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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14. 소와 싸울 수 없다

2019. 1. 20.

이틀이 지났음에도 시차에 적응을 못한 것인지 몇 번의 뒤척임 뒤에 6시도 안 돼서 일어났다. 어려운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고 오늘은 대청소를 하겠다는 아내의 카톡이 와 있다. 공부하는 바쁜 사람을 놔두고 혼자 여행 와서 미안했는데 다행이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사원에서 24시간 울려 퍼지는 녹음된 독경 소리에 델리보다 덜 시끄러울 뿐 조용한 시골 동네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3일간의 황궁, 자항기르 마할  Jahangir Mahal

간단히 아침을 하고 자항기르 마할을 찾았다. 이제 현지인의 25배인 250루피 입장료를 지불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중세 인도 이슬람의 발전된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궁궐의 가운데에는 네모난 정원이 있으며, 4개의 모서리에는 돔 모양의 망루가 있다. 왕의 침실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데칼코마니를 찍은 것처럼 4면이 모두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내부의 외벽을 따라 길게 복도가 나 있고, 침실로 보이는 좁은 방에는 돌출된 발코니가 있다. 찾아오는 이가 적어 방치되는 듯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혹시나 어글리 코리안이 있었을까 이리저리 살펴봐도 다행히 한글은 보이지 않는다.

3층으로 올라가니 열 마리의 마카크 원숭이가 하던 짓을 멈추고 쳐다보는 표정이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신기한 표정에 스마트폰을 들이대니 한 놈이 어느새 나타나 툭 치고 간다. 순간 소름이 돋는다. 주변에는 사람도 없다. 원숭이와 싸워 본 적도 없다. 

'때로 덤비면 이길 수 있을까? 그러다 상처 나면?'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또 한 놈이 등을 치고 간다. 다시 공격하려 할 때 발을 휘두르니 놈이 뒤로 물러나면서 그중 큰 놈이 경계 태세만 갖추고 나의 행동을 지켜만 본다. 다시 스마트폰을 들이대니 앞으로 왔다 뒤로 물러섰다 하면서 공격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듯 섣불리 다가서지 않는다. 촬영하려면 가까이 가야 하는데 또 공격당할까 봐 조심스럽다. 갑자기 등장한 침입자에게 자신들의 공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잠시 그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자리를 옮긴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오르차의 풍광은 쉽게 경험하지 못할 즐거움을 준다. 시내 한 복판에 솟아 있는 차트르부지 사원(Chaturbhuj Temple)의 뾰족한 지붕과 바로 앞의 라자 마할(Raja Mahal)의 위용은 짙은 푸름 속에 군데군데 보이는 무너진 건물들과 더불어 반지의 제왕 속 장면처럼 신비로움을 주고 있다. 홀로 전세 낸 듯 산책하는 여유는 오르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여행자의 특권이다. 

한껏 성주 노릇을 하다 내려가려 하니, 후들후들 다리 떨리는 구간도 지나왔건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출구인 듯한 문에 가면 계단이 막혀 있고, 긴 외벽 복도를 따라가다 들어가면 발코니가 나타난다. 주변에는 원숭이뿐 아무도 없어 물어볼 수도 없다. 난감하지만 올라왔으니 내려가는 길이 분명 있는 것이라 다시 차례차례 출입구를 훑기 시작한다. 사방이 같은 구조라 방향 감각이 무디어져 어디로 올라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두 바퀴를 돌다 보니 어두운 구석 쪽 통로에서 희미하게 빛이 난다.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이제 살았다. 가항기르가 3일 동안 사용했다는 침실을 거쳐 내부 정원으로 이어진 무굴 황제만의 계단을 통해 황제가 된 기분으로 내려온다.      


돈 달라고 길을 막았던 인도 덩치와 다르다

조금 전에 보았던 1539년에 건설된 라자 마할로 발걸음을 옮긴다. 양쪽으로 궁전의 모든 곳을 살펴볼 수 커다란 발코니가 있는 왕의 침실은 라마와 크리슈나를 숭배하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다. 빛은 바랬어도 당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절대 권력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라자 마할을 나와 궁궐의 둘레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검은 물소 세 마리가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한두 발 내밀자 가장 덩치 큰 놈이 투우 자세로 앞으로 나온다. 앞에 있는 새끼에게 다가서면 달려들 태세다. 인도까지 와서 창피하게 사람이 소와 피 터지게 싸울 수 없어 잠시 눈싸움만 한다. 좁은 바라나시 골목길을 막고 있고 있거나, 뒤에서 달려오는 소들에게도 두려움이 없었는데 이번은 왠지 달라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어제 돈 달라고 길을 막았던 인도 덩치와 다르다.      


궁전 같은 비슈누 사원, 차트르부지 사원  Chaturbhuj Temple

시내 중심지에는 16세기 착공했으나 무굴제국의 침공으로 인하여 17세기에 완공된 차트르부지 사원(Chaturbhuj Temple)이 있다. 「chatur」는 4개, 「bhuj」는 팔을 의미하기 때문에, 네 개의 팔을 갖고 있는 비슈누를 위한 사원이다. 사원은 원래 비슈누의 7번째 화신인 라마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흥미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오르차의 왕이었던 마두카르(Mmadhukar)는 크리슈나(Krishna)의 신봉자였지만 라마가 사원 건축을 지시했다는 왕비의 꿈에 따라 차트르부지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사원이 완공된 후 임시 사원으로 쓰였던 람 라자 만디르(Ram Raja Mandir)에서 라마 신상을 사원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궁궐 사원으로 신상이 사용되었기에 신상이 움직이지 않아 결국 이 곳에는 비슈누 신상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궁전 같은 사원은 매우 큰 첨탑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로 곳곳에 꽃과 꽃잎을 묘사한 조각으로 꾸며져 있으며, 내부는 다른 사원들이 비해 많은 빛이 들어온다. 

사원 바로 옆에는 주황색으로 색칠해져 자극적으로 보이는 람 라자 만디르(Ram Raja Mandir)가 있다. 사원에는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결혼한 왕비의 출신국인 아요디아 왕국(아유타국)에서 가져온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 신상이 있다. 차트르부지 사원은 관광객으로 채워지지만, 람 라자 사원에는 진짜 힌두교 신자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아그라로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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