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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23. 슬럼독 밀리어네어

2019. 1. 26.

오늘은 인도 공화국의 날(Republic Day)로서, 1950년 1월 26일 헌법을 발효하고 공식적으로 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을 선언하면서 영국 연방 자치령에서 벗어난 날이다.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뉴델리와 주 수도에서 열리며, 인도 육ㆍ해ㆍ공군 대표와 전통 무용단이 대통령궁에서 붉은 성(Red port)까지의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외국 정상이 주빈으로 초청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0년에 국빈으로 초청된 바 있다.      


차트라파티 시바지 역  CST, Chhatrapati Shivaji Terminus

9시쯤이 되자, 호텔 근처의 조그마한 후타트마 경찰서(Hutatma Poilce Chowki)에서 30여 명의 직원들이 국기게양식을 하고 있다. 10여분에 불과하지만 인도 공화국의 날이라 더욱 진지하게 보인다.

가까운 곳에 있는 차트라파티 시바지 역을 찾았다. 거리는 인파들로 분주하고 길 건너의 뭄바이 시청(MCGM, Municipal Corporation of Greater Mumbai)은 공화국의 날 행사 준비로 한창이다. 아주머니들이 행인들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인도 국기를 가슴에 달아주고 있으며, 좌판에는 인도 국기를 소재로 한 다양한 배지를 팔고 있다.  

1876년부터 10년 동안 지어진 차트라파티 시바지 역(CST)은 매우 역사적인 터미널로서 「2004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영국 강점기에는 빅토리아 역으로 불렸으나, 1996년 17세기 마라타 국왕의 이름을 따서 차트라파티 시바지로 개명하였다. 인도 중앙 철도의 행정 본부가 위치하고 있으며, 하루에 약 1천 여 대의 기차가 이 역을 통과하고, 약 3백만 명의 승객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에는 참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다. CST도 역시 아름답다. 버킹검 궁전처럼 철제 출입문이 금색과 검은색으로 어우러져 있으며, 양쪽 기둥 위에는 영국과 인도를 상징하는 사자와 호랑이가 늠름하게 역을 지키고 있다. 커다란 시계가 있는 중앙의 높은 건물과 뾰족한 첨탑, 십자가 등의 건물 형태는 유럽의 전형적인 고딕 양식이지만 중앙의 커다란 돔형 지붕으로 인해 인도의 전통적인 궁전 같은 느낌을 준다.

고급 승용차가 몇 대 들어온 후로 정문을 통제하여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대합실과 플랫폼이 나온다. 대합실은 거대한 아치형의 높은 천정이 특징적이며,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어 매우 유럽에 온 것 같다. 플랫폼은 역의 종착지이자 출발지이기 때문에 끝도 없어 보이는 기찻길이 앞으로 쭉 뻗어있다. 오늘은 휴일이라 한산하게 느껴진다.


CST가 있는 포트(Port) 지역은 남쪽의 콜라바(Colaba)처럼 유럽식 건축물과 커다란 가로수가 가득한 시가지이다. 그냥 런던에 있는 듯한 느낌이라 목적지가 없이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 가보니 안주만 학교(Anjuman-I-Islam Urdu School)이다. 군복 형태의 화려한 교복을 입은 천여 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공화국의 날 행사를 하고 있다. 1874년 무슬림들에 의해 설립된 우르두어 학교이었지만, 지금은 80여 개의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되어있다고 하니, 소속된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참여한 듯이 수십 가지의 다양한 교복들이 어우러져 성대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매우 어린 학생들이 땡볕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초등학교 시절 지겨웠던 행사 참여가 떠오르지만, 아이들은 친구들과 즐겁게 재잘거리고 있다.

바로 옆에는 예술학교(J. J. School of Art)가 있다. 1878년에 설립된 미술 대학으로 인도의 미술 교육, 특히 건축물과 관련된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열대 식물원인 듯 교정은 녹음이 짙게 우거져 있다. 학생들은 곳곳에서 작품 활동 또는 교수의 강의에 몰입해 있고, 공터에서는 크리켓을 즐기고 있다. 뜨거운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곳이다. 


10여분 북쪽으로 걷다 보니 경찰청(Commissioner of Police) 맞은편의 혼잡한 교차로 모퉁이에 「Crawford Market」라고 쓰인 유럽풍의 훌륭한 건축물이 보인다. 건물의 안쪽에는 매우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과일, 채소, 식품, 화장품, 선물, 향신료 가게들이 즐비하고 가금류 상점들로 가득 찬 골목길을 볼 수 있다. 시장은 잘 정돈되어 있으며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게 지붕도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 것보다 세 배 이상 크고 색도 진한 딸기가 탐스러워 1kg(100루피)를 샀지만 단맛이 부족하다.  

발길이 내키는 대로 길을 건너니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듯한 거리에는 남대문 시장처럼 온통 상점으로 가득하지만, 찬드니 초크처럼 비좁거나 먼지가 많지 않다. 셰이크 메몬 스트리트(sheikh memon street)라 불리는 이 거리에는 옷, 봉제완구 및 그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을 판매하고 있다. 시장길 한편으로 이슬람의 미나르가 보인다. 테라스 지붕으로 된 2층 건물로 1층은 상점이다. 구글로 검색하니 300년 된 자마 마스지드(MS BAGS)로 인기가 많은 사원이다. 

지도를 보니 마린 드라이브까지는 2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라 서쪽으로 올드 하누만 라인(Old Hanuman lane) 따라 무작정 나아갔다. 100년도 넘을 듯 보이는 5~6층의 아파트들이 길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건물의 1층에는 주로 의류점이며 신식 건물의 교회도 있다.     


여왕의 목걸이, 마린 드라이브  Marine Drive 

해변 철도역(Marine Lines Railway Station)의 육교를 지나니 마린 드라이브가 펼쳐진다. 마리 드라이브는 나라만 포인트(Nariman Point)에서 말라바르 언덕(Malabar Hills)까지 아라비아해 연안의 백 만(Back bay)를 따라 건설된 3km 길이의 해변 도로이다. 나라만 포인트는 뭄바이 반도의 남부에 위치한 경제의 중심지이며, 말라바르 언덕은 백만을 감싸고 있는 도출형 반도로 뭄바이 부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6차선 도로이지만 인도에 온 지 거의 20일이 되다 보니 어렵지 않아 무단횡단을 하여 길게 뻗어있는 마린 드라이브의 산책로를 걸을 수 있었다. 낮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해안 방파제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다. 마린 드라이브는 밤에 빛나는 가로등 빛이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처럼 보이기 때문에 여왕의 목걸이(Queen's Necklace)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밤에 다시 와서 해변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느끼고 싶다.      

사회적 기업, 리얼리티 투어  Reality Tours & Travel

어느덧 1시 30분, 이제 서둘러 도비 가트와 다라비의 안내를 해 줄 리얼리티 투어로 갈 시간이다. 리얼리티 투어는 슬럼가의 삶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지역 사회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2005년에 설립된 사회적 기업으로, 다라비(Dharavi) 워킹 투어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행복까지 30일」에서 봤던 어린이들의 맑은 눈망울이 잊히지 않아 인도에 오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한 체험 프로그램이다. 콜라바의 레오폴드 카페(Leopold Cafe) 맞은편 2층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오늘 안내하는 가이드는 하늘색 긴 구르다를 입고 있는 20대 여성 Simran이고, 50대 보이는 이스라엘 여성 2명과 동행이 되었다. 바라나시와 오르차에 만났던 이스라엘인에게 반감이 있었던지라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하다.      


거대한 세탁소, 도비 가트  Mahalaxmi Dhobighat

처음 방문한 곳은 1890년부터 이어져 왔다는 뭄바이의 거대한 세탁소인 도비 가트이다. 도비는 카스트(직업)를, 가트는 빨래터를 의미하며,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도비왈라(Dhobiwala)라고 부른다. 도비 가트의 뷰포인트로 알려진 마하락슈미(Mahalakshmi) 역 근처의 다리 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다. 도비왈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리얼리티 투어가 이들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듯하다. 내부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없어 아쉽다. 

한 변이 150m쯤 되어 보이는 삼각형 형태의 도비 가트는 사방이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여 외로운 섬이다. 무너질 것같이 낡고 허술해 보이는 건물의 사이사이와 지붕 위에 수많은 빨래들이 걸려있다. 오후이기 때문에 빨래를 하는 노동자는 거의 보이지 않고 대개 빨래를 정리하거나 군데군데 그늘진 곳에서 쉬고 있다. 

Simran에 따르면 5,000여 명의 도비왈라가 하루에 뭄바이의 인구만큼인 약 2,200만 벌의 옷을 세탁한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는다. 일부 부유한 도비들은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로 작업하지만, 아직도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하여 밤 10시까지 일을 한다고 한다. 오전에는 독한 표백제의 물속에 몸을 담그고 돌바닥에 옷을 내리치고, 문지른다. 오후에는 긴 빨랫줄로 건조하고, 반듯하게 다림질하여 소비자에게 깔끔하게 배달한다. 고된 노동의 연속이지만 그들이 대가로 받는 돈은 고작 하루에 400루피 정도라고 한다. 한 번 보고 싶었던 곳을 찾았지만 가난과 힘든 노동을 구경하는 관광객이라 미안하다.     


아시아 최대의 빈민가, 다리비 워킹 투어  Dharavi Walking Tour 

다음 목적지는 인도의 가난과 빈부 격차의 상징이자 아시아 최대의 빈민가로 알려져 있는 다라비이다. 18세기에 다라비는 주로 맹그로브 늪이 있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6억 6500만 달러의 연간 매출액을 갖고 있는 산업단지이자 1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거대한 주거 단지로 바뀌었다.

다라비 출신 Simran이 이끄는 대로 매캐한 악취가 나고 먼지가 많은 재활용 골목(Recycling Area)부터 워킹투어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골목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작은 공장 안에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온갖 제품들이 가득 쌓여있다. 오래전에 없어졌던 VHS 카세트에서 플라스틱과 테이프를 분리하고 있는 노동자도 보인다. 

처음 마주친 다라비는 낡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파하르간지처럼 쓰레기로 가득 찬 길이나 쓰러져가는 슬럼은 아니었다. 여기는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로 활기가 넘치는 거대한 공단이며, 여기저기 쌓여 있는 쓰레기들은 그들의 생계 수단이었다. 2만 개가 넘는 업체들이 인도 전역에서 오는 쓰레기들에서 플라스틱을 분류하여 가루로 만들어 수출하거나 물통 등의 제품으로 재생산한다고 한다. 비좁은 계단을 돌아 올라간 루프탑에서 바라본 양철 지붕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광경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주택과 소규모 공장들이 위생, 배수구, 안전한 식수, 도로, 화장실 또는 기타 기본적인 서비스에 대한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성장하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항상 노출되어 있는 유해한 환경이 가장 위험하게 보인다. 뭄바이 평균 대비 22배의 인구밀도를 가진 이곳에서 불이라도 나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아찔하다.

다리비 거주자들은 인도 전역의 시골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힌두 60%, 이슬람 30%, 크리스트교가 6%이다고 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이슬람이란 이유로 자말의 엄마가 빨래터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이 기억나서 종교 갈등이 클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크지 않으며, 무슬림이 인도의 평균 13%보다 매우 높은 편이지만 힌두 사원의 한쪽에 무슬림을 위한 공간을 두어 힌두와 무슬림이 함께 이용하는 등 무슬림과 사이좋게 공생한다고 Simran은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본 듯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어두운 터널 같은 골목을 몇 차례 지나자 예상치 못한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놀이터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로 꽉꽉 채어진 다라비에 학교 운동장의 반쯤 되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매일같이 보는 관광객이겠지만 “Hello”라고 수줍게 인사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참 예쁘다. 이스라엘인들이 이곳의 특산품인 가죽공예품을 쇼핑하는 동안 잠시 놀이터에 머무니 가이드 Simran은 불미한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을 한다.

자말 형제 같은 두 아이가 내 앞에서 쭈뼛거린다. 돈을 요구할 줄 예상했는데 가슴과 가방에 꽂혀 있는 인도 국기를 원한다. 흔쾌히 아이들의 가슴에 인도 국기를 달아 주니 해맑게 웃는다. 어느새 아이들이 주변으로 몰려든다. 과자 행상에게 500루피를 주니 그가 들고 있는 커다란 비닐봉지의 전부다. 하나씩 나누어 주려 했지만 욕심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는 현상이라 나누어주기 어렵다. 꼬맹이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싶었을 뿐인데 어른들과 커다란 아이들이 힘으로써 몇 개씩 가져가려고 드니 괜히 일을 벌였는가 싶다.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Simran이 가자고 한다. 

비록 1시간 남짓한 짧은 다라비 투어이었지만 무수한 소규모 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골목골목마다 가득 찬 활기찬 삶의 모습을 보고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매력과 가치가 있는 곳으로 인도에 오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충분히 방문할만한 값어치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과 헤어져 한식당(Sun Moon Catering Services)을 찾았다. 소주 한 병 값이 도비 가트 노동자의 일당보다 비싸 잠시 머뭇거렸지만 20일 만에 먹는 제대로 된 한식과 소주는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든다. 오늘은 뭄바이 인구가 60%의 살고 있는 슬럼을 통해 인도의 민낯을 볼 수 있었던 쉽지 않은 기회이었으며, 한식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내일의 뭄바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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