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끈한 양파, 풋내 나는 부추, 요리조리 혓바닥을 빠져나가는 버섯, 알싸한 파. 이런 채소들을 언제부터 먹을 수 있었나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채소를 잘 먹지 못했다. 그렇다고 고기를 잘 먹는 아이도 아니었다. (네가 그래서 키가 안 큰 거야!) 친정 엄마가 만두를 그렇게 빚고, 밥을 그렇게 볶고, 카레를 그렇게 끓여줬던 이유를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됐다. 30년 전 엄마의 근심이 무색하게 이제 나는 채소와 나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중에서도 내가 먹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채소가 두 가지 있다. 가지와 도라지다. 최근까지도 가지의 식감은 이겨내기 힘들었다. 짙은 보라색(이게 퍼플이 아니면 무엇인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퍼플이다.)으로 뒤덮인 껍질은 달걀처럼 매끈한데 속은 스펀지처럼 폭신하다. 엄마는 그걸 꼭 쪄서 나물을 무쳤는데 흐물흐물해진 가지를 보며 나는 꼭 가래침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오라 아지~심심~삼천에 백도라지~" (속으로 따라 부른 당신, 음악시간에 충실했던 학생이었군요.) 도라지는 색이 감자 같아서 씹으면 감자 같은 맛이 날 줄 알았다. 식탁에 올라온 도라지나물을 집어 용기 있게 씹은 날이 기억난다. 세상에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왜 먹는 거지? 옅은 노란색의 야들한 도라지는 달짝하고 포근포근할 줄 알았는데. 흙냄새가 나는 나무뿌리 같은 맛이었다. 자매품으로 더덕이 있다.
지금에야 채소는 없어서 못 먹는다. 콩잎 무침이며, 방풍잎이며, 냉이, 달래, 명이나물도 찾아 먹는다. 햇양파는 그냥 먹어도 달고, 부추는 웬 영양소가 그리 많은지 부추만 먹어도 백 살까지 거뜬할 것 같다. 마늘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게 이래서 곰이 사람이 됐나 싶다. 기름에 볶는 게 잘 어울리는 채소가 있고, 아삭해야 맛있는 나물이 있다. 부족한 솜씨지만 요리하기 시작하면서 나물이랑 채소랑 더 가까워졌다. 시골에 살면서는 지천으로 널린 나물과 채소들을 보며 '무쳐먹으면 맛있겠다, 쪄먹으면 맛있겠다'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주변에 유난히 편식하는 친구들이 있다. 김밥 하나를 먹어도 한입에 못 넣는 친구들. 지금 그 친구들의 입맛도 다 변했다. 이제 우리는 모이면 제철 나물을 챙겨가며 요즘은 이게 맛있을 때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시절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한 입만 더 먹자고 채근하지 않고, 왜 안 먹느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곱게 다지고 한 번 더 숨기면서 생각했겠지? 때가 되면 다 먹는다는 것을. 결국 너도 알게 될 거라는 것을. 알싸하고 아릿한 맛, 흙내음 가득한 것을 향긋하다고 느끼고, 질기면 질긴대로 쓰면 쓴 대로 맛있다며 씹을 수 있는 나이. 이제 우리는 나물의 쓴맛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됐다. 자연스럽게.
어제도 별이랑 뒷산으로 산보를 갔다가 발밑에 걸리는 게 있어 봤더니 더덕이다! 이 좋은 게! 내일은 호미 들고 올라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