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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May 26. 2022

시골길을 운전할 때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10년 전 나는 초보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운전 왕초보였다. 마을길에서 마주오는 차를 만날까 봐 '제발 오늘 차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침을 삼키고 핸들을 꼭 쥐었다. 혹시나 논두렁에 빠질까 봐 운전석을 올리고 어찌나 고개를 뺐는지 머리가 천장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때 정말 목이 좀 늘어났더라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차선이 없는 콘크리트 길이었다. 큰 도로에서 동구까지는 1km 남짓한 거리인데 폭이 1.5차선 정도여서 마주오는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당산나무가 있는 공터까지 버스가 오는 마을이라 차끼리 피할 수 있는 곳이 길 양쪽에 한 군데씩 있었다. 멀리서 마주오는 차가 보이면 피하는 곳에서 기다리는 센스가 필요했다. 서로 눈치 보며 직진하다가는 중간에서 만나 어느 한 차가 후진으로 한참을 가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나는 왕초보 시절 이 길에서 50m를 후진한 적이 있다.


  내가 진입할 때는 분명히 당산나무 앞에 정차해있던 버스가 갑자기 출발을 한 것이다. 기사님이 이제 막 출발했기 때문에 내가 후진하는 것보다는 기사님이 후진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기사님은 엑셀 밟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 차 코앞까지 와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외치셨다.


"비켜요 아가씨!" (잽)

"기사님 제가 운전이 서툴러서요......"

"차가 출발하면 들어오지를 말아야지!" (잽)

"아니 제가~"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하려는 내 말을 끊으며 기사님은 카운터 펀치를 날리셨다.

 

"버스는 후진이 안된다고! 얼른 비켜요!"


버스가 후진이 안된다니 별 수 있나. 나는 뒤로 가기 위해 굽은 길에서 수도 없이 기어를 R과 D에 번갈아 넣었고, 고작 50m 이동하는 동안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집에 와서도 열이 식지 않아 남편을 붙잡고 억울함을 쏟아냈다.


"자기야, 버스 후진 안 되는 거 알았어?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니까 너무 화나는데 차는 빼야겠고. 진짜!"

"수람아, 버스가 후진이 안되면 주차는 어떻게 하니."


  띵~ 그렇다. 기사님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억울해! 나 정말 억울해!


 



   운전 중에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면 운전자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데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거나, 깜빡이도 없이 끼어드는 차가 있다거나, 불쑥 보행자가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시골길에서 만나는 변수는 도심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조금 다르다. 앞서 이야기한 일은 좀 억울한 일이긴 했지만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도심과는 결이 다른 변수와 만난다. (tmi-작년에 동네 길이 왕복 2차선 공사가 완료되어 이제 50m를 후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차가 오든 말든 고고하게 지나가는 꿩이라든가 슬로모션이 걸린 듯 5초에 한 번 꼴로 발 하나를 내딛는 두꺼비 같은 것들. 쏜살같이 뛰어가는 고양이와 강아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시골길 위에서는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는다. 도심을 운전할 때 예상 밖의 일과 마주치면 당황스럽고 짜증이 난다. 차가 멈춰있을 때는 시간이 낭비되는 것 같고, 핸들을 급히 틀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등골이 서늘해지면 피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내가 상대의 방해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어떤 때에는 미안함까지 느낀다. '내가 저들이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시골길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동네 어르신들과 마주칠 때도 마찬가지이다.  


  골목에서 앞서가는 어르신을 만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보행보조기(실버카)를 끌고 걸음을 옮기신다. 이럴 때는 경적을 울려서도 안되고 아무리 천천히라도 걸어가는 어르신을 뒤따라가서도 안된다. 한 번은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참지 못하고 조용히 뒤따라 간 적이 있었는데 내 차가 옆으로 지나가니 어찌나 깜짝 놀라시던지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절대 뒤따라가지 않는다. 어르신이 그 길을 다 지나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출발한다. 사실 서너 번 중 한 번은 옆에 계시는 어르신이 "어이! 뒤에 차! 차!"하고 크게 외쳐주시기도 하고, 또 그 나머지 중 한 번은 엔진 소리가 들리니 얼른 옆으로 비켜주신다.


  운전 중 잠시 멈춘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고 특별히 참을성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도심에서는 내 앞에서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면 그 신호를 기다리는 2~3분이 영겁처럼 느껴지고 아깝기만 한데 시골길에서 꿩과 두꺼비, 개와 고양이, 마을 어르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몇 분이라도 아깝지가 않다. 도심에서 운전 중에 옆 차가 끼어들면 '그래, 내가 양보해준다.'하고 시혜적인 마음이 드는데 시골에서 내가 하는 양보는 오히려 미안하고 그 뒤에 조금 뿌듯하다. 기다림이 뿌듯함으로 돌아오다니. 이것은 진정한 양보가 아닌가. 찰랑찰랑한 논물에서 개구리들이 내게 합창을 보내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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