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1.
7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여 안개처럼 자욱한 미세먼지 속의 타지마할을 찾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쾌할 정도이다. 타지마할을 보호하기 위해 인근의 공장에서 석탄이나 코크스 산업을 금지하지만 효과를 볼 수 있는 정도로 아닌 듯싶다. 무덤 입장권(200루피)을 포함하여 1,300루피를 지불하면 물과 티켓, 덧신을 준다. 소지품에 제한이 많다고 하여 스마트폰 하나만 챙겼더니 입장에 어려움이 없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이자 6대 황제 아우랑제브의 어머니인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17년(1631~1648) 동안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만든 궁전 형식의 거대한 이슬람 무덤을 말한다. 이슬람 건축 예술의 보석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걸작품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타지마할은 「198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0개의 기존 기념물 중 하나를 선택하는 투표인 「2007년 세계의 새로운 7대 불가사의(2000~2007)」 캠페인에서 우승하였다.
1631년 왕비 뭄타즈 마할은 14번째 출산 중에 사망했다. 왕비의 무덤인 타지마할의 건축은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어 무굴제국이 쇠퇴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무덤 건설 반대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샤 자한은 아그라 성에 유폐되었다가 타지마할에 같이 묻힌다. 절대 권력을 가진 그에게 타지마할은 영원한 사랑의 로맨스이었겠지만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폭군이다.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피라미드를 건축한 파라오처럼 샤 자한도 앞을 내다보고 후세의 끼니를 걱정했던 왕이었을까?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남쪽 벽의 중앙에 위엄 있게 서 있는 타지마할에 입장하는 거대한 문(Great Gate)이다. 높이가 20m쯤 되어 보이는 직사각형 건물로 좌우대칭이다. 귀퉁이에는 이슬람 사원의 전형적인 돔이 있으며, 크샤트리아의 상징인 붉은색 사암이 고전적인 멋을 더해준다. 이슬람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아치 형태의 출입구 이완(iwan)에서 펼쳐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전망은 정말로 놀랍다. 완벽한 비례와 대칭의 조화로움 속에 우뚝 서 있는 웅장한 타지마할의 자태에 전율이 느껴진다. 꼭 한 번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어릴 적 미술 교과서 속의 타지마할 앞에서 서 있으니 매우 기쁘다. 충분히 만족스럽다.
중앙의 무덤까지 가운데로 길게 뻗은 물길에는 또 하나의 타지마할이 있고, 양편에는 수십 그루의 잘 정돈된 가로수가 서 있다. 길을 따라가면 말의 의미대로 천상으로 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조경이다. 바깥쪽에는 한 변의 길이가 100m쯤 되는 4개의 정사각형 모양의 푸른 정원인 차하르 바그가 있다. 낙원을 의미하는 「파라다이스 가든」으로 알려진 이곳은 이슬람 신앙에 따라 물, 우유, 꿀, 포도주의 네 가지 정원, 차하르 바그(Chahar Bagh)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인공정원이지만 녹음이 짙은 커다란 나무들과 지저귀는 새소리에 편안함이 느껴진다.
한 변이 300m가 되는 크고 흰 사각형 대리석 기단 위에 무덤이 우뚝 서 있다. 높이 58m의 커다란 돔, 4개의 챠트리, 아름답게 장식된 이완(iwan)이 있는 완벽한 좌우대칭 건물이다. 타지마할은 아침에 분홍색, 저녁에는 우윳빛, 달이 비치면 황금색이라고 하는데, 아침 안개가 걷히니, 새하얀 대리석은 흐린 날씨임에도 햇살을 반사해 눈부시게 아름답다. 네 귀퉁이 서 있는 대리석 벽돌을 높게 쌓아 올린 미나르는 델리의 꾸듭 미나르보다 정갈하다. 크샤트리아 계급의 상징색은 붉은색이기 때문에 이슬람 황제들은 붉은색 사암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으나, 샤 자한은 브라만 계급의 상징색인 흰색까지 사용하면서 모든 계급의 통치자가 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의 외부 벽은 수선화, 백합, 튤립을 모티브로 한 장식들이 많이 보인다. 이는 힌두교 전통인 푸르나-가타(purna-ghata) 방법을 사용하여 은유적으로 샤 자한의 통치를 칭송하기 위한 것이다. 「가득 찬 그릇」을 뜻하는 푸르나 가타는 불교나 힌두교 의식에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베다 시대부터 풍요와 생명의 상징이 되어 오면서 건물을 지을 때 사용되는 상서로운 상징 무늬이다. 지극히 사랑했던 아내를 위한 무덤이라고는 하지만,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통해 황제로서의 권위를 사방에 알리고 싶어 했던 것이다.
관광객의 긴 줄을 따라 무덤의 내부로 들어갔다. 흰색의 대리석 벽면에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을 활용하여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상감되어 있다. 잎과 꽃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돌의 색조 감각은 물감으로 그린 것처럼 거의 실제처럼 보인다. 안은 어둡지만 적은 빛에도 반짝이는 정교한 상감과 세공 기법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무덤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시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박물관 관람처럼 안내인의 얼른 지나가라는 재촉에도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옆에서 살짝 듣는 것이 재미는 있어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200루피 가이드 요구를 거절하고 타지마할로 들어온 것이 아쉽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말 형제 같은 엉터리 가이드라도 함께 하면 알찰 것 같다. 나오는 길이 아쉽다. 타지마할은 분명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다.
어제 아그라 캔트 역에서 호텔까지 100루피에 태워주었던 정직한 Rajo에게 아그라 투어를 부탁했다. 그가 요구한 금액은 1,000루피이다. 릭샤 사용료 500루피, 유류비 150루피, 주차료 50루피를 주면 300루피 남는다고 한다.
그의 안내를 받아 처음 간 곳은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붉은 성 아그라 요새로서, 「198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길이가 2.5km나 되는 성의 둘레에는 깊은 해자가 있고 이중의 성벽이 안을 감싸고 있는 매우 견고해 보이는 성이다. 타지마할에서 가이드 없이 관람한 것이 아쉬워 찾으려고 해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샤 자한에게 죽은 라지푸트의 전사 아마르 싱의 이름을 딴 아그라 요새의 남문인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ingh Gate)를 지나 높다란 담벼락 샛길을 따라 올라가면 딱 트인 푸른 정원이 나온다. 악바르 황제가 아들을 위해 지었다는 자항기르 마할(Jahangir Mahal)이다. 성벽처럼 붉은 사암으로 건설한 이 궁전은 화려하면서 정갈하다. 궁전 앞에 있는 자항기르 욕조(Jahangir'hauz)가 눈길을 끈다. 1610년에 화강암을 제작한 이동식 원형 욕조 그릇은 높이 1.5m. 직경 7.6m이다. 한 사람의 욕조 치고는 너무 크고 무겁다. 궁전의 입구는 이슬람 건축 양식인 아치형의 이완 위에 라자스탄의 건축물에 사용되는 돌출형 발코니인 아름다운 자로카(jharokhas)와 건물 양쪽 끝에는 우산 모양의 돔인 챠트리(Chhatri)가 균형 있게 설치되어 있는 등 이슬람과 힌두, 라자스탄의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어울려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페르시아 스타일의 석재 조각으로 장식된 대형 홀이 있는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 가운데에 있는 퍼즐같이 생긴 독특한 모양의 우물이 인상적이다.
자항기르 마할과 이어져 있는 샤 자한 마할(Shah Jahani Mahal)은 흰색의 회반죽 위에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이중 기둥이 있는 중앙홀을 지나다 보니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중년의 한국 관광객들이 한국말이 유창한 인도인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카스 마할(Khas Mahal)에 대한 설명을 함께 듣기 시작했다.
카스 마할은 샤 자한이 딸인 Roshnara와 Jahanara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공주의 방은 왕의 침실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왕의 침실은 천정이 높고 하얀 대리석 벽에 아름다운 꽃 그림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공주의 방은 트레포일 아치(Trefoil arch) 형태를 띠고 있는 도금된 벵골 스타일 지붕이 이색적이다. 코브라가 살 수 있기 때문에 액세서리를 넣는 작은 구멍에 절대로 손을 넣지 말라고 가이드가 당부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더운 바람이 대리석 창문의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면 기온이 낮아지기 때문에 모든 침실에는 벌집 또는 네모 모양의 작은 구멍이 뚫린 대리석 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동쪽 탑은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아우랑제브 황제가 아버지 샤 자한이 죽을 때까지 8년 동안 가둔 곳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이다. 저 멀리 야무나 강 뒤로 타지마할의 둥근 돔이 보인다. 죽은 뒤에야 아내의 무덤에 갈 수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얀 대리석 위에 보석으로 상감되어 있는 무삼만 버즈는 타지마할의 내벽처럼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의 감옥이었다.
무삼만 버즈의 옆에 있는 여름 궁전 쉬시 마할(Shish Mahal)과 접견실인 디와니카스(Diwan-I-Khas)도 꽤 볼만한 건축물이다. 쉬시 마할의 벽과 천정은 작고 아름답게 장식된 거울을 사용하여 밤에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디와니카스는 천정은 원래 금과 은으로 상감되었으나 18세기 금융위기로 벗겨지고, 가구들은 19세기에 약탈되었다고 한다.
왕의 침실 앞에는 축구장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사각형의 정원, 앙구리 바그(Anguri Bagh)가 있다. 황제의 포도주를 위해 재배하였기 때문에 「포도 정원」이라 불린 이곳은 왕실 여성들을 위한 휴식공간이었다고 한다. 정원은 중앙의 분수를 기준으로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대칭으로 되어 있는 물결 모양의 재배 공간에는 포도 대신 붉은 화초가 채워져 있다.
앙구리 바그를 나서면 북쪽으로 디와니암(Diwan-i-Aam)이 있다. 왕의 접견실인 디와니암의 커다랗고 굵은 40개의 기둥이 인상적이다. 정원에는 1857년 인도 독립전쟁인 세포이 항쟁 때 죽은 영국 부총독 콜빈의 무덤(Tomb Of John Russell Colvin)이 덩그렇게 있다. 이토오 히로부미가 경복궁에 묻혀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인도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그라 요새는 외부로 보이는 강인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작은 궁전, 분수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 전망 좋은 발코니 등 동화 속에서 보아왔던 부드럽고 평화로운 분위기이었다.
무굴 제국의 가장 훌륭한 황제라 일컬어지는 악바르 황제 무덤이 있는 시킨드라까지는 11km에 불과했지만 릭샤로 40분 정도 걸렸다. 주차장에서 가이드로 500루피를 요구하는 청년의 요구를 묵살하고 입구에 가니 명찰을 건 공식 가이드가 300루피를 제안한다. 타지마할과 아그라 요새에서 가이드가 없어 재미없었던지라 흔쾌히 수락하였다.
다 허물어졌지만 고색이 창연한 로디 무덤(Lodhi Tomb)과 왕실 여성들을 위해 사용된 칸츠 마할(Kanch Mahal)을 지나면, 묘의 중앙 출입구이자 가장 인상적인 남문이 보인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크리스트교, 조로아스터교, 자이나교의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악바르 황제가 추구했던 종교화합의 정신이 느껴진다. 붉은 사암과 대리석이 어우러진 남문을 보니 힌두교의 샤크리, 이슬람교의 미나르, 크리스트교의 십자가, 조로아스터교의 이완이 눈에 띈다. 입구 양옆에는 힌두교의 卍을 비롯한 각 종교의 상징 마크가 있고, 벽면에서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사용되는 푸르나-가타를 의미하는 화려한 꽃들을 볼 수 있다.
악바르 자신이 스스로 무덤을 계획하여 선정된 장소에 아들 자항기르가 1613년에 완성된 무덤은 요새처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넓은 정원의 중앙에 서 있다. 무덤은 다른 모든 무굴 건물들과 다른 독특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 입구로 들어가서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특별한 치장이 없는 악바르의 지하 묘실이 있다. 타지마할에 비하면 매우 소박하다. 안타깝게도 아우랑제브의 통치 기간에 람 싱(Raja Ram Singh)이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악바르의 무덤을 약탈하고 뼈를 불태웠다고 한다.
1층에는 황실의 묘로 사용하려는 의도인 듯 여러 개의 묘실이 있으며, 여기에는 악바르의 가묘, 공주들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무덤의 각 네 면에는 50여 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둥근 천정의 회랑이 각 열 개씩 있다. 사방에서 악바르를 경배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한쪽 벽을 보고 이야기하면 맞은편 벽면에서 매우 명확하게 소리가 들린다. 가이드는 500년 전의 「Technology Phone」이라고 설명하면서 석고로 칠해져 있는 벽면이 습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소리의 전달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덧 1시가 훨씬 넘었다. 허기진 나를 Raja는 무료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크교 사원인 구루드와라 만지 사히브로 안내한다. 시크교는 이슬람과 힌두교가 혼합된 종교로 16세기 펀자브에서 나나크(Guru Nanak)에 의해 창시되었다. 개인적 수양을 통한 해탈을 목적으로 하며, 성실한 노동과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한다.
Raja를 따라 손과 발을 씻고 두건을 쓰고 약간의 돈을 기부한 후 신상에 경배하였다. 넓은 식당으로 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맞추어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봉사자들이 다니면서 식판 위에 밥, 짜파티, 달을, 컵에는 라씨를 준다. 배가 고픈 탓인지 어느 때보다 음식이 맛있다. 부족하면 더 먹을 수 있다. 다 먹은 뒤에는 직접 식판을 씻어야 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퇴짜를 맞는다. 바득바득 소리가 날 때까지 깨끗이 씻어 통과되니 다시 아주머니들이 세재로 설거지를 한다. 식판을 이 정도로 청결하게 관리하니 음식의 위생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릭샤 왈라를 잘 만난 덕에 관광객들이 아그라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시크교 사원까지 갈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다시 Raja의 릭샤를 타고 야무나 강 너머 이트마드 우드 다울라의 무덤으로 향했다. 자항기르 황제의 장인인 미르자 기야스 백(Mirza Ghiyas Beg)의 무덤으로 베이비 타지마할 또는 미니 타지마할이라고 불린다. 타지마할에 비해 규모만 작을 뿐 무덤의 형태, 차하르 바그(Chahar Bagh), 피에트라 듀라(Petra Dura) 기법 등 무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비슷하여 타지마할의 초안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사암으로 된 넓은 기단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무덤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벽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섬세함이 정말 놀랍다. 내부는 부부의 관이 있는 중앙 홀을 다른 가족들의 관이 있는 작은 방들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다. 벽면과 천정은 푸르나- 가타, 나무, 동식물, 새, 문자들이 기하학적인 무늬들과 어울려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지만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효과적이지 않다.
서문은 야무나 강을 전망하기에 좋은 위치로 일몰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강폭은 넓으나 건기가 유량은 많지 않다. 강둑에는 사람들이 모여 오락을 즐기는데 옷차림새로 보아 강변에서 사는 빈민층인 듯하다. 가만히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느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두 명의 한국인 아가씨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한 번 찍고 확인하고, 또 찍고 확인한다. 인도가 위험한 곳이라고 소문나서 여행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유쾌한 모습을 보니 보기 좋다. 딸 둘 가진 한국 아저씨의 숙련된 사진 기술을 발휘해주니 매우 흡족해한다. 충분히 커버 사진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비 타지마할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이미 타지마할을 보았기에 큰 감동은 없다. 하지만, 섬세한 상감기법을 시간의 제약이나 사람들의 방해 없이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충분히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
팁을 안 준 것이 후회스럽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씨가 좋지 않아 서둘러 타지마할 선셋 뷰포인트로 향했지만, 가는 도중 흙비가 강한 바람을 타고 날리더니 급기야 천둥과 함께 빗방울이 굵어진다. 호텔로 갈 수밖에 없다. 네 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헤드라이트를 켜야 할 정도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길도 혼잡하다.
Raja는 쇼핑몰에 가자고 계속 권유한다. 거부하기 미안해서 어쩔 수 없이 전통 옷상점, 대리석 공예품점에 갔지만 물건을 사지 않자 Raja는 실망하면서 은반지 세공점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호텔에 데려다주었다. 10%의 커미션이 생기지 않아 행복하지 않다는 Raja에게 미안하지만 무거운 돌덩이를 갖고 다닐 수는 없다. 내일 파테푸르 시크리를 함께 갈 생각으로 그에게 팁을 주지 않았지만, 헤어지고 보니 1,000루피의 요금만 준 것이 못내 아쉽다. 이것저것을 제외하고 나면 그가 오늘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식당에서 먹는 맥주 한 병 값보다 조금 많은 300루피에 불과하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허기가 진다. 저녁으로 색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 남문 앞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아도 위생 상태를 보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가 왔어도 미세먼지로 입안이 텁텁하여 돌아다니기도 지친다. 블로그에서 맛집으로 여러 번 언급된 남문 앞 트리트 레스토랑(Treat Restaurant)을 찾았다. 날씨 탓인지 손님이 아무도 없다. 메뉴를 보니 반갑게도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팔고 있다. 미심쩍어 물어보니 요리를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비주얼이 엉망이다. 탄두리 치킨을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모양새이다. 겉면은 바싹 타 있고 뼈에는 붉은 핏물이 맺혀있다. 도저히 식당에서 먹을 수 없어 호텔로 가져와서 먹을 수 있는 부분만 선별해야만 했다. 보름이 지났지만 인도에서는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없다. 힘든 하루였지만 오늘은 그렇게 소원했던 타지마할을 봐서 정말 행복하다. 아우랑가바드의 아잔타 석굴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