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을 겪어내면서 이 ‘사랑’도 얼마나 수난을 겪었는지요. ‘타인=나’가 아니라 ‘타인≠나’라서 얼마나 다행이라 생각했는지요. 그 생각만으로 그만두었다면 다행이지요. 그 타인에게 얼마나 원망하고 탓을 하고 그랬나요? 얼마나 배척하고 나쁜 시선으로 보았나요? 코로나에 걸린 나 아닌 타인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원망하고 싶었을까요?
그 타인이 나였다면? 내 자식, 내 가족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왜 하필 나를 찾아오지를 않았을까? 왜 그 사람에게 찾아갔을까? 그 사람이 나 대신해서 코로나와 싸워주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찾아온 다행이고, 행운이 그 타인의 희생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신에게든 그 타인에게든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조금 더 건강한 내가 더 건강 챙겨서 코로나에 걸린 그 타인을 돌봐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려서 반 학생들 모두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첫날 새벽 이 문장과 함께 제 생각을 알림장 편지로 전했습니다. 서로 원망하고 탓하고 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조금 더 빨리 서로를 응원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이 위기를 잘 극복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얼른 문장의 뜻을 알아차려 주었고 서로 돕고 응원하면서 잘 극복해 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어쩌면 신이 숨겨놓은 이 보물을 인간에게 찾으라고 시간을 준 건지도 모릅니다. 자연(바이러스)은 신이 보낸 힌트 인지도 모릅니다. 이 보물을 잘 찾으면 코로나 팬데믹은 ‘극복’의 차원이 아니라 ‘승리’의 차원으로 우리를 성장시킬 타이밍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해 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요?
‘타인 또한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
전 세계와 전 국민이 이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면 당연히 훨씬 더 빨리 극복이 되겠지요. 그러기 전에 나는 내 가족은 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는지요? 실천하려고 생각이라도 해 보았는지요?
타인(내 가족, 내 자식)을 나 자신이라고 깨닫는 것부터 참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로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된 부모가 사실 더 힘들어졌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더 섬세하게 돌봐야 하는 엄마가 더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내 자식, 내 가족(타인)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만이라도 마음에 담고 있었다면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사실 ‘나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니까 자식에게도 함부로 대해졌을 겁니다. 나를 ‘사랑’ 한 그 힘으로 내 자식, 내 가족을 사랑할 힘이 나오니까요. 그러고 보면 나 ‘사랑’ 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네요. ‘나 먼저 사랑’ 이 보물 찾기의 성공이 되겠습니다.
엄마로 살아가는 제게도 이 보물 찾기가 쉽지는 않은 길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려 애쓰고 있는지 챙겨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제가 보물을 찾아가는 방법은 우선 이 두 가지를 잘 실천해 보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공존
연대
이것입니다.
공존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
네이버 사전에서 찾은 공존의 뜻입니다.
서로 돕는다는 의미는 조금 더 힘이 남은 사람이 힘이 부족한 사람을 돕는 것이잖아요. 코로나로 너무나 힘들어하는 내 자식(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위기에 함께 메몰 되면 생존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습니다. 내 자식 살리고 싶어서 시간이든 에너지든 조금 더 힘이 남아도는 제가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들 키우고 살림해 내느라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힘든 내 딸에게 세상이 온통 바뀌고 있으니 공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내 딸보다는 훨씬 늦게 깨닫고 덜 깨닫겠지요.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1년 넘게 치열하게 공부한 덕분에 세상이 보였습니다. 특히 ‘엄마’로서 살아갈 세상이 더 확실히 보였습니다. 저의 마음 안경 도수가 엄마로 살아갈 내 자식 살리고 싶은 간절함 거기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알게 된 것 내 딸에게 얼른 알려주고 싶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여력이 있는 사람이 먼저 힘내어서 힘이 필요한 사람을 도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딸이 나를 도울 시기도 오겠지요. 최대한 내 자식 더 오래 더 많이 돕는 여력이 있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도움을 받을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고마워하며 받을 겁니다. 자식과 부모는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이니까요. 내 딸도 자식에게 그런 부모로 살아가려 하겠지요.
연대
'여럿이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네이버 사전의 해석입니다.
부모-자식은 평생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관계입니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잘 성장하라고 신이 허락해준 인연입니다. 김미경 강사님은 본사(부모)와 계열사(자녀)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지요. 본사가 물론 튼튼해야 되겠지요. 재정이든, 가능성이든 어떤 능력 면에서든. 그렇다고 비리비리한 계열사이면 안 되겠습니다. 계열사의 발전이 바로 본사의 성공과 직결되고 그 기업은 승승 하는 기업이 되는 거잖아요. 본사와 계열사가 함께 그 기업의 성장을 위해 책임을 져야 하는 공동운명체입니다.
코로나 상황이었지만 부모로서 내가 져야 할 책임을 기꺼이 지고 싶었습니다. 먼저 감지한 부모가 앞서서 책임을 지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디지털 공부, 세상 알아가는 공부가 처음에 배울 때는 외국어 처음 배우는 것처럼 어려웠습니다. 그 어렵던 디지털 기술, 용어, 세상 공부가 흐릿하던 세상의 변화가 조금씩 명확해지듯이 조금씩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딸은 엄마의 위치에서 아내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딸은 코로나 상황에서 둘째를 낳았습니다. 우리 손녀 돌이 다 되어갑니다. 코로나 때문에 첫 아이 유치원은 수시로 휴원을 했고, 첫째도 함께 돌보며 힘들었지만 육아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다 완수하고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우리 사위, 코로나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는 직종입니다. 딸은 그 남편을 응원하고 마음 챙겨주는 역할도 해 내어야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계열사 내 딸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컸음을 인정해 주고 싶습니다. 본사도 코로나 덕분에 더 강해졌습니다. 본사와 계열사가 힘을 합해 코로나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는 현 상황인 것 것 같아 안심입니다. 책임도 함께 지면서 서로 도와 잘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코로나와 팬데믹 상황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더한 팬데믹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보물 찾기를 떠올리겠습니다. 타인이 나 자신임을 깨닫는 ‘사랑’의 실천이 보물임을 얼른 찾아내겠습니다. 사랑을 제일 먼저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인 내 자식, 내 가족을 떠올리겠습니다.
공존
연대
이 방법으로 실천해 내고 해결해 가면서 잘 살아가 보고 싶습니다.
제 꿈은 평생 자식과의 공존, 연대입니다. 이렇게만 살아져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텃밭 ‘나 사랑’에 매일매일 도전하고 기필코 승리하겠습니다.
이것 하나 잘 집중하고 해결하며 살아도 꼬였던 매듭 풀리듯 차례차례 다 해결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