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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Sep 06. 2019

행복의 가격

완벽한 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나는 지금 신데렐라 성이 보이는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방금 막 스플래시 마운틴을 타고 내려와 3년 전 겨울을 회상하고 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지낸 혹한기 훈련을 절대 잊지 못할 겨울 에피소드로 꼽는다는데, 나에게 그 해 겨울은 내 생에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 겨울이었다.


새벽 3시 50분에 시작되어 저녁 7시 51분이 되어서야 끝났던 그날의 통증.


그렇다. 3년 전 그 날은 나의 보석 같은 아이, 첫 딸이 태어난 날이었다.


일본에서는 七五三(시치고산)이라는 풍습이 있는데 아이가 3살, 5살, 7살이 될 때마다 무사하게 성장했음을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앞으로도 무병하기를 기원하는 행사 중 하나이다. 11월 중순이 七五三(시치고산) 참배를 하는 시즌이라, 이 시기 각 지역의 신사는 기모노를 입은 아이들과 함께 온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가족들의 모습으로 북적거린다.


내가 일하는 사진관에도 유독 七五三기념사진을 찍으러 오는 가족들이 많다 보니 내 안에서도 무의식 중에 3살 생일 - 七五三(시치고산) - 특별하게라는, 마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식의 공식이 성립되어 딸의 3번째 생일인 오늘, 우리 세 가족은 디즈니랜드에 와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시치고산(七五三)여자아이는 세 살과 일곱 살, 남자아이는 다섯 살이 되는 해를 기린다.

평소보다 일찍 기상하여 분주하게 채비를 하고, 6시 반에 집을 나서서, 디즈니랜드가 있는 우라야스까지 장장 2시간+교통체증 30분의 운전을 감내하고, 입장하자마자 튀어나온 뱃살과 목에 건 대포 같은 DSLR 카메라를 부여잡고 숨이 끊어질 정도로 전력 질주하여 푸 상의 허니 헌트 패스트 패스를 손에 넣고, 지금은 4번째 놀이기구인 스플래시 마운틴을 타고 막 내려온 것이다.


딸은 말로만 듣던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를 보고 감동했고, 퍼레이드를 보고 두 손 두 발 들어 춤을 추었으며, 가이드북에서 찜 해둔 신데렐라가 타는 마차 모양의 팝콘 통을 사달라고 뗑깡을 부렸다. 디즈니랜드는 만 3살까지 입장이 무료이므로 입장료는 남편과 나 2일분, 1박 2일 투숙 호텔 객실료와 주차요금, 그 외 아침, 점심, 저녁식사, 고속도로 통행료, 기름값 등등으로 족히 10만 엔 가까이의 지출이 발생했다.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3살 생일 - 七五三(시치고산) - 특별하게로 이어지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공식은 이 어마어마한 지출을 가능케 하는 무시무시한 공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과 지출이 무색하게, 어쩌면 필요 없을지도 모를 나만의 욕심이었다는 생각을, 남편과 딸아이를 보며 하게 되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내려와 화장실에 다녀오니, 남편이   또띠야 도그와 단면이 미키 모양인 츄로스를 나눠먹고 있었다. 오전 중에 혹사한 다리를 쉬게 하고자 우리는 벤치에 앉아 달콤한 간식 타임을 가졌다.


또띠야 도그 330엔과 딸기맛 츄로스 310엔


나: 왜 두 개만 샀어?


남편: 그래야 나중에 딴 거 또 먹지. 나눠먹으면 딱 좋잖아.


딸: 아빠 한 입만.


남편: 그럼 아빠도 한 입만.


딸/남편: …. (우물우물)

 

아빠 한 입, 나 한 입 ... (니들 끼리만 먹냐 ...)

오늘이 특별한 날이길 바랐다.


그래서 (비싸지기 전에 미리미리) 호텔도 예약하고, 어떻게 하면 시간 대비 효율이 좋은 동선으로 움직일까 삼일 밤낮을 계획도 짜고, 시어머니에게 ‘평소에 그렇게 좀 일어나 보지’라는 군소리를 들으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직접 운전대를 잡고 이곳에 왔는데...


행복의 가격은 또띠야 330엔과
츄로스 310엔이면 충분했다.


아니, 그게 아니어도 되었겠지.


 



돌아오는 길.


역시나 퇴근길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변비 환자처럼 꽉 막혀있었고, 딸은 골아떨어졌고, 남편은 턱을 괴고 한 손으로 운전을 하고, 나는 시야를 가리는 헬륨 풍선을 부여잡고 창밖의 네온과 불 켜진 빌딩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일은 출근하고 보육원 가는 평소와 같은 매일이 반복될 것이다.

행복도 그 안에 있겠지.

첫 번째, 디즈니, 성공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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