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여름편 #10
방학이다.
7월 10일에 수업을 시작하고 8월 4일에 여름방학 시작이니 한 달도 채 수업을 하지 않았다.
어학교 수업 말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나는 방학하는 게 싫다. 심심하니까!
하지만 8월 15일이 일본의 명절인 お盆(오봉)이라 다들 쉬니까 어쩔 수 없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음력제를 폐지했다. 한국에서는 음력 8월 15일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지만 일본은 양력 8월 15일 전후로 연휴가 시작된다.
올해는 8월 11일이 ‘山の日(산의 날)‘로 공휴일이라 이 날부터 연휴가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명절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이 고향을 방문하거나 긴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가거나 하는 모양이다. 가게들도 한참 전부터 휴가 일정을 입구에 적어 알리고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연휴.
한국에서도 팔자 좋은 며느리라 명절 음식도 안 하고 내내 빈둥빈둥거렸는데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라도 안 했으면 이 긴긴 연휴를 어찌 보냈으려나 싶다.
방학 직전, 학교에서 JLPT 3급 모의고사를 치렀다.
나는 지금 JLPT 3급반이다.
입학 전 레벨테스트에서 2급과 3급 사이의 점수가 나왔으니 반을 선택하라고 해서 조금 낮은 3급반을 선택했었다.
글로만 배운 언어라 완전 일본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잘 따라 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역시 수업은 그럭저럭 잘 따라갈 수 있는데 대화가 안 된다.
일본에 온 지 일 년이 넘은 같은 반 친구들은 일본어로 잘만 떠들고 노는데 나는 내내 묵언수행이었다.
게다가 우리 반 16명 중 네팔 친구들이 8명,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4명, 그리고 베트남, 싱가포르, 러시아 친구가 한 명씩, 그리고 한국인은 나 혼자.
일본인 선생님은 쉬운 일본어로 또박또박 말해주니 알아듣기도 쉽고 이해가 잘 되는데 같은 반 친구들의 일본어는 각자 자기 나라의 발음과 억양이 섞여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굳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려 한 이유도 있었다. 일본인과 말해보기 위해서.
아무튼 모의고사는 치렀고 방학하는 날 점수가 나왔다.
JLPT N3는 언어지식(문자ㆍ어휘) / 언어지식(문법)ㆍ독해 / 청해 3과목 각 60점씩 180점이 만점이다.
N5가 가장 쉽고 N1이 가장 어려운 레벨이다.
N3의 경우 총점 95점 이상이 합격이고 각 과목 19점 미만은 과락이다.
이게 먼 일이라니?
136점. 우리 반 1등.
나만 유일하게 합격점을 넘었다.
진짜 일본에 와서 공부라고는 수업 들은 게 전부인데 이게 어쩐 일이람?
(사실 한국에서 혼자 공부할 때는 이보다 점수가 훨씬 높긴 했다. ^^;)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은 어휘와 독해에서 점수를 잘 못 받는다고 한다.
한자 문화권이 아니어서 그런지 매일 한자 테스트를 하는데도 실력이 잘 안 느는 모양이다.
나는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던 세대이고 고등학교 때는 문과여서 국어II로 고전문학을 선택했던 지라 지금도 한자는 크게 어렵지 않다.
그게 여기서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다니!
역시 배운 건 다 써먹을 데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그래도 16명 중 합격점을 넘은 사람이 나 하나인건 너무 하자나.
10월 학기에 나는 2급 반으로 옮겨야 한다. 나만!
이제 겨우 친구들 이름 외웠는데 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반으로 가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2급반으로 갈걸 그랬다. ㅠㅠ
방학 첫 주에 유카타 체험이 있었다.
유카타는 기모노의 한 종류로 평상복으로 사용하는 간편한 옷으로, 목욕 후나 여름에 입는다.
같은 시간 체험을 신청한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공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침 일찍 한바탕 비가 쏟아졌어서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진도 많이 찍고 오전반에 있는 다른 한국인 학생들도 만나서 꽤 재미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평소에도 기모노를 참 잘 입는다.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들도 꽤
많다.
내가 체험한 건 예복으로 입는 정식 기모노도 아닌 유카타인데도 혼자 입기 어려울 만큼 입는 법도 복잡하고 정말 불편하던데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거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우리 한복은 이쁘고 화려하기도 하지만 입기도 편하고 활동성도 좋은데 평소에는 입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도 결혼할 때 딱 한 번 입고는 그 후로 입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전통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점은 배웠으면 좋겠다.
단, 경복궁이나 한옥마을 앞에서 대여해 주는 괴상하게 변형된 한복이나 그저 편함만을 강조한 듯한 개량한복 말고 제대로 된 한복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방학엔 멀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