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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Jun 17. 2020

은희경 『빛의 과거』가 아픈 이유

기억의 편집

나는 어릴 적 기억이 별로 없다.

단편적으로 사진이 남아 있는 상징적인 날을 제외하곤, 유년시절은 물론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시절의 기억도 선명하지가 않다. 친구에 유독 기억력이 좋아 '그때 니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때 그런 일이 있어가지구 완전 반이 다 뒤집어졌잖아~'하며 마치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인 양 십 수년 전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친구를 보면, 같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풀어낼 썰이 없다는 게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기억력이 나빠서,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과거의 기억을 입맛대로 편집하고 각색하는 못된 버릇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를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과거의 일을 덮어쓰기 하고 있던 탓에, 진짜 기억은 소멸되고 새롭게 덧 씌운 가짜 기억이 필요에 의해 없어지기도 하고 다시 각색되기도 하면서 '잊어버렸다' '기억이 안 난다'로 얼버무려 왔던 것 같다.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불완전한 우리가 마주친 '다름'과 '섞임'의 세계

은희경의 『빛의 과거』에는 자신의 기억을 편집해서 소설화한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가 소설 속 소설로 등장한다. 주인공 '나'가 기억하는 40년 전의 1977년과 '그녀' 김희진의 1977년은 같은 사건을 각자의 굴절된 시선으로 받아들이면서 결말 또한 저마다의 갈래로 해석되고 저장된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과거를, 지금을, 미래를 살아가고, 작가 은희경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것으로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지르고 있는 [기억의 편집]을 보편적 권리로 인정해주는 셈이다.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기억이라는 키워드 이외에도 빛의 과거는 여러 각도에서 읽는 내내 나를 자극시켰다. 1977년부터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으며 이어지는 여성으로서의 삶의 단편. 그것이 대학 신입생이든, 사회 초년생이든, 기혼 혹은 독신이든, 이혼이든 간에... '공주'로 묘사되는 등장인물들은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이 내 안의 모습과도 중첩되면서 공감과 연민, 그리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가슴을 시리게 했다.


당신의 『빛의 과거』

나 같기도 너 같기도 한 그녀의 문장에 아프고 쓰리면서도, 한편으론 위로를 받으며 안팎에서 나를 조명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동시에 해묵은 에피소드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와 화끈거리기도 했다.


소설 속 나와 그녀는 특별한 소회를 풀지도 거리를 두지도 않은 채 그렇게 다시 각자의 자리와 거리를 유지하며 지금을 살아간다. 마지막 결론은 마주하고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왜 하필 그 사람이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때 당신의 『빛의 과거』는 어떠했느냐고 묻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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