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백신

부모가 잘 살면 자식은 저절로 잘 된다

by 엄마의 삶공부


잘 산다는 것

물질적인 부자로 산다는 좁은 의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제대로 잘 산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잘 살면 물질적인 부자로 살아지는 것은 결과로 따라올 수도 있겠지만요. 제대로 산다는 게 ‘선하게 사는 삶’이라고 해석하고 싶어요. ‘선(善)하다’는 뜻은 나에게도 좋고 상대에게도 좋은 쪽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것, 그래서 나도 성장하고 상대도 성장하는 것, 즉 윈-윈 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잘 산다는 것은 선(善)하게 사는 삶이라고 제 나름의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선(善)한 삶’을 살아가면 자식은 저절로 잘 된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선하게 산다는 것

경험 →지혜 →용기 → 자유, 다시 경험 →지혜→ 용기 → 자유가 순환되는 삶이라고 설명해 보고 싶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자주 해결해야 할 문제 상황을 만납니다. 둘 다 윈 윈 하는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을 때 좋은 해결책이 찾아집니다. 지혜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경험의 저장창고에서 지혜를 만들어 내어야 하잖아요. 문제가 발생했고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긴급 신호를 뇌에게 보냅니다. 뇌는 경험의 저장창고에서 탐색을 시작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서 이것저것 조립하듯 서로 맞추어 봅니다. 어느 순간 ‘아 이러면 되겠구나!’하는 반짝 아이디어가 샘솟듯 나오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생각들은 많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을수록 더 잘 떠오른다는 말을 하려고요. 더 많은 재료들 속에서 찾으니 더 잘 찾아지니까요. 경험의 저장창고의 현재 쌓인 상태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증거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지혜를 캐서 올릴 자신만의 경험 광산이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 광산에는 캐 낼 지혜의 보석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도요? 지혜를 캐내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의 축척이 먼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혜가 떠올랐다고 해서 바로 실천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혜를 찾기도 어려운데 지혜를 실천하기는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생각으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생각이 지혜였는지 그냥 스쳐가는 생각이었는지는 실천해 보아야 판명이 되는 거잖아요. 지혜를 행동으로 실천해 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고요. 큰 용기가 필요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요? 실패를 무릅쓰고 한 걸음 내디뎌야 다음 걸음이 옮겨질 거잖아요. 실패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에 한 걸음을 떼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지혜가 얼마나 많은데요. 지혜를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있는지요?


그러면 자유는 어떻게 얻어지나요? 자유는 지혜를 용기라는 무기를 가지고 무수히 실험해 보아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혜가 용기랑 손잡고 경험을 해 보는 것이지요. 실패, 성공의 반복적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대가가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실패 10번에 성공 1번, 그다음은 실패 5번에 성공 1번, 차 차 실패보다 성공의 빈도수를 높여가는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 드디어 자유의 관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패의 트레이닝 과정을 더 열심히 훈련할수록 자유의 가짓수와 자유로움도 더 크게 느껴질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 잘 키우는 것, 돈에 자유로워지는 것, 무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건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야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쌓여서

지혜가 되고

용기로 지혜를 실천해 내고

그 결과 자유로워지고

얻어진 경험이 또 축적되어 쌓이고


다시 문제 해결 상황이 생기면

쌓인 경험에서 지혜를 찾고

지혜가 용기랑 손잡고 선한 결과를 만들고

선한 결과물이 쌓일수록 삶은 더 자유로워지고…….


이렇게 살아가는 부모일수록 자식은 더 잘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살아간다는 것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맺어진 이 시스템이야말로 선한 삶을 살게 하는데 부모가 최고의 수혜자가 되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쓰이던가요?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노력)을 기꺼이 기울일 수 있었던가요! 몸단장하고 잘 보이고 싶어서 온갖 노력을 다 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뜨거웠던 열애기간에는요.


열애의 대상보다 더 가슴이 뜨거워지는 대상이 내 자식입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나를 보고 있습니다. 내 자식이라는 나의 열애 대상은 내가 늘 짝사랑 하지만 이 짝사랑이 전혀 식지를 않습니다. 나만 짝사랑해서 억울하다거나 손해 본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를 않습니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해서 더 행복한 이 아이러니는 무엇일까요? 이 활화산 같은 짝사랑이 식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 시스템인지요! 그 사랑이 식지 않으니 내 자식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어떤 삶도 평생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자식이 나를 늘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뜨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식 사랑이 싫증 나는 사랑이었다면 ‘엄마’ 몇 번은 때려치웠겠지만요~ㅎㅎㅎ 자식 사랑은 싫증이 안 나네요.







젊어서는 내 자식 잘 되게 하는 게 내 자식에게 더 좋은 것 입히고 먹이고 더 좋은 교육시키는 게 부모로서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자식에게 올인하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살았으면 내 자식 망칠 뻔했습니다. 자식 향한 그 뜨거운 활화산으로 내 자식에게 다가갔을 테니 화상 다 입힐 뻔했습니다.


그 사랑의 화살표를 나 챙기고 나 사랑하는 걸로 방향을 바꾸었으니 얼마나 천만다행인지요. 나 사랑하는 건 아무리 뜨거워도 화상 입지가 않더라고요. 나는 나에게 사랑받을수록 용광로 같은 에너지를 축척하더라고요. 휴화산으로 진정되었을 때 그 에너지를 내 자식에게 전해주어도 되더라고요. 자식까지 에너지 축적시켜주는 거니까 원 플러스 원(1+1)의 이익으로 돌아오다라고요. 내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 전해줄 테고, 자식 둘이면 둘에게, 남편에게, 시어른께……. 생각해보면 원 플러스 얼마까지 뻗어나가는 일인지 몰라요!








잘 사는 삶,

제대로 사는 삶,

선(善)하게 사는 삶에

평생 욕심내고 싶어요.

용기 내어 도전해 보고 싶어요.


내 자식을 향한 엄마의 용광로는 평생 식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그 뜨거운 화(化)기로 내 자식 화상 입히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 에너지 절제해 나의 선한 삶에 도전하는 에너지로 몽땅 사용하려고요.

그 에너지 고스란히 비축되어 내 자식에게 가는 거니까요.

이런 게 사랑하는 내 자식 선(善)하게 챙기는 길이니까요.

선하게 챙기면 자식은 저절로 잘 되는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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