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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Jul 19. 2020

올여름, 『어른의 그림책 』

온라인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혼자 책을 읽는다는 건 여러모로 편한 일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나만의 영역 표시와도 같다. 정해진 시간, 해야 할 일들, 지켜야 할 규칙들. 하루에도 수많은 ‘약속’의 틀 안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정해진 룰도 규칙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읽는 동시에, 중간중간 다른 책으로 옮겨 타기도 하면서 더디지만 나만의 보폭으로 나아가며 나라는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오롯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위로를 받는 책을 만나는가 하면, 다른 날은 묵직한 깨달음을 주는 책을 찾아 나서는 날도 있다. 몇 달씩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는 책도 있고,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나가는 책도 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실상은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읽다만 -ing형의 책들은 책장에 쌓여가고,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은 복잡하고, 이렇다 할 리뷰 한 줄도 남기지도 못한 채 방치해 버린 책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지금은 ‘라떼는 말이야’를 말머리에 붙여야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회사에선 매달 동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보다 당연한 시절이 있었다. 사실 나는 꾀부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독서 토론은 좋았지만 생각이 미처 농익기도 전에 제출해야 하는 감상문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핑계를 대며 미룰 대로 미루다 늘 꼴찌로 제출하곤 했다.


먹으면 먹는 족족 살로 가듯이 책도 읽으면 읽는 만큼 생각을 살찌우면 좋으련만, 그 많던 문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연히 다가온 초대장 

그런 내가 독서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요즘 핫 하다는(?) 온라인 독서모임. 나도 하고 싶어서 … 는 물론 아니고, 계기는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독서 모임을 주최한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코붱’이라는 필명의 작가님. 자칭 ‘#글쓰는백수’라고 본인을 소개하시지만 내 눈에는 암만 봐도 ‘글 잘 쓰는 백수’로 보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누구보다 알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신 분이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그리고 유튜브를 무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코붱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느 날 [독서모임 멤버 모집] 공고를 발견했고, 홀린 듯이 신청양식을 작성하다 ‘잠깐, 할 수 있겠어?’ ‘말만 해놓고 안 하면 이게 무슨 민폐인가’ 싶은 생각에 누가 볼세라 꼬깃꼬깃 마음을 접어두고 있었다.


▶︎ 코붱님의 초대장


그러다 하루 이틀 … 모집 마감 기간이 다가왔을 즈음 코붱님이 쓰신 [삶의 속도에 글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덧글을 남기게 되었고, 다행히도(?) 아직 마감 전인 독서 모임에 합류하는 행운의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단지 책을 함께 읽자는 이유만으로 만난 모임.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고 약속한 2주간의 시간 동안 설렘과 동시에, 혼자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묘한 긴장감이 함께했다.




어른의 그림책


독서 모임의 첫 번째 선정 도서는 『어른의 그림책』(황유진 저, 메멘토)


아이들 있는 집이 다 그렇듯, 우리 집도 자기 전 두세 권의 그림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그림책을 읽는 시간은 아이와 나 모두를 충만하게 한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그 이유를 책머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엄마인 나에게 그림책 읽는 시간은, 아이와 함께 대화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중략) 그러나 그림책 독자층이 어린이에 국한되지 않으며, '글과 그림이 결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독특한 매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림책이 어른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는 성인 책에 가득한 문자 언어로는 하기 힘든 경험이다. 글과 논리의 세계는 대부분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찬찬히 텍스트를 읽으면 어떤 감정이 고양되기는 하지만, 이는 이성을 거쳐 정제된 감정이다. 시각 경험은 이보다 훨씬 더 순수한 감정을 자아낸다. 늘 절제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세상에서, 날것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집 안의 작은 그림책 서가에서 나는 순식간에 웃고 울다 뭉클해진다.

『어른의 그림책』(황유진 저, 메멘토) 들어가는 말


우리 모녀는 도서관에 가면 지난 책을 반납하고 두 갈래로 나뉜다. 향하는 곳은 둘 다 어린이 책 코너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읽고 싶은 책을 따로 고르러 가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고르며 혼자 가만가만 읽어보다 울림을 공유하고 싶으면 빌려온다.


그렇게 아이가 빌린 책과 엄마가 빌린 책이 반반 책장에 꽂히고 어스름 저녁이 되면 하루에 두 권, 서로서로 추천하는 책을 읽는 셈이다. 아이는 나에게,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책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다.


『어른의 그림책』은 나아가 더 적극적인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를 권한다. 그림책에 스며있는 글과 그림으로 나도 위로받고 나도 성장할 수 있구나.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구나. 그래서 그림책 읽는 시간이 좋았던 거구나. 깨닫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함께 읽은 그림책

책 속에서 소개하는 그림책은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예약 대여를 신청했다. 아쉽게도 한국 도서들은 구하기 어려웠지만, 일본 도서나 그 외 해외도서들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우리 모녀가 좋아해 마지않는 유리 슐레비츠 작가의 책 『보물』, 아이가 좋아하는 『ボタン』이라는 책의 콤비이기도 한 모리 에도 글, 스기야마 가나요 그림의 『세상에서 하나뿐인 특별한 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함께 하는 세 친구를 그린 헬메 하이네의『나의 영원한 세 친구』는 특히나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고 읽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읽어 주어야 했다.


요즘 들어 부쩍 꽃과 나비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피어있는 꽃뿐만 아니라 피어나는 과정까지를 섬세하고 정교하게 묘사한 아라이 마키 작가의 『해바라기』와 『튤립』은 특별히 소장하고 싶어 아마존으로 주문까지 해두었다.


내가 보려고 만든 독서 목록

아직 다 읽지 못한 책들도 많아서 한동안은 '무얼 빌릴까' 고민하지 않아도 몇 달치 독서 목록이 빵빵해 벌써부터 배부른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꼭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목록들은 다음과 같다.


『오리건의 여행』

『똑, 딱』

『낱말 공장 나라』

『엄마, 잠깐만!』

『씨앗 100개가 어디로 갔을까』

『단어 수집가』

『선 따라 걷는 아이』

『용감한 아이린』

『첫 번째 질문』


나와 너를 잇는 그림책

아이가 아니었다면 멈추어 머무를 기회가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본다. 성취욕과 불안이 많은 나는 잘 멈추지를 못한다. 말로는 지금을 즐겨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브레이크가 되어준다. 강제로라도 나를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아이들이다. 순간에 충실하지 못하면 아이와는 제대로 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질문을 온전히 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했을 때, 아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가 실수했을 때, 입을 삐죽거리는 아이 앞에서 미안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일까.

(중략) 아이들은 절대로 그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풍선처럼 다른 곳으로 흘러가려는 내 마음의 끈을 꼭 붙들어 자기들 손목에 딱 묶어놓는다. 나는 꼼짝없이 아이들에게 붙들려 책 속으로 들어간다. 아이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책 속으로 재잘대며 들어온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되겠다고 셈할 수도 있지만, 그림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웃고 울고 가슴 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 나는 엄마지. 그리고 책 읽어주는 엄마지. 내가 그림책에 한껏 머물러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은 8할이 아이들 덕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꼼짝없이 책 속에 갇혀버린다. 행복한 감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 것이다.

『어른의 그림책』(황유진 저, 메멘토) - 일과 육아의 균형 중에서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는 제법 혼자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은 엄마와 아빠를 앉혀놓고 '내가 읽어줄게'하고 선생님 흉내를 내기도 한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언제까지 이런 시간이 지속될까...' 괜한 걱정을 길어다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어른이 되고 다시 그림책을 돌아보게 된 것은 순전히 아이 때문이었다. 시작은 그랬지만 이제는 내가 더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림책 읽으며 통해서 너를 더 많이 알게 되고, 나를 더 많이 드러낼 수 있게 된 것도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탄하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림책이 전하는 이야기에 심장이 덜컥 떨어져 본 적이 없다면, 그림책이 나를 꿰뚫고 지나가는 아찔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면... (중략) 남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 말이 예쁘고 곱지만, 덜 우려낸 찻물같이 밍밍하고 얕은 말이라는 것을. 나의 내면조차 관통하지 못한 말이 누구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중략) 그림책에 감탄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상에도 끊임없이 감탄할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의 온도가 바뀌면 귀신같이 알고 새 잎을 틔우는 봄 나무에, 목덜미와 등허리를 데워주는 초여름 오후 햇살에, 먼 산의 능선까지 뚜렷이 보이는 날 폐에 가득 채워지는 깨끗한 공기에. 감탄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은 고움의 결이 같다. 그리고 연습할수록 감탄과 감탄의 곳간은 커지게 마련이다.

『어른의 그림책』(황유진 저, 메멘토) - 감탄할 줄 아는 마음 중에서


가끔은 소비하듯 그림책을 읽어주던 적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안다.  '감탄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림책을 나와 모든 하루하루에 깨어있어야 함을 일러준 고마운 책. 『어른의 그림책』은 푸른 잎을 적시는 장맛비처럼, 올여름 엄마인 나를 한 뼘 성장시켜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덧, 함께하는 독서모임의 향후 일정

팀 명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채, 함께 읽을 다음 책은 장강명 작가의 『표백』. 당분간 나의 통근 파트너가 될 예정이다. 요로시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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