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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May 07. 2019

인도 여행 10. 일장기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하다

2019. 1. 16.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도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바라나시는 죽으러 오는 도시, 그 죽음을 구경하러 오는 매우 흥미로운 도시였다. 올라를 타고 약 1시간 걸려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하였다. 국제공항이라고 하지만 규모가 작아 탑승 수속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카주라호로 가는 60대 초반의 패키지 관광팀을 만났다. 고맙게도 우리나라의 어학원에서 공부했다는 가이드가 만든 8가지 한식 반찬이 딸린 완두콩밥 도시락을 주었다. 맛있다. 스님들의 공양 그릇처럼 순식간에 싹싹 비웠다. 밥다운 밥을 오랜만에 먹었다.     


두 달 전에 구매한 45,000원짜리 비행기 표 덕분에 12시간 기차를 타지 않고 카주라호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고작 35분 비행이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매우 한산하다. 델리나 바라나시의 더러움이나 복잡함은 찾을 수 없고 바람도 상쾌하다. 


호텔에서 150루피에 제공하는 릭샤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여 10여 분에 만에 도착한 마블 호텔(Marble Hotel)은 매우 맘에 드는 숙소이다. 하루 1,100루피에 불과하지만, 손님을 대하는 태도와 숙소의 정갈함은 델리의 3성급 호텔보다 훌륭하다. 바닥과 탁자는 흰 대리석이며 가구는 고풍스럽다.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백발의 노인이 카운터에서 겸손하게 맞이하면서 자세하게 방을 설명하고 숙박부를 함께 작성한다. 바라나시에서는 추웠는데 담요가 하나 더 필요하냐는 질문이 고맙다. 


300루피에 남동부 사원군을 안내받기로 하고 Narayan이 먹는 점심이 궁금하여 따라나선다. 숙소에서 50m 정도 떨어진 2층에 자리 잡은 아그라센(Agrasen Restaurant)이라는 로컬 식당이다. 낡아 보이지만 나름 깨끗하며, 직원들은 성실해 보이고 얼굴에는 미소가 많다.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가이드 Narayan이 먹는 파파덤(Papad dum)을 먹어 본다. 쌀로 만들어 화덕에 굽거나 기름에 튀기는 얇고 둥근 음식이다. 맥주 안주로 충분하다. 공갈빵처럼 부풀다가 납작해지는 짜파티는 따뜻하다.     


식당 테라스에 나오니 한쪽에 걸려있는 일장기가 눈에 거슬린다. 태극기는 어디 있냐는 질문에 태극기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확인시켜 주니 저녁에 오면 그때까지 만들어서 게양해 놓겠다고 하며 흔치 않은 한국인 손님의 방문을 고마워한다. 저녁까지 만들어 놓지 않으면 한 병에 300루피 되는 두 병의 맥주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듣고 가이드의 스쿠터 뒤에 타고 사원으로 출발했다.      


자아나교와 힌두교 사원, 카주라호 남동부 사원군

남동부 사원군은 자이나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방문한 자이나교 사원(Bhagwan Parshwanath Jain Mandi)의 조각들은 실로 굉장하다. 엄청나게 섬세하고 예술적이라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만 하지, 사진이나 타인의 글로는 이해할 수 없다. 사원에 대해 안내해 주겠다는 청년들을 가볍게 따돌리고 자이나교 사원에 들어서니 노인이 100루피에 사원을 설명해주겠다고 한다. 50루피에 합의하고 잠깐 설명을 듣는다. 그냥 불쌍해 보여 응했을 뿐 돈이 아깝고 설명이 필요 없다. 


입구의 노인은 돈을 더 내면 사원 전체를 찍을 수 있는 통제구역에 입장하게 해 주겠다고 한다. 지난날 사진작가가 500루피를 주겠다고 했어도 허가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사진보다 가슴의 느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와 잠시 대화한다. 흰 수염과 백발로 일흔이 넘은 줄 알았는데 고작 52살이며 이름은 아뚜다다이다. 왠지 그는 사무실 몰래 2~3분을 줄 테니 얼른 통제구역 옥상에서 사진을 찍고 오라고 한다. 옥상에 본 맞은편 자이나교 사원의 지붕들은 꽤 웅장하다. 비록 스마트폰이지만 아름답고 놀라운 모습을 충분히 담을 수 있었다.     

힌두교 사원인 바마하 사원(Vamaha Temple)으로 갔다. 관리인이 따라오며 설명한다. 무슨 의도인지 안다. 잠깐의 설명으로 팁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하여 아무 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는 수많은 조각상 사이로 미투나를 플래시로 비춰준다. 재미있다. 인도인들은 정말 사진을 못 찍는다. 더 찍어주겠다고 하지만 거절한다. 50루피를 주니 100루피를 달라고 한다. 그럴 수는 없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원을 관람하는 재미가 없었을 테니 잠깐 서비스하고 푼돈을 요구하는 그들의 태도를 굳이 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다 다르듯 사람들도 서로 다르다고 여기는 그들의 문화일 뿐이다. 나중에 가이드 Narayan에게 들으니 이들은 정부로부터 매우 좋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전혀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만약 돈을 요구하면 “I will call to your office in Delhi.”라고 말하라고 한다.      


Narayan은 몇 개의 사원을 더 안내한 후에 그의 집에서 짜이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문 앞에서 만난 부모님은 다정하다. 바라나시의 Mohit의 어머니가 준 짜이보다 못하지만 형수가 만든 짜이는 꽤 괜찮았다. 28살의 총각인 그는 결혼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여태껏 연애도 못해 본 모태솔로라고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돈이 결혼의 필수요건이라는 것이 그가 쓸쓸해 보이는 눈빛만큼 안타깝다. 


집 앞의 조그만 가게에서 그의 친구에게 무엇인가 건네받는다. 라면 수프처럼 생긴 마살라인 줄 알고 어깨너머 쳐다보니 그가 안 된다고 한다. 마리화나이다. 달라는 줄로 오해하고 한 번에 쓰러질 수 있는 위험한 것이라 하며 얼른 감춘다. 줘도 경험해 볼 생각이 전혀 없다. 마약을 사라고 자꾸 권하던 바라나시 청년들의 뻔뻔한 모습이 스쳐 간다.     


어, 태극기가 걸려있네

저녁에 아그라센 식당에 다시 갔다. 사장이 친구들과 함께 낯선 이방인을 반긴다. 

'어, 태극기가 걸려있네.'

반갑다. 세 시간에 걸쳐 만든 태극기는 재료비만 1,000루피 들었다고 한다. 돈을 요구하는 줄 알았는데 이것은 나에 관한 호의이며, 식당에 많은 한국인이 방문하길 원한다고 하면서, 한 편에 걸려있던 일장기를 내린다. 함께 옥상 가운데의 태극기 앞에서 촬영하는 그의 맑은 웃음에서 순박한 인도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사장은 한국인이 많이 찾기를 바라면서 식당 리뷰를 써 달라고 한다. 일장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는데 당연히 하겠다며 그가 정성스럽게 만든 치킨 마살라와 로티를 맛보았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다 먹을 수 있었다. 주방을 보니 우리나라 중국집의 그것보다 더 낫다. 그렇다고 우리 식의 깔끔함을 기대할 순 없다. 그 음식을 먹고 아직 나의 뱃속에는 이상이 없으니,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될 듯하다. 인도 음식을 먹고 싶으면 아그라센을 방문하여 즐기면서 옥상에 걸려있는 태극기와 기념 촬영하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여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계속 걸려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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