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7.
아침을 먹기 위해 첫 목적지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의 근처에 있는 2008년 뭄바이 테러의 한 대상지이었던 레오폴드 카페(Leopold Cafe)를 찾았다. 뭄바이 테러는 파키스탄 이슬람 테러단체가 자동화기와 수류탄으로 500명 정도의 무고한 일반인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든 사건을 말한다. 대체 신이 뭐기에 신의 이름으로 함부로 사람들을 죽이는가?
레오폴드 카페의 바로 옆 블록에는 타지마할 호텔이 있다. 타타자동차로 알려진 인도 최대 기업인 타타그룹의 창시자인 뭄바이의 민족자본가 타타(Jamsetji Tata)가 아폴로 호텔에 식사하러 갔다가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하자 오기로 지었다는 인도 제일의 호텔이다.
5성급 특급 호텔인 타지마할 호텔은 560개의 객실과 44개의 스위트룸을 갖추고 있고, 1,600여 명의 직원이 일한다. 또한, 객실 창문을 통해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설계해 마치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2008 뭄바이 테러의 주 목표물이었던 영향으로 호텔 주변에는 자동화기와 장갑차로 무장한 대규모 경찰 병력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다. 궁전처럼 웅장하고 단단해 보이는 건물 위에 솟아있는 붉은색 돔과 샤크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타지마할 호텔의 앞에는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가 있다.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휴일을 즐기기 위해 몰려있다. 델리의 인도 문(India Gate)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져서 인도의 상징적 랜드마크가 된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가 아름다운 아라비아해를 굽어보고 있다. 이슬람의 아치와 힌두교의 장식으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하게 무굴 양식으로 지어진 26m의 거대한 게이트웨이는 인도를 통치하는 영국 제국주의의 힘의 상징이었다. 1911년 조지 5세(King George Ⅴ)의 인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1948년 2월 28일, 인도 독립 후 영국 서머셋 라이트(Somerset Light) 보병 대대가 이 게이트웨이를 통과하여 인도를 떠났다.
게이트 앞의 아폴로 번더(Apollo Bunder) 부두에는 엘레판타 섬으로 가는 관광객의 줄이 길게 늘어져있다. 연두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현장에서 200루피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길어 보이던 줄도 여객선이 여러 척이다 보니 순식간에 짧아진다.
배가 뒤뚱거리며 출발한다. 10루피만 더 내면 갑판에 올라갈 수 있다.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갑판으로 날아든다. 강화도에서 석모도 가는 배에서 보았던 새우깡 갈매기들처럼 과자를 받아먹느라 사방에서 날라든다.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즐거워한다.
섬까지는 딱 1시간이 걸렸다. 뭄바이의 동쪽에 있는 여러 섬 중 하나로서, AD 5~7세기에 건설된 「198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인 엘레판타 석굴 사원이 있다. 「석굴의 도시」 가라푸리(Gharapuri)로 불렸던 이 섬은 포르투갈 침략자들이 거대한 코끼리 석상을 발견한 뒤 엘레판타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500m 정도의 선착장 한쪽으로는 무료로 관광용 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시원한 아라비아해의 바람을 맞으며 홀로 걷는 것이 훨씬 좋다. 엘레판타 석굴로 올라가는 계단은 좁지 않지만 양쪽으로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보니 사람이 치여 혼잡하다. 돌로 만든 기념품은 매우 정교하여 문화재를 보는 듯하다.
엘레판타 석굴은 단단한 현무암을 깎아 만든 다섯 개의 힌두교 석굴과 두 개의 불교 석굴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힌두교 석굴 사원이 있는 서쪽 언덕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No.1 석굴은 그레이트 케이브(Great Cave)로서 시바(Shiva)를 섬기는 내용의 암각 작품이 있는 사원이다. 석굴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석굴암이 매우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석굴 사원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한 변이 27m의 널따란 사각형 홀인 만다파(Mandapa)의 수십 개의 정교한 기둥과 벽면 위의 섬세한 조각들이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것이라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대체 신이 뭐기에 이토록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단 말인가?
석굴 안에서 매우 특별하고 거대한 수준 높은 부조와 가장 완벽한 표현이 담긴 인도 예술을 발견할 수 있었다. 3개의 머리를 가진 6.1m 높이의 트리무르티(Trimurti, Sadashiva)는 메인 석굴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물로 여겨진다. 세 개의 머리는 시바의 본질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오른쪽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 왼쪽은 파괴의 신 시바, 가운데의 중심 얼굴은 보호의 신 비슈누를 묘사하고 있다. 트리무르티의 왼편으로는 시바와 파르바티의 복합체인 네 개의 팔을 가진 아르다나리스바라(Ardhanarisvara), 오른편에는 갠지스 강을 지구로 가져왔다는 강가하라(Gangadhara)가 조각되어 있다. 중앙부에 있는 시바의 상징 링가를 중심으로 사원의 곳곳에는 거대한 크기의 요가의 신인 요리쉬바라(Yogishivara)와 춤의 신 나타라자(Nataraja) 등 시바의 아바타 신상, 시바가 악마 안드하카(Andhaka)를 죽이는 장면, 시바와 파르바티가 결혼하는 장면, 시바가 살고 있다는 카일라사 산을 묘사한 상세한 조각들이 시바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예술품을 본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한참을 입구에 서 있다가 No.5 석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석굴들은 규모가 작거나 많이 파괴되어 있어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석축을 보수하느라 땡볕에 돌덩이를 이고 가는 여인들은 돈을 내고 사진 찍어 달라고 애원하며, 원숭이들은 관광객들의 음식을 노리고 있다.
다시 입구로 와서 언덕 위의 포대(Cannon Point)에 올랐다. 한강으로 침탈하는 외적을 막는 강화도의 초지진처럼 2문의 커다란 대포가 아라비아해를 향하고 있다. 10m 정도쯤 되는 대포는 정확한 표적을 잡기 위해 위아래, 360도로 회전할 수 있게 만든 커다란 기계장치 위에 설치되어 있다.
출출하다. 매표소 근처의 찰루키야 식당(Chalukya Restaurant)이 편안해 보인다. 어느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다 식는다. 세 명의 인도 청년이 합석한다. 다른 때 같으면 말을 붙여 볼 텐데 지금은 휴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맥주 두 병을 시켜놓고 대화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선글라스를 돌려써가며 40분이 넘도록 사진만을 찍어대는 그들로 인해 자꾸 신경이 쓰였지만 인도에 와서 제일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듯싶다.
호텔로 돌아와 다시 찾은 여왕의 목걸이 마린 드라이브는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수 킬로미터를 밝히고 있는 가로등 불빛 속의 방파제에서 수많은 인파들이 한가로운 저녁 한때를 보내고 있다. 가족, 연인, 친구들이 이야기하고, 사랑을 속삭이며 사진을 찍으면서 행복해한다. 아름다운 경치도 함께해야 더 아름다워 보이고,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어야 더 맛있지만 혼자다 보니 심심하다.
방파제를 따라 터벅터벅 한 시간쯤 걷다 보니 초파티 비치(Girgaum Chowpatty Beach)에 도착했다. 이 해변은 뭄바이와 푸네에서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라비아해에 가네쉬를 담그는 비사르잔(Visarjan) 축제와 매년 람 릴라(Ram Leela) 연극이 공연되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해변을 둘러싼 물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하지만, 넓은 모래사장에는 더위를 식히려고 나온 가족들이 자리를 펴놓고 음식을 먹고 있다.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고 있고 어른들은 편안하게 누워 이야기를 나눈다. 해변의 화려한 조명 아래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다. 뭄바이에 온 관광객이라면 다양한 인도 음식을 즐기기 위해 충분히 와 볼 만한 곳이다. 어느 때보다 빈자리의 허전함이 느껴진다. 가족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