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로워서 아름다운 계절
“어느 계절을 제일 좋아해?”
라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가을이라고 답했다.
가을은 내게 맨몸으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었다. 흐린 날이라고 표현되는 날들이 나에게는 포근한 색의 구름으로 선명하게 채색되어 있는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공기가 좋았다.
그러다가 겨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겨울은 손발이 시리고 차가운 바람에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춥기에 존재하는 겨울만의 따뜻함이 좋아졌다. 따뜻하지 않던 것들도 따뜻해지는 겨울이 좋았다. 추워서 쌓이는 눈이 좋았고 두꺼운 옷차림과 온화한 캐롤이 좋았다. 그래서 겨울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여름은 번거로웠다.
누군가가 겨울이 좋은지 여름이 좋은지 물어보면 서슴없이 겨울이라고 답했다. 여름은 내게 습하고 땀나는, 번거로운 계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은 지난 여름날, 매일 같이 보던 아침의 풍경이었다. 햇살이 아주 쨍쨍하고 구름 한 점이 없는 날. 눈부신 인도와 나무들. 등교하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가던 길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아, 나는 햇살 쨍쨍한 날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 여름도 분명히 덥고 땀났다. 하지만 가장 환하게 내리쬐는 여름만의 햇살로 덮인 거리를 볼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이야 오히려 견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봄,
나는 벚꽃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봄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매년 내게는 벚꽃보다 알레르기가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알레르기가 알려주는 봄은 마냥 반갑지 않다. 봄에는 일교차와 꽃가루 때문에 코막힘을 달고 산다. 그동안 내 코가 꽤나 짜증스러웠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런 코 막히는 봄이라도 좋아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국내로 여행을 떠났다.
자연 속을 여유롭게 걸었다. 너무나 걷기 좋은 날씨였다. 오전부터 밤까지 돌아다녔는데도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낮에는 모든 곳이 화창하게 비추어졌고 해가 지고 나서는 시원한 공기가 몸의 열기를 식혀줬다. 그날은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모르고 다녔다. 어쩌면 코막힘도 즐기면서 다녔다. 알레르기도, 그런 하루도 봄이라서 있게 된 것이었다. 봄이라서 자연과 어우러진 곳들을 하루 종일 걸을 수 있었다. 이런 봄이라면 코 막히는 것쯤이야, 즐기듯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절을 싫어할 만한 이유들은 좋아하는 이유와 같았다. 각 계절의 번거로움은 그 계절을 더 천천히 만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계절의 불편함까지 어우러져야 비로소 아름답다. 누군가가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다 좋아한다고 답한다면 물어본 사람은 꽤 싱거운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다 좋다. 그렇게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 내가 삶에 관심이 생긴 후부터였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