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라이더 팀 활동과, 마음속의 작은 거리
기존 동호회에서 남자 라이더들의 멋진 에스코트(?)를 받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본질적으로 섞일 수 없는 지점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점차 마음이 맞는 여자 라이더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그러던 중 어찌저찌 인연이 닿은 여자 라이더 모임에서 활달하고 정이 많은 모임장인 은주(가명) 언니를 만났다. 내가 GSX-S125를 몰고 처음 모임에 갔을 때도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고 팀주행을 할 때도 멋있게 리드하고 보호해 주었다.
다른 여자라이더 모임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 팀의 단톡방은 극 외향형의 성격인 방장 언니를 주축으로 항상 많은 실시간 수다가 이어졌다. 잠시 다른 일을 하고 보면 금세 메시지가 300개 이상 쌓여서 그것들을 다 읽지도 못하고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씨가 궂은날 언니 두 명과 궁평항을 거쳐 삽교호 공원을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 비는 별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앞서서 빗속을 뚫는 은주 언니를 바라보며 ‘걸크러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주행 내내 쉴 틈 없는 오디오는 덤이었다. 팀주행에 필요한 안내를 하다가도, 전 남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종횡무진이었다.
날씨가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달리 저녁을 먹고 복귀하는 길에는 본격적인 비가 쏟아졌다. 나 혼자만 준비해 온 형광색 레인 자켓을 꺼내 입고 열심히 언니들의 꽁무니를 쫓았다. 비 때문에 앞도 잘 보이지 않았고 바퀴는 종종 미끌거렸다. 바지가 젖어서 속옷이 젖기 시작하고 부츠 틈 사이로 물이 세어 들어가 양말도 젖었다.
언니들은 오히려 신이 나 있었다. ‘비 오는 날 여자 셋이서 미친 짓을 한다’고 까르르 웃는 모습에 나까지 들떴다. 비가 오든 말든 바깥에 나가 동네 친구들과 신들린 듯이 고무줄놀이를 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처럼 순수한 환희를 바이크를 타며 다시 느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12시간의 투어였다. 6시간은 비를 맞으며 주행했고, 6시간은 식사와 폭풍 수다 타임이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는 온몸이 욱신거리고 몸에 한기가 들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이불속으로 얼른 들어갔다. 잠들기 전에 쌍화탕 하나 마시고 자라는 은주 언니의 말이 생각나서 수납장에 쟁여둔 쌍화차를 꺼내 마셨다.
이후 나는 그 팀에서 약 1년 정도 팀 활동을 드문드문 이어갔다. 그 기간은 아마도 내가 이 팀에 잘 어울리는 사람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해보는 시기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팀의 특징적인 점은 나와 다른 언니 한 명을 제외하곤 다들 남자친구 혹은 남편이 있다는 것이었다. 만나면 주로 이야기가 남편과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는 내 짝이 없다는 외로움과 서러움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그 대화 속에서 자꾸만 작아졌다.
'나도 바이크 타는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바이크를 시작할 때부터 막연하게 품었던 바람이었다. 제조사와 장르 상관없이 매뉴얼 바이크를 타는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같이 라이딩을 즐기면서 특별한 추억도 쌓고, 정비나 주행 스킬 등 특별히 어려운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런 생각이 언니들 틈에 있으면 더 진해졌다.
그러다가 특별한 계기 없이 결국 동호회를 나오게 되었다. 아마 한두 번 가슴이 선득할 정도로 직설적인 ‘친언니’ 포스의 잔소리를 들었던 것도 그런 결정을 하는데 한몫한 것 같다.
나는 언니들이 보여주는 애정과 관심을 있는 아무 부채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나다운 방식으로 언니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행동을 할 수도 없다고 느꼈다. 은주 언니 집에서 밥도 얻어먹고, 투어 가면 군것질 거리도 잘 얻어먹고 다녔는데 나는 그분께 (경청하는 것 이외에) 해준 게 무엇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직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다 드러내 보일 수 없는 마음 안에 소심하고 예민한 부분들 때문에, 언니들의 진심 어린 태도에도 스스로 철수하는 걸 선택했다고 밖에 말을 못 하겠다. 그래도 늘 발랄하고 시원시원한 언니들 틈에서 함께 신나게 달렸던 경험은 두고두고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