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헤어지지 못하는 강아지, 떠나가지 못하는 보호자
분리 불안 (Separation anxiety): 특정 대상과 떨어질 때 과도한 불안, 공포,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상태
고립 장애 (Isolation disorder):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특정 행동을 보이는 상태
내 기억으로는 3년 전 즈음부터 분리 불안이라는 단어를 뒤로하고 '고립 장애' 가 인스타에서 바이럴처럼 소비되고 있다. 굳이 바이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단어에 썩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다. 제대로 된 진단 기준도 모른 채 일부 트레이너, 강아지 유치원 원장이라는 사람들이 얼핏 보고 슬쩍 듣고 강아지의 고립 장애를 진단한다. 내 주변에서도 꽤 많은 사례가 있었다.
표현이 서툴지 않은 인간의 심리 질환도 정신과의사가 상당한 시간 동안 면밀한 상담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 다양한 방법론과 평가 방법을 적용하여 함부로 진단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ADHD, 사이코패스, 분노조절장애 하물며 성격 진단 (MBTI, Enneagram) 도 최소 5분 이상 집중하여 진단 테스트를 수행한다. 그런데 통증이나 증상의 표현이 너무나도 서툰 강아지를 상대로 어떻게 이리 쉽게 진단할 수 있는가. 일단 뱉고 아님 말고라는 심리인가.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은 고립 장애를 진단(?)받은 -진단은 당연히 아니고 '소리' 정도로 치환하자- 강아지를 키우는 보호자의 태도였다. 위에 써놓은 질환의 정의를 보면, 분리 불안의 핵심은 '특정 대상과 유리되는 것' 이고 고립 장애의 핵심은 '세상으로부터 유리되는 것' 이다. 그러니까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어떤 트레이너 혹은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고립 장애라는 소리를 들은 보호자는 이 말을 들은 것과 같다.
"강아지가 보호자에게 최소한의 애착도 없군요! 보호자님은 도대체 뭘 하신 거죠? 유기견과 다를 바 없군요!"
확대 해석 같은가. 내가 강아지와 올바르게 정서적인 관계를 형성했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고립 장애보다는 분리 불안이 나타날 것이다. 다른 말로 산책할 때 바닥에 혼자 코 박고 다니는 강아지가 아니라 보호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신경 쓰는 강아지라면, 고립 장애가 아니라 분리 불안이 나타날 것이다.
이제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고립 장애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일반의 보호자라면 기분이 나빠야 한다. 첫 번째로 고립 장애를 말하는 그 사람은 도대체 뭔지에 대해 화나야 하고, 두 번째는 보호자가 밥 주고 줄달고 산책만 시키는 사람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야 한다.
개인적인 지론이지만 강아지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파악하려는 노력은 교육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낮다. 대개 그러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강아지의 행동을 해석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점, 둘째는 행동을 해석하기 위해 그닥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점 -혼자 침대에 앉아 골똘히 고민하며 슬픔에 잠기는 것은 노력이라고 보지 않는다- 셋째는 며칠의 시간 동안 강아지가 변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강아지 행동을 의미 있게 해석하려는 노력은 쉽게 희석되기 마련이다.
강아지와 나의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분리 불안인지 고립 장애인지 왜 구분하려 하는가. 보호자가 두 가지를 구분 짓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동안 강아지의 심리적 상황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악화되고 있을 수 있다. 설령 '정말로' 고립 장애라고 한들 개선되는 과정 중에 '분리 불안'의 단계를 밟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립 장애든 분리 불안이든 나아지게 하려면 강아지가 보호자의 말을 열심히 들을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간혹 유치원에 다니면 점진적으로 개선된다고 믿는 보호자 나아가 그렇게 말하는 업체들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자. 근본적인 문제는 '불안' 이다. 따라서 내 강아지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 이다. 안정감을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 맞지, 다른 강아지들과 사람과 섞이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찮게 결과값이 맞을지언정 논리적 완결성은 터무니없다. 우리는 숙면에 들기 위해 클럽에 가서 이불을 덮지 않는다.
다른 측면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것이 내 강아지가 고립 장애라면 더욱이 안되고 유치원 원장이 고립 장애여서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면 더더욱 안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분리 불안이 아닌) 정말로 고립 장애라면 보호자에 대한 애착이 낮을 확률이 매우 높은데, 유치원에 다니면서 강아지가 다른 재미를 찾는다면 더 이상 그(녀)에게 보호자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나는 적어도 내 강아지를 밥만 주기 위해서 키우진 않는다.
분리 불안을 교육하는 방법은 두 단계다. 두 단계뿐이다.
이건 첫 번째 레슨. 사소한 규칙을 시작으로 가능한 많은 규칙을 만들 것.
1) 당신이 아는 가장 사소한 규칙은 무엇인가. 내가 아는 것은 보호자가 손을 내밀고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할 때 손을 곧 잘 따라오는 것이다. 루어링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루어링 -가장 사소한 규칙- 이 잘 되는 편인가?
2) 루어링이 잘 된다면 그다음 가르쳐야 할 규칙은 보호자가 '앉아' 라고 말할 때 앉는 것이다. 가급적 어떤 상황에서도 '앉아' 라고 말할 때 앉을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이게 왜 분리 불안 교육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분리 불안 교육의 핵심은 [강아지 스스로 안정감을 찾는 능력] 을 길러주는 것이다. 너무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너무 싫어하는 것이 있어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보호자가 자리를 비운 상황쯤이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한다.
3) 이 단계부터 -보호자 기준에- 규칙이라고 말할만한 것들을 가르치면 된다. 문을 지나가기 전, 문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보호자의 걸음에 맞춰 같이 문밖으로 나간다. 문을 앞발로 벅벅 긁거나 보호자는 신경 쓰지 않고 발 동동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꽤 귀엽다. 또 문이 열리기 전 보호자 뒤 혹은 엘리베이터 구석에 꼭 붙어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면 얌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안정감의 측면에서 둘 다 문제다. 사람의 예로 바꿔보자. 급식을 알리는 종이 치기 전 너무 신나서 수업을 무시하고 뒷문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 급식 시간 북적대는 것이 싫어서 발길이 드문 어딘가 숨어 도시락을 까는 아이. 모두 불안하다.
4) 다른 규칙들은 이런 것들이 있다. 소파에 올라오기 전에 엎드리기. 켄넬에서 기다릴 때는 켄넬이 열려있어도 나오지 않기. 집 문이 열릴 때 켄넬에 들어가기 등등
위에 말한 '규칙' 이란 것들을 보고 '너무 통제하는 것 아닌가요, 자유가 없어 보여요, 군대 같아요!' 라고 말씀하시는 보호자들이 있다. 결과만 보기 때문이다. 문밖에 나가기 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는 강아지, 켄넬에서 엎드린 채 기다리는 강아지, 소파에 올라오기 전에 보호자를 빤히 보고 있는 강아지. 모두 잘 학습된 결과만 보고 통제와 자유를 말한다. 규칙을 가르쳐 본 사람만 안다. 이 위의 규칙을 만들기 위해 강아지를 얼마나 재밌게 해줘야 하고 얼마나 즐거워야 하는지. 자유를 말하는 보호자들은 내가 느끼기엔 전혀 자유롭지 않게 키운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보호자가 여유 있을 때만' 이라는 역설적인 전제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규칙 중에서 절대 만들지 않아야 하는 규칙이 있다. 바로 밥그릇에 밥을 두고 '기다려!' 를 말하는 것이다. 보상이 지나치게 큰 명령 혹은 행동은 그것을 수행할 때 안정감을 갖기 힘들다. 그리고 해당 자극과 명령이 아주 반복적으로 수행된다면 그 명령은 그 자극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밥 먹기 전에는 꾹 참고 기다리는 데 사진찍기 전에는 왜 이토록 못 기다리는지 의문인 보호자에게 대답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 두 번째 레슨. 틈틈이 떨어지는 연습하기
1) 첫 번째 레슨을 마무리 중이라면 본격적으로 강아지 혼자 기다리는 연습을 시작하자. 집이 아니어도 된다. 한적한 공원도 좋고, 주인장의 허락을 맡은 카페도 좋다. 첫 연습부터 6시간, 8시간씩 기다리게 하지 말자. 30초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늘려가자.
2) 중요한 지점은 30초를 잘 기다린 강아지에게 - 너무 기특하겠지만 - 절대 칭찬을 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강아지 스스로 열심히 안정감을 찾고 기다렸는데 보호자가 오자마자 안정감에 돌을 던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인다. 비슷한 결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보상이 큰 명령 혹은 행동을 할 때 안정감을 갖기 힘들다. 핵심은 안정이다.
분리 불안에 대해서만 얘기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첫 번째 단계를 거치면 고립 장애라는 소리를 들은 강아지들도 분리 불안의 단계로 넘어올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첫 번째 단계를 가르치는 과정 중에 보호자가 꽤 좋아질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강아지에게' 매력적인 보호자만 첫 번째 단계를 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속상하지만, 나이가 많은 상태로 구조되거나 -나이와 관계없이- 안정감을 갖기 어려운 상태로 살아온 강아지들은 어떤 형태의 불안이던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포기하라는 그런 말이 아니다. 보다 안정된 강아지를 키우는 보호자들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더 큰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려운 선택을 한 보호자들이 부디 지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