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네탐방을 다니다

쉰 살의 유학일기 - 가을편 #2

by 히토리

그동안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만들던 더위가 수그러들면서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가 됐다.

아직도 낮에는 종종 28~9도까지 오르내리지만 분명히 바람은 가을느낌을 품고 있다.

학교 가기 전,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주말 등 일부러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면서 다시 동네 골목골목을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그다지 변두리도 아닌데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나 식당이 별로 없다.

주택가여서 그런 건지 유흥가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 카페는 10시쯤, 음식점은 11시 30분쯤에나 문을 연다.

어차피 까마귀 알람 때문에 꼭두새벽에 강제기상 하니까 아침식사는 일찌감치 때우고 학교 가는 길목에 있는 음식점을 오픈런해서 제대로 점심을 한 끼 챙기기로 했다.


오늘은 타베로그(일본의 식도락 랭킹 사이트)에 꽤 평이 좋았던 수프카레 집을 타겟으로 삼았다.

노면전차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이 식당 오픈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 산책 삼아 일부러 골목골목을 돌아서 가본다.

분명 일반 가정집인데 무슨 박물관처럼 보이는 집도 만나고 꽤 유명해서 찜해두었던 카페도 우연히 마주쳤다.

다나카씨의 집이라는데 안이 궁금하다.
나름(?) 유명한 쿠라시키 커피점


내가 찾던 가게는 여기, ‘curry. ya. cong‘이라는 수프카레 전문점이다.

수프카레는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음식인데 보통의 걸쭉한 루 형태의 카레가 아니라 우리의 국처럼 후루룩 마실 수 있는 묽은 카레 국물에 각종 고명을 튀기거나 구워서 넣어 먹는 음식이다.

삿포로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1위가 수프카레인 만큼 유명한 집도 꽤 많다.

내가 가 본 집만 해도 여기가 네 번째인데, 내 입맛엔 별로. 2300엔이나 하는 값어치는 아닌 듯하다.

커리야콩. 포크카레와 라씨


유명세에 비해 조금 실망스러웠던 점심을 먹고 豊平川(토요히라가와) 강변을 따라 걸었다.

하늘도 가을하늘 맞고 바람도 가을바람 맞는데 아직 햇볕은 따갑다.

한국에서는 할머니 같아서 싫다며 굳이 선글라스로 버티다가 시원하다는 삿포로에 살면서 타는 듯한 더위에 놀라 생애 첫 양산을 구비했는데 9월이 되도록 열심히 쓰고 다닌다.

토요히라강


그래도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공원의 나무들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내년 이맘때엔 내가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여기에 사는 동안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계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계절의 풍경.

그렇게 생각하니 가는 여름도 아쉽다.

공원의 나무가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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