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사도와 여자 라이더의 처세

호의와 경계사이를 달리며

by 라이더 성음

바이크 동호회는 대부분 남초인 것이 현실이다. 내 체감상 바이크를 레저로 즐기는 사람 중 여성의 비율은 5% 남짓일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대체적으로 어느 동호회를 가든 여자라이더는 기본적으로 환영받는다. 특히 같이 주행을 하다 보면, ‘이 정도로 챙겨준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예상 밖의 배려를 받곤 했다.

놀랍게도 ‘기사도 정신’은 역사책 속에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21세기에도 그 정신이 여전히 어떤 형태로 남아 있다는 걸, 라이딩을 통해 종종 느끼곤 했다.

예를 들어 2차선 도로에서 여럿이 달리다가 1차선으로 차선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하자. 1차선은 보통 속도가 빠른 차량들이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대의 바이크가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맨 뒤에 달리던 라이더가 먼저 1차선으로 진입해 뒤따르는 차량의 속도를 줄이거나 길을 막아주면, 앞에 있던 라이더들이 안전하게 차선을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블로킹’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자기의 안전을 걸고 타인을 보호해 주는 현대판 기사도의 전형이다. 그런 순간에 발휘되는 카리스마를 직접 목격하면, 나만 본다는 게 아까울 정도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그들은 바이크 주차를 도와주었고, 타이어나 체인 등 바이크 상태를 점검해 주었다. 주행 중 위험 요소 알려주었고, 위협적인 자동차를 막아주었다. 멋지게 사진을 찍어주신 분도 있었고, 맛있는 먹거리를 사주신 분도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론는 그 친절을 온전히 편하게 받지 못할 때가 있었다. 호의 뒤편에 있는 속사정을 완전히 읽을 수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나는 받은 만큼 무언가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부채감에 사로잡혔다.

돌이켜 보면, 그건 나의 오래된 마음의 습관 같았다. 호의를 거래처럼 받아들이는 마음. 그래서인지, 고마움 뒤엔 늘 조심스러운 거리가 따라붙었다.


남초 동호회 속에서 여자 라이더로 지내는 일은 고마움과 어색함이 함께했다. 나는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끽연가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먼산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들이 나를 일부러 소외시킨 건 아니었지만 결국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가끔 대화 주제가 음담패설의 선을 넘을 듯 말듯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쩌겠는가. 들어도 안 들리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러면 다행히도 그 안에는 대화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없으면 더 편하게 웃고 떠들 텐데, 괜히 눈치를 보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그렇게 여러 동호회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건, 남자들의 배려와 호의가 분명 고마운 일이지만 어느 지점 이상으로는 그들과 섞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1박 이상을 함께 하는 ‘박투어’ 라던지, 바이크를 타려고 모이는 게 아닌 친목을 위한 술모임에는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적당한 호의를 주고받으면서도 나의 경계는 유지하려는 처세였다. 21세기에 ‘내외하다’는 표현은 한참 구식이지만 나는 그것이 서로의 고유한 장점을 지키면서 현명하게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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