로 쪼아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첫 동물원이었다. 생각보다 거대한 독수리의 크기에 놀랐고 머리에 언뜻 보이는 피에 놀랐고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랐다. 나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 북어처럼 입을 쩍 벌리고 동상처럼 서 있었다. 직원들이 나타나 능숙하게 두 독수리를 떨어트려놓자 사람들은 유야무야 흩어졌으나, 나는 혼란함을 숨기지 못하고 여러 번 다시 독수리를 찾아갔다. 우리는 고요했다. 그래서 확연히 보였다. 뭉텅뭉텅 뜯긴 털과 기력이 없어 보이던 모습들이.


그로부터 약 이삼십 년이 흘렀다.


얼마 전 TV 토크쇼에서 한국에서 유학 중인 케냐 사람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케냐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할 곳으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을 추천하며 한국의 동물원을 언급했다. 동물들의 피부병과 정적인 모습, 그것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에 눈물이 날뻔했다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말했다. '케냐에서 사자 사진을 찍으려면 자기 인생도 잘 챙겨야 해요' 하는 그의 말에 촬영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뒷맛에 남은 씁쓸한 여운은 숨겨지지 않았다.



2019년 제주도 조천읍 선흘 2리에 제주동물테마파크가 들어선다는 기사를 읽었다. 국내 최초의 유네스코 자연유산지역인 제주의 일부를 훼손하고 시대역행적인 행정에 큰돈을 쏟아붓겠다는 말이었다. 거대한 열대동물과 소동물을 포함하여 500여 마리의 동물을 들여오는 큰 규모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도 없었다고 한다. 테마파크 건설에 반대하는 선흘 2리 주민들은 말했다. 우리는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지역을 원할 뿐이라고. '두 가지 이상의 개체가 서로를 도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의 공존. 인간이 동물을 가두어 만지고 체험하는 시스템이 과연 공존이 될 수 있을까.


메리 올리버는 저서 <완벽한 날들>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요세미티에 가보고 싶지 않아? 펀디만에는? 브룩스 산맥에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오, 그럼. 가끔은." 그러곤 나의 숲들로, 연못들로, 햇살 가득한 항구로 간다. 세계지도에서 파란 쉼표 하나에 불과하지만 내겐 모든 것의 상징이니까.'

놀라운 기술이며 삶을 기쁨으로 채우는 노하우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우주를 만지지 못했으며 공기를 보지 못했고 구름을 먹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안다. 심지어 느끼기까지 한다. 일상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은 세상의 지극히 일부분이다. 하지만 아무도 지극히 일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그것들의 부재에 통감하며 하루하루를 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욕심을 낸다. 다른 생명의 자연스러운 삶을 박탈하면서까지 내 일상 속에 그것을 끌어들이기를 자꾸만 바란다.



2021년 3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이 무산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환경과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주변에 많은데 어째서 사회의 실질적 변혁은 이토록 느린걸까,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던 차에 희망을 만난 기분이었다. 여전히 운영 중인 체험시설들을 떠올리니 마냥 홀가분한 기분은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한걸음의 변화가 어디인가. 그 한걸음에 서린 많은 이들의 노고가 영광스러울 뿐이다.


이제 어릴 적 내가 만난 독수리들은 세상에 없을 테다.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그토록이나 원하던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죽어야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새들이 돌고래들이 개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나는 내 아이에게, 독수리는 하늘을 날고 스스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라 가르치고 싶다. 돌고래에게 공을 던지거나 아이를 태우지 않고 알려주고 싶다. 돌고래는 바다에 살며 아픈 친구를 서로 돌봐줄 만큼 똑똑하고 사회력이 있는 존재라고.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사진을 보며 아이는 상상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성년이 되어 이곳저곳을 여행한다면, 그러다가 우연히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보거나 떼 지어 바다를 뛰노는 돌고래를 본다면, 그제야 감격하며 알게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생명의 존재를. 공존의 진정한 의미를.


내가 바라는 세상이 손 끝에 닿기까지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할까. 상상하면 마음이 아리면서도 기대가 되는 것은 역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 때문일 것이다. 나아갈 세상에는 진정한 공존이 자연스러운 삶의 덕목이 되기를, 나 역시 그 덕목에 함께 길을 내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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