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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Sep 06. 2018

불면증 작가의 ASMR

잠을 잊은 그대에게

밤의 고요를 좋아한다. 하루 장사가 끝나고 셔터 내린 가게 안에 앉아 보지도 않는 티비를 켜고 우두커니 허리를 쉬는 자영업자처럼, 영업이 끝난 오늘 세상을 막연히 흘려보내는 것이다. 행여라도 그 시간에 임신한 아내가 반드시 이 집 치킨을 먹어야 한다며 다급히 셔터를 두드리는 손님이 온다고 해도 절대로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이다. 지랄- 그거야 니 사정이지.....


아예 안 자고 싶다는 건 아니다. 잠들기 '직전'의 그 순간은 여전히 어렵다. 단숨에 머리만 대면 잔다는 사람도 봤지만, 그런 이는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잠깐의 샤워, 미지근하게 데운 우유, 당신의 팔, 가슴......잠들기 위한 각자의 한가지들이 있다면, 요즘 나의 수면 스위치는 ASMR이다.


유투브에 무수한 ASMR 전문가들이 있지만, 나는 정체불명의 소리 보다는 '지나가는 말소리', '옆 테이블에서 하는 대화' 같은 흐르는 작은 말소리를 선호한다. 굳이 ASMR이 아니더라도, 그냥 내가 듣다보면 잠이 잘 오는, '나의 ASMR 리스트'.



1. 강유미의 메이크업샵 롤플레이


코미디언 강유미의 '좋아하는 하는 채널' 중, 작정하고 만든 ASMR이다. 고성능 마이크로 들리는 강유미의 팅글 사운드와 메이크업샵에서 벌어지는 스토리의 흐름이 좋다. ASMR은 팅클 사운드가 중요한데, 이게 구강구조나 침샘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유미씨가 이게 참 남다르다. 게다가 개그콘서트에서부터 발군이던 강유미의 '관찰 연기'가 더해져서, 이건 뭐- 속삭이면서 웃긴다고 보면 된다.

메이크업샵에 온 손님에게 ‘처음처럼’을 권하는 강유미


처음엔 이렇게까지 웃긴 줄 몰랐다. 매번 듣다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효과가 쎄다. 앉아서 듣다보면 어느새 눈 감고 상모를 돌리는 수준이다. 요즘도 거의 매일 자기 전 듣고 있다.


  

2. 박지민, 전정국 브이앱 일본편


방탄소년단의 지민과 정국이 일본에서 각각 방송했던 브이앱이다. 박지민과 전정국이 나오는데 소리를 끄고 얼굴만 보면 모를까, 소리만 듣고 있다는 게 좀 어긋난 팬심이긴 할텐데, ASMR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두 사람의 일본 브이앱은 나의 수면생활에 소소한 역할을 해주었다. 지루하다는 게 아니다. 그럴리가!

쥐락펴락하는 박지만(좌)과 집중시키는 잔정국(우)

잠들기 전에 끊기지 않을 만큼 길이가 적당하고, 새벽의 단독 방송이었던지라 조용조용-나긋나긋- 한 게, 듣다보면 심야의 청취자가 된 것 같다. 특히 가끔 반말과 '아흥'을 섞는 지민을 듣다 보면, 이건 뭐- 바로 옆에'홀로그램'으로 와 있나 싶을 정도.



3. 소피반의 쓸만한 영어


뭐를 안 한다더니 영어공부를 하면서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거냐면, 그건 아니고- 소피반 선생님은 미국에 사는 전직 통역사로 추정되는데, 이게 바로 교양인가 싶은 낭랑한 중저음에 또박한 말투, 엣지 있는 영어발음....촬영도 집이나 강의실이 아니라 해당 장소에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섞인 현장 소음이 적절한 화이트 노이즈 효과를 준다.

잘때도 듣지만, 낮에 듣고 공부도 해요, 소피반!


(나의 밤을 함께 해주는 소피반도 강유미도. 박지민 전정국과 여기 나오지도 않은 김석진도 다 고맙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제일 잘 잔 날은, '마감 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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