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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12. 마약과 풍요로움을 즐기는 해방구

2019.1.18.

8시가 되니 호텔 직원이 노크한다. 깨어달라고 부탁한 것인데 미안한 표정이다. 조금 지나니 Narayan이 지난번 공항 픽업을 했던 Rajak과 함께 왔다. 15분쯤 걸려 도착한 기차역에는 서양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처음 타는 기차라 난감하여 약간의 걱정에 빠진다. Rajak은 걱정하지 말라며 탈 때까지 안내해 준다.

오전 9시 25분에 출발하여 아그라 방향으로 가는 이 기차는 18개의 차량을 가지고 있다. 여행자들은 대개 아그라로 가거나 잔시에서 내려 오르차로 가곤 한다. 한국에서 예매할 때 잔시로 가는 기차표가 매진되어 고민하다가 다음 역인 다티아(DATIA)로 검색하여 구입하였다. 

탑승한 2A는 1A와 반으로 나뉘어 있고, 6개짜리 침대칸이 4개 있다. 화장실은 양쪽에 하나씩 있는데 1A에 비해 2A는 낡고 더럽다. 창가의 아래쪽 침대가 가장 편안하다.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맞춘 뒤 어슴푸레 잠이 들 때쯤 점심 주문을 물어보는 직원이 깨운다. 150루피짜리 기차 점심을 구경할 생각으로 주문한 음식이 이내 실망스럽다. 커리와 달, 밥과 4장의 짜파티로 구성된 도시락인데 입맛에 영 맞지 않아 옆으로 치우고 다시 누웠어도 잠도 오지 않는다. 베트와 강을 지나 오르차 역을 스친다. 세워주면 좋을 텐데 멈추지 않는다. 4시간 30분의 긴 시간이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1613년에 건설되었다는 잔시(Jhansi)는 철도망이 집중된 교통의 요지라 철길의 폭도 넓고 사람들도 꽤 많다. 출구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에 그냥 합류하면 된다. 역시 여기에도 나를 반기는 이가 많다. 250루피에 합의하고 장신의 러시아 미녀 Ynlia와 동행한다. 푸쉬카르에서 6개월간 머문 적이 있는 그녀는 내일 밤 기차로 35시간이 걸리는 고아로 간다고 한다. 그녀도 나와 같은 선셋 호텔(Sunset Hotel)이다. 함께 체크인하니 커플인 줄 안다. 

선셋 호텔은 게스트하우스에 불과하다. 시트는 홑겹으로 된 30년 전 스타일이고 창문도 열리지 않지만 가성비만큼은 최고다. 방도 크고 더운물도 잘 나오며 사장은 웃길 줄도 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있거나 여성들이라면 낡고 더러워 보이는 시트에 불편해할 수 있다. 루프탑에는 철근이 삐쭉삐쭉 솟아 있는 기둥들을 볼 수 있다. 완성되면 내야 하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다. 루프탑의 커피 한 잔이 여유롭게 만든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현실이 보인다

「숨어 있는 곳」이라는 뜻의 오르차는 아버지 악바르에게 쿠데타를 일으켜 무굴제국의 황제가 되려고 했던 살림(훗날 자항기르 황제) 황태자가 분델라 왕조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던 곳이다. 왕조의 국운을 걸고 악바르 황제에게 대항하면서 반역자를 도운 「비르 싱 데오」는 자항기르 황제로부터 정치, 군사적 후원을 받으며 영화를 누렸지만, 자항기르 사후에 지나친 욕심으로 아우랑제브가 선봉장이 된 샤 자한 황제의 군대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면서 오르차의 찬란한 문화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비르 싱 데오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3일간 머무르는 자항기르 황제를 위해 지어진 자항기르 마할(Jahangir Mahal)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베트와 강변(Betwa River)에 적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천연의 요새다. 폭이 5m, 길이가 70m가 넘어 보이는 초입의 다리부터 한 때 찬란했던 왕조의 영화가 느껴진다. 짙푸른 강물과 녹음 위로 우뚝 솟아있는 커다란 성채만을 보면 중세의 영주 같은 기분이 들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현실이 보인다. 

10여 명의 늙은 걸인들이 연신 나마스떼라 말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키고, 성문 앞의 커다란 식당 광고판은 눈에 거슬린다. 맨발의 늙은 노파가 짜파띠를 들고 

“우 ~ 우 ~ ”

하면서 나무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마카크 원숭이들을 부른다. 원숭이들은 짜파티를 받아 들고 아씨 가트에서 만났던 이라싸우보다도 더 맛있게 입으로 뜯어먹는다. 원숭이가 채어 갈까 봐 두 손으로 폰을 꽉 쥐고 촬영하지만 이방인의 관심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거북선의 등처럼 커다란 쇠못이 박힌 성문을 지나 들어간다. 궁전의 뜰 어딘가에서 백설공주가 귀여운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높은 탑에선 라푼젤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나를 기다리는 듯하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거치면서 찬란했던 빛은 바랬지만 바라나시의 복잡함을 잠시 잊고 싶다면 한 번 들릴 만하다. 다시 찾을 생각으로 라자마할 성벽을 따라 출구로 발걸음을 돌린다. 호젓한 산책길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20대의 인도 청년의 모습이 참 어색하다.     

다시 마주친 시내는 오르차가 다른 도시보다도 규모는 작아도 인도임을 알게 한다. 여기저기 손을 내미는 걸인들, 길 양쪽의 기름때와 먼지로 시꺼먼 음식점, 호객하는 이들, 사진으로 기억하려는 여행자들, 뿌연 먼지와 릭샤는 여느 도시와 다름없다. 

트립어드바이저 랭킹 1위 식당인 오픈 스카이(Open Sky)를 찾았다. 수제비가 150루피, 가격이 참 착하고 감자가 감칠맛이 난다. 3층에서 우르르 내려오던 아가씨들은 소리를 지른다. 교육 봉사하러 온 20여 명의 서울여대 학생들이다. 아까 거리에서 잠깐 이야기한 나를 기억하는 것이다. 나를 향해 참새처럼 까르르 웃으며 손을 흔든다. 하정우, 류승룡이 거론하더니 나를 류승룡으로 낙찰하며 다시 떠들썩하게 까르르거린다. 뜻밖의 상황을 묻는 웨이터에게 설명하니, 진짜 영화배우냐고 묻는다. 참 유쾌한 학생들이다.     


인도는 마약의 해방구가 아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인도를 많이 찾는 듯싶다. 숙소에서 만난 500cc 로얄 엔필드 모터바이크로 6개월간 인도를 여행했고 네 번째 방문이라는 부부는 연신 담배를 바꿔 가며 한 모금씩 쭉쭉 빨아댄다. 필터도 없이 끝까지 빨아대는 것을 보니 마리화나를 섞여 만든 사제담배로 보인다. 한국의 물가가 인도와 비슷하냐고 묻는 이 무식한 부부에게 인도는 싼 가격에 마약과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해방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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