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읽기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 지음, 1999, 새물결
내가 일하던 비영리단체에는 엄마인 회원이 많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를 성적이나 성취로 재단하지 않(으려 하)고, 엄마의 감수성으로 세월호, 탈핵, 미세먼지 같은 사회 의제에 목소리를 내는 엄마. 이들과 교류하며 ‘나도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에게 온 생명을 성심성의껏 돌보며, 엄마의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순과 고통을 바라봐야지, 그 길에서 나도 더 성숙해지겠지, 믿었다.
엄마가 된 지금은? 엄마 노릇, 엄마의 감수성, 엄마라는 정체성... 이런 단어들은 소중하지만 때로는 벗고 싶은 페르소나다. 모유수유, 천기저귀, 유기농 먹거리,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한 로망은 진작에 내려놓았고, 육퇴 후에는 아이 생각도, 살림도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토요일에는 혼자 짐싸서 카페에 간다. 엄마 노릇에, 엄마라는 정체성에, 압도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종종 완전히 압도당하는 순간이 왔다.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의 블로그를 보다가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훈육에 관련된 육아전문가의 유튜브를 보다가 모순된 조언에 혼란스러울 때, 어떤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나를 흡사 내 진로 고민처럼 하고 있을 때...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4장에는 ‘부모 노릇 매니아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엄마/아빠가 될까 고민하며 육아 관련 책과 강의, 강좌 등을 섭렵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태세를 갖춘 사람들이다. 저자는 진단한다. ‘가장 감염되기 쉬운 부류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도시에 살며 첫 아기를 꽤 나이들어 낳고자 하는 중간계급 여성들이다.’(208쪽) 어라, 나잖아?
저자는 이들을 힐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면을 바라본다. ‘왜 현대적 조건 하에서 아이를 사랑하고 함께 사는 일이 모순의 덤불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인지를 추적해보아야 한다’(209쪽)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해주던 안전한 둥지가 사라지고, 기술적 진보가 기존의 육아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불안전감’, 현대사회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의 원칙’, 전문가가 많아질수록 등장하는 ‘상호모순된 조언’, ‘증폭제로서의 사랑’, 이들의 결합은 육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뿐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당신의 아이가 더 나은 위치에 오를 수 있고, 부모가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바로 ‘TV와 지역 신문, 학교 보고서를 통해 가정에 침투하는 절대명령의 포화’(229쪽)다. 이 절대명령은 대중화된 과학적 정보의 형태로 전달되는데, 형태는 다를지라도 내용은 동일하다. “#$$%를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 혹은 “#$$를 해야 아이가 성공한다!”
교육학계에서 ‘육아의 과학화’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추세는 정확히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부모들의 일에는 갈수록 많은 요구들이 생기고, 이를 위해서 부모들은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228쪽) 이 메시지가 부조리해보여도 부모는 쉽사리 거절하기 어렵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진위 여부를 검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거절했을 경우 자신이 아니라 아이에게 타격이 가니까.
이게 끝이 아니다. 아이의 성취를 위해 자원을 쏟아붓되 기대해서는 안되고, 아이와 애착관계를 형성하되 집착해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부모노릇을 하는 것은 부부관계나 자녀관계에 있어 위험하다.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정도로 적당한 감정을 갖는’(235쪽) ‘미궁과 같은 규칙들’(234쪽)이 필요하다. 이쯤 되니 육성이 터져나온다. “어쩌라고!!!”
부모들은 불가능한 요구 앞에 서있다. 불확실성, 사랑, 책임감이 휘몰아치는 한복판에서 ‘당신의 아이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후렴구를 반복해서 들으며, 한편으로는 지나친 부모노릇은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는다. 그 긴장과 갈등은 아이와의 관계를 향한다. 4장 끝에서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소규모 핵가족의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는 사랑과 함께 적대감이 감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산업화 이전 그리고 산업화 초기 사회에 비교할 때 오늘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매우 긴장되어 있고 격렬하다. 하지만 양측 모두, 부모와 자식에게는 갈수록 이 소중한 자산인 서로의 관계를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240, 242쪽)
전통과 공동체가 사라진 시대, 낭만적 사랑을 정박지로 삼은 현대인은 결혼 후 부부관계의 힘겨움에 맞닥뜨린다. 아이는 남편/아내와 다른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아이 역시 불완전한 정박지다. 오늘날의 핵가족 형태에서 부모는 부모노릇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고, 아이는 부모의 강점과 약점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다. 부모가 무슨 짓을 해도 아이가 전적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유아기가 지나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긴장되고 격렬’할 수 밖에.
단란한 가정이라는 환상 속에 자리한 그림자들이 점점 명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