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본에서 시작되어 유행해진 말인가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두산백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
이들은 스스로 사회와 담을 쌓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생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2001년부터 6개월 이상 이런 증상을 보이면 히키코모리로 분류하고 있다.
'히키코모리' 이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코로나는 우리를, 내 자식을 강제적으로 ‘히키코모리’로 만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사람들을 만날 수 없으니까, 1년 10개월 이상이나 이런 생활이 지속되고 있으니까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히키코모리’에 대하여 들었을 때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 답답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지금 들어보니까 별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바로 ‘은둔형 외톨이’ 비슷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우리 아이들을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세상이 밀어붙인 것 같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만 살 수 있는 환경을 세팅해 주었습니다. 반대로 행동하면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 친구들 많이 만나고 놀고 수다 떨고 돌아다니고 이러면 진짜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세상을요.
기초적인 욕구만 겨우 채우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안전에 대한 욕구도 확보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이러는 게 얼마나 많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이었나요! 이런 사랑, 소속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사람을 만족스럽게 하는데요! 이런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충족되어야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고 싶고(존경의 욕구), 자신을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구(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욕심 내잖아요. 모두가 욕구 좌절의 상태입니다.
하위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건, 개인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해입니다. 생리적 욕구 겨우 만족시키고는(이 욕구도 질이 많이 떨어졌겠지요) 안전의 욕구는 자꾸 좌절되고 있습니다. 사랑, 소속의 욕구는 꿈도 못 꿉니다. 사랑, 소속의 욕구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욕구입니다. 이 욕구만 충족되어도 용광로 같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단체를 위해서도) 목숨 걸고 다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존경도 받고(존경의 욕구), 자신도 엄청 성장하게 되고(자아실현의 욕구) 그렇게 되는 건데……. 욕구들의 수난시대입니다.
소통하고 살아야 숨통이 터이잖아요. 소통이 안 되니 불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불통이 불똥이 되어 먼저 나에게 튑니다. 자신을 엄청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있으니 가족에게도 튑니다. 서로의 불똥에 맞아서 화상 투성이가 되어 갑니다. 가족 간의 불똥은 화상 정도가 심합니다. 새살이 돋아나지 않을 정도의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발 1도 화상 정도에서 그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화상을 안 입었으면 좋겠는데, 불똥 튀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소통이 안 되니 서로에게서 공감을 받을 수도 공감해 줄 수도 없습니다. 공감이 사라지는 세상, 적대감만 쌓여갑니다. 남을 미워하고 자신도 미워지고……. 우울해지고 마음에 병이 듭니다. 가정이 사회가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됩니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코로나 블루도 함께 물러갈까요? '블루'라는 색이 맑고 청아한 가을 하늘색의 '파랑'으로 얼른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살았나요! 만남은 늘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엄마들 잘하는 수다 속에도 얼마나 감탄할 인생 교훈이 들어 있는데요! 얼마나 다양한 삶의 상식들이 늘려 있는데요! 만나야, 만나서 이야기 나눠야 남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보였습니다. 자극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배웠습니다. 나도 우리도 함께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로의 스승을 잃은 것 같습니다.
줌이라는 도구 등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각자의 스승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어떻게든 만나야 서로에게서 배움의 기회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만나서 서로에게서 배우고 경험을 나눠야 살아가는 맛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줌으로도 만남을 시도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습니다. 왜 그런 것조차 못하느냐고 나무라면 안 되겠습니다. 내게는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줌이라는 도구만 있어도 안 되는 일입니다. 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코로나는 이런 점에서도 우리를 한없이 움츠려 들게도 하고 또 도전하게도 합니다. 사람으로부터의 배움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문객, 정현종>-
우리가 오래 만나지 못하니 많은 욕구들이 좌절되었습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자꾸 까먹어 가는 건 아닌지요?
우리가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니 서로 소통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내 가족이, 내가 속한 사회가 자꾸 더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것조차 무관심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요?
우리가 오래 서로 만날 수 없어서 서로에게서 배울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성장하기는 멈추고, 그냥 생존으로만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