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된 가족> 읽기
기획된 가족(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은 어떻게 중산층을 기획하는가), 조주은, 서해문집, 2013
엄마 3년차, 전업 엄마 3년차. 나는 왜 전업 엄마가 되었을까?
나는 육아휴직을 끝낸 후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임신 8개월만에 태어난 아이에 대한 염려, 책임감, 죄책감이 가장 컸다. 2-3년 정도는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었다. 다른 측면도 있다. 나의 직장이 비영리단체였다는 것. 비영리단체는 연봉 수준이 낮고 근속 년수가 대체로 높지 않다. 반면에 경력이나 직급과 무관하게 수평적인 문화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고 육아 등의 경력 단절 후에 재진입한 경우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육아를 부모님이나 도우미에게 위탁했을 때의 비용을 연봉에서 감당하기 힘든 데다, 몇 년 쉬고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휴직하면 안되냐고? 남편과 나의 연봉 차이는 그런 상상을 어렵게 했다.
조주은의 책 <기획된 가족>의 초점은 ‘맞벌이 화이트칼라 엄마’다. 저자가 인터뷰한 이들은 은행원, 공무원, 중등교사, 컨설턴트 등이다.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과 연봉이 부럽다... 느껴지려다가 이들의 ‘압축된 시간경험’에 대해서는 절로 손사래가 쳐졌다.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준비하고, 화장 하고 옷 입고, 아이 아침 먹여 보내고, 출근 길에 나서는, ‘1분도 저기가 없’(75쪽, 양길연의 말)는 시간, 양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육아의 고민을 덜었지만 친족 중재, 관리 등의 새로운 비가시적 임무를 떠맡는 상황, 오랜 동동거림의 결과로 ‘시간은 쪼갤수록 생겨요’라고 자부하는 엄마... 에휴,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
그럼에도 이 책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어떻게든 그만두지 않고 버틴다. 이들의 일에는 ‘생업이냐 자아실현이냐’라는 이분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고용불안이 확산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오랜 직장 경력,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환경과 전망을 제공하는 직장은 쉽게 포기될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 인식’(280쪽) 또한 자리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의 지지가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딸이 하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의 부모의 경우와는 다르게. ‘한국 사회처럼 직업의 귀천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화이트칼라 직종, 높은 임금, 안정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여성은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216쪽
출산, 육아로 위기가 찾아왔을 때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의 상당수는 나처럼 남편보다 연봉이 낮거나, 직업 안에서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느끼는 경우다. 그렇게 맞벌이를 포기한 댓가는 이렇다. 남편에게 육아와 가사를 반반 요구하기 어려워지고,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에 망설여진다. 남편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먼저 움츠러든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공적인 인간으로서의 노동자 지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을 확보하도록 하고 그 경제력에 근거한 협상력을 높이게 한다.’ (215쪽) 경제적 책임을 함께 지지 않으면, 남편과의 관계는 점점 더 기울어질 것이다. 집안에서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전담해도, 만질 수 있는 돈이 나오지 않는 한은 그렇다. 돈이 그렇게 무섭다. 그리고 나는 너무 무지했다.
한편으로는 전업으로 살며 아이를 가까이서 오래 보는 것이 제법 만족스러울 때도 많다. 어떤 직장이든 ‘정확한 출퇴근 시간이라는 시간규범을 엄수할 수 있는 사람이면서 회사를 위해 24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자’(165쪽)를 요구하는 것은 같은데, 근대적 노동자 개념이 요구하는 시간적 긴장을 감내하며,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까. 풀타임 직장인으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아도 내가 설레고 기뻐하는 일, 나의 방식으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돈이 무섭다며, 아직도 무서운 줄 모르고 '자아실현'만 외치는 걸까.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까. 길은 과연 있을까.
<기획된 가족> 속 맞벌이 여성의 동동거림을 지켜보다, 내가 처한 모순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