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었지만, 나름의 자리를 찾아가는 중
동네 동호회에서 한번 단단히 털렸(?)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동호회에 관심이 갔다. 바이크를 타는 인간군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앞선 것이다. 그리고 바이크 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자기 인식도 필요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서울 동부권을 근거지로 하는 적당한 동호회에 또 들어갔다. 여기는 나이 또래도 나와 비슷하고, 방장 언니를 중심으로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자주 모임을 갖고 (때때로 술모임도 있었다) 다들 격의 없이 친근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새내기인 나를 만나기도 전에 살뜰히 챙겨주는 분위기여서 마음이 놓여서 여기서 잘 어울려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바리(단체 라이딩 모임)를 나간 때는 어느 평일 저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서 집결지까지 1시간이 조금 넘게 찍혔는데, 퇴근길로 막히는 용마터널에서 도착예정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갔다. 감히 차들 틈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못해서 꽉 막힌 채로 숨이 막혀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결지에 도착할 즈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막상 바리를 주최한 분의 얼굴을 뵈니 집에 도로 간다고 하기가 민망해서 잠자코 있었다.
처음 만난 3명의 남자분들은 하나같이 체격이 건장해서 인상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조금 기가 눌린 게 사실이었다. 두 번째 집결지로 이동하기 위해 만나자마자 인사 한번 하고 바로 출발을 했다. 그런데 다 같이 통신을 연결해 가면서 긴 침묵이 이어졌고, 나는 이 침묵을 만들어 내는 장본인이 나 자신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라고 막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저 바이크 운행에 집중하며 어색한 상황을 버텨나갔다. 그들에게 편하게 말을 건넬 말 주변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아마도 너무도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나마 로드를 맡은 분이 간간히 도로 상황을 중계해 주며 빈 오디오를 채워 줘서 어색함을 덜 수 있었다.
어찌저찌 2차 집결지로 모인 나머지 멤버 3명까지 합쳐서 나 포함 총 7명이 되었다. 김포시의 한 토스트 가게의 야외 플라스틱 테이블에 빙 둘러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그야말로 꿔다논 보릿자루 같았다. 그들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그 어디에도 내가 끼어 들어갈 틈이 없다고 느껴졌다. 얼어있는 내게 말을 걸며 어색함을 풀어준 이도 몇 명 있었으나, 계속해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물음이 떠나가지를 않았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여기 오기로 선택한 것도 나였으니, 여기서 겪는 일의 결과도 다 내 몫이었다.
그래도 유명하다는 토스트와 꼬치는 맛있었고 근처 아라마루 전망대 구경도 나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각자 집의 방향대로 흩어지기로 했다. 그중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이 비슷한 GSX-S750를 타는 친구가 선뜻 늦은 시각이니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 친구는 체육 교사라고 했는데, 선생님답게 나에게 주행 팁에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그날 나와 같이 복귀하면서 뻥 뚫린 길을 시속 50~60km의 속도로 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숙했던 시절의 나를 케어해 준 것이 고마웠다.
이후 시간이 될 때 그 동호회에서 몇 번의 바리를 또 나가게 되었다. 비록 대화에 잘 섞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배척 내지는 배제되는 느낌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더 땡겨!’라고 야지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이 어린아이의 보폭을 맞출 때 그냥 말없이 천천히 걸어주듯이, 다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분들이었지만 말없이 내 속도에 맞춰 주었다. 그런 티 내지 않는 배려가 매번 고마웠지만 마음만큼 표현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활발하던 동호회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팀원 간에 불화와 분화가 진행되었다. 처음엔 불화의 당사자들이 친해 보였기 때문에 이후 언쟁이 오갈 때는 놀랐고 안타까웠다. 정황에 대해 속속들이 알만큼 깊게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짐작건대 너무 격의 없어진 탓에 서로의 행동을 오해하고 서운함이 쌓인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나는 이 동호회에 거의 1년 넘게 속해 있었다. 거기서 그동안 부족했던 사회 경험을 조금쯤 채웠다고 생각한다. 썩 맞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맞지는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 지 감을 잡아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