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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Mar 23. 2018

지구 끝까지 쫓아가려 했었어.

이것도 취미라면,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한 가로수길 영화"


참여한 작품들이 개봉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반응을 보게 된다.

영화가 끝날 시간에 맞춰 상영관 출입구에서 팝콘을 수거하는 언더커버로 위장해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활어회 같은 생생한 감상을 엿듣는......수고는 필요 없고, SNS나 블로그,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시사회 이후의 미디어 리뷰라면 대놓고 시작 부터 초를 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쉬운 점이라면....' 하는 식으로 완곡하게 싫은 내색을 하는데, 어쨌든 영화에 대한 호불호의 기울기를 가늠하는 정도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감상을 기다리는데, 주로 트위터나 블로그를 본다. 트위터는 일종의 개인 아카이브 같아서 나름의 논리로 짧은 '영화평'을, 블로그는 그 영화를 보게 된 이유라던가, 그 날의 감정이라던가, 영화 외적인 요소들이 섞인 짧은 '감상 에세이'에 가까운 것 같다. (유투부는 일단 '길게 까고 보자' 분위기라 안 올라 온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댓글'은......전반적으로 화가 많이 나 있다. '봐라, 마라', '보지마라, 그지 같다.' '내 시간 돌리도!' 뭐 이런 무성의한 댓글에는, '영화도 안 봐놓고 무조건 보지마란 거냐?' 하며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아니, 댓글은 거의 그런 건 줄 알았다. 근데 그 와중에도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며, 댓글 특유의 '한 줄로 후려치는' 악플이 꼭 보인다. (영화에 대한 감상이니 '악플'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일부러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악플'이니까, '악플'이라고 하겠다.)


첫 작품을 하고, 최초의 악플을 봤을 때- 


나는 당장 IP를 추적해 놈을 찾아내리라 했다. 놈이 어디에 살던,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리라!

기습적으로 놈의 방문을 열고 컴퓨터 앞에 앉은 놈의 구부정한 등허리가 보이면, 뒤돌아 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멱살을 틀어쥐고,


"다시 말해 봐! 나 똑바로 보고 다시 말 해보라고!"


다행히 출연한 배우의 팬들이 적극적으로 쉴드를 쳐준 덕에 문제의 댓글은 슬그머니 사라졌지만, 한동안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은 그랬나....' 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다가, 그 사람 말 처럼 '내가 정말 그랬나....내가 그랬나....' 나의 잘못으로 옮겨왔다. 오래 가진 않았다. 첫 작품의 반응은, 오래 신기하고 좋았다.


"설탕을 들이 부은 듯...."


그런데 이후로 희한한 취미랄까...습관이랄까, 가장 인상적인 악플 하나씩을 기억해 두는 취미가 생겼다. 마치 그럴려고 일부러 댓글을 보는 것 처럼 영화 마다 '이거다!' 싶은 악플 하나씩을 챙겨둔다. 일부러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박히는 것이 악플의 위력이라, 오래 전의 작품도 아직도 또박또박하다. 그 댓글이 완전 독하다거나, 무조건 상처라거나, 했던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나를 '찔리게'했던 것 같다.


처음엔 그래도 보기 전에 약간 심호흡도 하고 공포 영화 볼 때 처럼, 언제 튀어날지 모르는 '무엇'을 대비해 몸을 뒤로 빼고 실눈을 하고서 스크롤을 내렸는데, 이후에는 취.미.활.동.이니까. 기왕이면 재치도 있으면서 정곡을 찔러주는 악플을 만나기를, 약간의 기대감 마저 드는 것이다.


그래도 몇 번째에는, 네티즌 댓글은 아니고 어느 영화 평론가의 한 줄 평이었는데, 좋아하는 평론가는 아니었지만 굳이 저렇게 얘기할해야 하나 마음이 좀 쓰리기도 했다.


"짱개만 나오면 한국영화냐"


사실, 작품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서 악플도 즐길 수 있다. 내가 봐도 싫었던 건, 따로 챙겨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악플 보다도, 영화 개봉 후 나오는 감독의 이기적인 인터뷰들이 악플 보다 나를 힘들게 했다.



이래놓고 나도 비겁한 게, 내가 싫어하는 감독이나 영화의 관련기사 나올 때면, 스크롤을 내려 평소에는 안 보던 댓글을 챙겨본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악플들을 읽고 낄낄대며 은밀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영화나 잘 만들고 그런 소릴 해라' (옳거니!), '한동안 쉬어야 할 듯' (내 말이!!) 등등.....나도 참.....(내 블로그니까 귀엽다고 해두자)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을 할 수는 없다. 그런 건 없다. 그래도 기왕이면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

칭찬 받고 싶은 어린아이를 마음 속에 키우는 자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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