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그 음흉하고 달콤한 유혹
인복이 참 많으셔요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칭찬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늘 어색하다. 누군가 불쑥 따뜻한 칭찬의 말을 건네면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고 ‘뭐지? 이 사람, 꿍꿍이가 있나?’ 의심부터 하고 본다. 평소 내 처신이 그렇다 보니 내가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지금 시비 거는 거냐?”하고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한 번은 회사 사람이 “니가 칭찬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라고 해서 크게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까짓 칭찬 ‘안 주고 안 받기’ 권법으로 드라이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쩜 이리 재주도 많고, 마음도 생각도 깊으신 분들이 많은지... 매일매일 올라오는 소식이 내 눈엔 하나같이 다 빛나 보인다. “금손이십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에요”, “이런 좋은 책이 있었네요” 등등 하루 종일 감탄만하다 끝나도 모자랄 정도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런 칭찬의 말들이 종종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글이 잘 읽혀요”, “공감했어요”, “저도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등등... 면대면으론 차마 부끄러워서 몸이 베베 꼬일 것 같은 칭찬이 댓글 창에 남겨질 때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혹시나 내 민낯을 아는 사람들이 볼까 싶어 불탄 고구마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달콤한 칭찬의 말을 들으면 ‘으흐흐~’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음흉한 나에게도 이것 만큼은 소나기 속 와이퍼처럼 자동 손사래 치게 만드는 칭찬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인복이 참 많으셔요”
오늘도 이 말을 듣고는 단오날 널 뛰듯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아아아아아 어쩌지~~
이런 류의 칭찬을 들으면 나는 정말이지 발끝까지 미안해진다.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해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아닌데 아닌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아니, 그게, 그게 말이죠... 변명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은 느낌.
오늘 나에게 이 과분하고 황송한 칭찬을 해 주신 분은 @schalom_in_tokyo 님. 도쿄 거주 한일 커플에 아이들의 연령도 비슷하여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감을 주고받으며 이어진 인연이다.
우리 아이와 1살 터울의 리사 짱은 끼와 재능이 샘솟는 사랑스런 아이로 한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까지 섭렵하여 올라오는 피드를 볼 때마다 ‘어머님이 누구니~’ 할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래서일까. 약속시간에 맞춰 멀리서 엄마 손을 잡고 등장한 리사 짱이 왠지 [인스타그램 스타]처럼 느껴졌는데 웬걸, 직접 만난 리사 짱은 수줍음에 엄마 팔에 꼭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영락없는 4살 여자 아이였다.
어른들도 긴장되는 첫 만남에 아이들 역시 딱딱하게 굳어있던 차, 두 아이의 거리를 좁힌 건 다름 아닌 그림 그리기! 널찍한 종이 위에 말로 꺼내지 못한 긴장감을 그림으로 쓱쓱 표현하는 아이들. 그렇게 토끼와 유니콘, 디즈니 프린세스를 대여섯 장 그려내고 나니 조금씩 긴장이 풀렸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잘조잘 스티커 북을 사이에 두고 놀기 시작했다.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가 걱정되긴 했지만, 장소를 옮겨 오랜만에 외출한 신주쿠 역 주변에서 숨바꼭질이며 얼음땡을 한참 즐기던 아이들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게 못내 아쉬운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10분이 멀다 하고 “이제 갈 거야? 언제 갈 거야?”를 재차 확인했다.
그렇게 야금야금 10분, 20분을 노래방 서비스처럼 연장하다, 이제는 정말 갈 시간이 되어 “다음에 또 만나자 ~”하니 눈물이 글썽하는 리사 짱. 결국엔 으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래도 1살 언니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어”하는 5살 유이나. 눈물로 ‘헤어지기 싫다’는 리사 짱에게 ‘미안, 나도 내일은 용무가 있어서...’라고 말 끝을 흐리는 진지한 대화가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별의 아쉬움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인 것. 짧은 시간에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즐거웠던 만남과 과분했던 칭찬의 말을 곱씹으며 사람과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인스타그램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식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먼저 한 발 다가갈 수 있는 용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혹은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마음, 그리고 그 사람의 좋음을 나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공감의 표시. 이 당연하고 쉬운 게 뭐가 그리 어려워 인간관계에서 늘 애를 먹었을까. 나와는 삼억 광년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인복이 많다’는 수식이 왜 온라인에선 가능했을까. 그걸 평소에, 여기서 할 수는 없을까. 두서없는 생각들이 차창 밖 풍경처럼 휙휙 지나갔다.
하루를 마무리하고도 쉬이 가시지 않는 말.
지금의 나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엄두도 나지 않는 말이지만, 조금은 방향을 알 것도 같다. 이 또한 마주 봐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마음이 마음을 모으는 것처럼. 그렇게 온오프의 경계를 허물며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과분한 칭찬 앞에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우히히) 그런 음흉한 상상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함께 해 주신
@schalom_in_tokyo 님과 리사 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