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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20. 핑크시티, 자이푸르

2019. 1. 24.

오늘은 밀렸던 숙제를 해야 한다. 시티 팰리스 근처의 시티은행 ATM을 찾아 현금이 인출될 수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물론 엊그제 한국 커플의 도움으로 환전을 해서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찾아가야 한다. 

ATM은 조하리 바자르(Johari Bazar) 로드에 있기에 시장의 입구이자 핑크시티로 들어가는 관문인 상가네리 게이트(Sanganeri Gate)에서 내렸다. 차트리와 이완이 조합된 갈색 건물 위에 흰색으로 그려진 푸르나 가타는 꽤 감각적이다. 이제 핑크시티로 들어간다.     


자이푸르의 심장, 핑크시티 Pink City

사방 5km의 블록 형태로 건설된 핑크시티는 자이푸르 모든 활동의 심장부이다. 시티 팰리스를 중심으로 트리폴리아 바자르(Tripolia Bazar), 람가니 바자르(Ramganj Bazar) 및 챈드폴 바자르(Chandpole Bazar) 같은 주요 시장은 동서로 이어져 있고, 조하리 바자르(Jouhari Bazar), 키산폴 바자르(Kishanpole Bazar)는 블록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핑크 시티는 자이푸르의 건물들을 핑크색으로 칠해서 붙은 이름이다. 1876년 영국의 앨버트 에드워드(훗날 에드워드 7세) 왕자의 인도 방문은 인도의 정치인에게는 유대를 강화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였다. 자이푸르의 사와리 람 싱(Sawai Ram Singh II)은 앨버트 왕자를 초대하고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꾸미기 시작했다. 그는 존경과 환영의 상징인 분홍색(Gerua)으로 모든 시장과 주요 건물들을 칠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핑크빛으로 변한 도시 건물과 시장의 통일성이 매우 아름다워서 1877년 정부는 분홍색으로 건물을 칠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여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는 매혹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조하리 바자르를 걷기 시작했다. 4차선 도로의 양편으로 핑크빛 건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있을 듯한 시장이 골목길까지 꽉 차 있다. 조하리 바자르는 보석을 위한 쇼핑객의 거리인 듯 큰길에는 금, 은, 에메랄드를 파는 보석가게가 많이 보인다. 능숙한 장인들이 아름다운 작품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시티 은행의 파란색 간판이 반갑다. 카드가 잘못되었을 까 봐 떨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넣었더니 거침없는 속도로 10,000루피를 건네준다. 다행이다. 이제는 걱정이 없다. 인도를 즐기는 것만 남았다. 앞으로 쭉 10분만 걸어가면 하와 마할이다.     


바람의 궁전, 하와 마할  Hawa Mahal

하와 마할 로드를 걷다 보니 창문이 가득한 붉은빛과 분홍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건물이 보인다. 하와 마할이 거리의 한편에 서 있고 일부가 상점들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은 예상하지 못했다. 5층의 거대한 벽은 라자스탄 방식의 돌출형 발코니인 자로카(Jharokha)로 가득하다. 

1799년에 프라탭 싱(Maharaja Pratap Singh)에 의해 지어진 하와 마할은 핑크시티의 아이콘이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크리슈나의 열렬한 신봉자인 프라탭 싱이 크리슈나의 왕관과 비슷한 모양으로 건축하였기 때문이다. 

입구를 찾으려고 쉽지 않다. 한참을 돌아 힌두교 사원의 뒤쪽 길로 들어가니 건물에 둘러싸인 뜰이 나타난다. 뜰의 분수는 장엄한 궁전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여러 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하와 마할이다. 이 궁전은 원래 층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있다. 1층은 가을 축제가 열렸기 때문에 샤레드 만디르(Sharad Mandir), 2층은 벽에 눈부신 공예품이 있기 때문에 라탄 만디르(Ratan Mandir), 3층은 왕이 크리슈나를 경배했기 때문에 비치트라 만디르(Vichitra Mandir), 4층은 양쪽에 열린 계단이 있기 때문에 프라카시 만디르(Prakash Mandir)라는 이름이 있으나, 5층의 하와 마할(Hawamahal)이 유명하여 전체를 하와 마할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와 마할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953개의 창문이다. 바람이 돌로 만들어진 창문의 작은 구멍을 통과할 때 점점 더 차가워지고 빠르게 흐르는 벤투리(venturi) 효과로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불어 궁전이 고온에서도 쾌적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이런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하와 마할을 바람의 궁전(Wind Palace)이라고 부른다. 작은 창문을 통해 궁궐에 갇혀 살았던 왕궁 여인들의 눈으로 거리를 바라본다.      


세계 최고의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  Jantar Mantar

자이푸르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곳인 「2010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천문 관측소 잔타르 만타르로 향한다. 「잔타르」는 기계를 뜻하는 얀트라(Yantra)와 같은 의미이며, 「만타르」는 계측을 말한다. 1724년에 자이싱 2세에 의해 건립된 천문대는 시간 측정, 일식 예보, 주요 별의 위치 추적, 별들의 공전 궤도 추적 등을 위한 관측 장비를 가지고 있다. 

관측소에 들어가면 우선 보이는 것이 돌기둥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커다랗고 둥근 얀트라 라즈(Yantra Raj)이다. 2.43m의 청동으로 만든 이 기구는 힌두 달력을 계산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만 사용된다. 중앙에 있는 구멍(북극성)을 기준으로 여러 행성들의 위치를 정하고 행성의 회전 속도를 계산한다. 태양과 달의 일식 및 일출과 일몰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지구본을 반을 잘라놓은 것 같은 카파리 얀트라(Kapali Yantra)가 있다. 동쪽의 카파리는 천문학 문제를 그래픽으로 해결하고, 서쪽의 카파리는 원형 링의 그림자를 활용하여 방위각, 고도, 자오선 통과 시간, 태양의 적위 등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된다. 카파리 얀트라와 비슷한 프라카쉬 얀트라(Prakash Yantra)는 두 개의 반구형 해시계로 하늘의 거꾸로 된 이미지를 표시한다. 관찰자가 내부로 들어가서 고도, 방위각, 시간 각 및 기울기를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

두 개의 황동 고리로 만들어진 크란티 라이타 얀트라(Kranti Writa Yantra)는 천체의 경도와 위도 측정을 하는 데 사용되며, 돌기둥에 둘러싸인 두 개의 원형 고리인 차크라 얀트라(Chakra Yantra)는 영국 그리니치(Greenwich), 스위스 취리히(Zurich)의 정오에 해당하는 특정한 시각을 알려준다. 

람 얀트라(Ram Yantra)는 태양의 고도와 방위각을 찾는 데 사용되는 건물이다. 하늘로 개방된 한 쌍의 원통형 구조로 12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 똑같은 높이의 기둥은 원통의 반지름과 같으며, 벽의 바닥과 내부 표면에는 고도와 방위각을 나타내는 눈금이 새겨져 있다.

동남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삼각형 해시계 브리하트 삼라트 얀트라(Vrihat Samrat Yantra)가 보인다. 「관측 기구의 위대한 왕」을 의미하는 브리하트 삼라트 얀트라는 높이 27m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이다. 길이가 44.15m인 경사로는 자이푸르의 위도인 27도로 설계되어 있고, 2초 간격으로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눈금이 있다. 경사로의 맨 위에 있는 작은 돔 차트리는 일식 발표와 몬순의 도착을 알리는 플랫폼으로 사용된다. 비슷한 모량의 라구 삼라트 얀트라(Laghu Samrat Yantra)도 27도 기울어져 있는 해시계로 1분 단위로 시각을 측정할 수 있다. 

삼라트 얀트라를 축소해 놓은 듯한 12개의 라쉬발라야 얀트라(Rashivalaya Yantra)가 있다. 작은 기단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는 삼각형의 관측 장비로 양쪽에는 원형의 날개가 달려 있다. 이 장비들은 태양의 경로인 황도 12궁의 별자리 움직임을 측정한다. 월별 별자리에 따라 하나씩 만들어져 있으며 정확한 별자리를 향하도록 다양한 각도로 설계되었다. 라쉬발라야는 점성술사들이 정확한 별점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조선이 중국의 조공국이었지만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앙부일구를 만들어 독자적인 우주관을 정립하려고 했던 세종대왕이 생각난다. 잔트르 만타르는 엄청나게 진보된 훌륭한 과학기술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300년 빠른 15세기에 천체를 읽었으며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어냈다.      


하늘로 가는 통로, 이살라트 사가수리  Isarlat Sargasooli

두 시간 동안 입구에서 200루피에 구입한 과학 용어가 난무한 가이드북과 짧은 영어로 씨름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시원한 생맥주가 생각나지만 마실 곳이 없다. 잠시 트리폴리아 게이트 근처의 나무 그늘에서 쉬다가 이슬람 미나르인 이살라트 사가수리로 방향을 잡았다. 서점, 귀금속 상점, 철물점, 힌두교 사원, 의류점, 가전제품 상점, 제과점, 식료품점으로 가득 찬 핑크시티의 트리폴리아 로드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상점의 건물 위로 높다란 탑이 보인다. 

특별한 안내판 없이 방향 감각에 의지해 찾아간 이살라트는 한창 입구를 리모델링하는 중이다. 이살라트는 자이푸르의 설립자 자이싱 2세의 장남 이시와리(Ishwari Singh)가 동생과의 왕위 승계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1749년에 지었다. 하지만 왕이 사랑하는 여인이 왕실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어 그녀를 보기 위해 건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팔각형의 7층으로 된 64m의 이살라트는 「하늘로 가는 통로」를 의미한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지만 5분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인도 아가씨가 환하게 웃으며 물을 권한다. 물을 마실 정도로 힘들지는 않지만 마음이 고맙다. 자이푸르 대학생인 그녀들은 자이푸르 변화를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이푸르의 시가지를 촬영 중이라고 한다. 인도가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에서 벗어나는 사회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시티 팰리스, 암베르 성을 비롯한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이제야 답답한 속이 시원해진다.      


자이푸르의 맛집, 라씨왈라  Lassi Wala

나하르가 포트를 가야 하는 데 비가 올 것 같아 어제 제대로 관람하지 못한 자이푸르 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오늘도 공화국의 날 준비로 군악대가 분주하고, 앨버트 홀 위에는 비둘기 무리가 날아다닌다. 

배가 고프니 박물관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아침에 먹은 식빵 몇 조각으로 여섯 시간을 걸었으니 지칠 만도 하다. 어제 라씨왈라 가는 길에 보았던 맥도널드가 생각나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릭샤에 올라탔다. 평소에는 햄버거를 먹지 않지만 인도에서는 맥도널드 할아버지처럼 반가운 사람이 없다. 

흡족한 포만감을 갖고 라씨왈라로 건너갔다. 바라나시 3대 라씨를 일주일 지내는 동안에도 먹지 못했고, 애써 찾아갔던 인도 3대 라씨 중 하나라는 자이푸르 라씨왈라도 어제는 매진되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드디어 먹을 수 있었다. 다른 곳의 라씨는 설탕 맛으로 먹었지만, 라씨왈라의 달콤함은 자연스럽다. 바라나시의 람나가르 요새 앞에서 Mayank이 사 주었던 라씨와 비슷한 맛이 난다. 가격도 싸고 맛있으니 충분히 소문날 만하다. 라씨를 담았던 토기를 재사용할까 봐 걱정했는데 때마침 청소차가 모아놓은 토기를 싣고 간다. 비가 온다. 그동안 최악이었던 자이푸르의 미세먼지가 줄어들기를 희망해본다.     


숙소에서 쉬다 보니 다시 배가 고파진다. 옆 호텔의 마기 가페(Maggie Rooftop Cafe)를 찾아 어젯밤에 울려 퍼진 노래의 주인공을 만났다. 7대째 라자스탄 음악가라는 크리슈나 도랙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맥주를 마시고 있는 10여 명의 남녀 대학생들은 도랙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아가씨들이 더 적극적이다. 약간의 팁을 주자 도랙은 나를 위해 라자스탄의 환영 노래와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사랑노래를 선사했다. 그의 노래와 함께 이색적인 밤이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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