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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Aug 12. 2022

시골 아이들, 캠핑은 마당에서

'마당캠' 아니고 '난방캠'

"엄마 나도 캠핑 가고 싶어" 


  유치원에서 돌아온 큰 아이가 꺼낸 이야기였다. 역병이 창궐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집에만 있지 않았다. 맛집을 가거나 관광 위주였던 여행은 '트레킹'이나 '캠핑'의 형태로 바뀌었다. 대규모에서 소규모로, 안에서 밖으로 사람들은 점조직처럼 흩어졌다. 어린 자녀가 있는 엄마, 아빠들은 키즈카페로 가는 대신 운전대를 잡고 산과 바다로 향했다. 친구들의 차 트렁크에는 작은 테이블과 돗자리, 스타벅스 캠핑 의자가 실려있었다. 인스타 피드에도 아이들이 캠핑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무엇보다 큰 아이의 가장 친한 유치원 친구네가 캠핑을 마트 가듯 편안하게 다니는 프로 캠퍼였다. 매번 캠핑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아들, 캠핑 가고 싶어? 그래 대세는 캠핑이다!


  우리 부부? 우리는 트렌드에 민감한 트민부부면서 취미를 할라치면 일단 장비부터 준비하는 장비병에 걸린 부부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으려면 렌즈부터, 요가를 하려면 요가 매트부터, 홈트를 하려면 홈트 기구가 먼저 필요한 법. 골프를 시작하려면 강습보다 골프채와 가방을 먼저 준비해야 마음이 놓인다. 모든 취미는 장비빨이다. 그리고 캠핑은 발을 들이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장비의 끝판왕 아닌가. 트민부부는 신중했다. 장비의 세계에 빠지기 전에 캠핑을 간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요즘 캠핑장은 마트나 사워시설이 있다든지 숲 놀이터나 계곡 수영장이 있는 등 각각의 특색이 있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대규모의 숲 놀이터로 지역에서 입소문 난 평점 높은 캠핑장이었다. 나도 남편도 소싯적에 텐트 좀 치고, 캠프파이어 좀 해봤던 보이스카웃, 아람단 출신이라 캠핑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30년 전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역시 멋진 건 보이스카웃지" "아니지 한국 토종 아람단이지" "아람단은 옷이랑 마크가 촌스러웠다" "카누 타봤냐, 농촌봉사 활동해봤냐" 네가 낫네, 내가 낫네하며 누가 이긴다고 해도 하등 의미 없는 우열 가리기를 했다. 그러면서 캠핑 그까짓 거 텐트 치고 테이블 의자 펴놓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결론을 냈다. 자신감도 넘치는 부부다.


  캠핑장에 도착하니 비가 살짝 내렸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며 '대체 여기 어디쯤 캠핑장이 있다는 걸까' 의심하며 안내판을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며 하나 둘 보이는 텐트들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텐트 다양했다. 우리가 30년 전에 치던 그 텐트들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텐트도 있었고, 상상 이상으로 큰 텐트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장비들은 더 화려했다. 밖에 나와있는 캠핑 용품들은 부엌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었다. '대체 저 많은 물건을 차에 어떻게 실어 온 거지?' 드디어 캠핑장의 메인 사이트들이 모인 계곡 근처에 도착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헉!" 했다.


  우리 눈에 들어온 캠핑장은 난.민.촌.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초여름의 토요일이기는 했지만 해도 너무 했다. 계곡에서 물소리 들으며 힐링하는 캠핑을 꿈꿨던 우리는 다닥다닥 붙은 사이트와 여기저기 빨랫줄에 널린 수건과 옷가지들 그리고 텐트마다 만들고 있는 여러 음식 냄새가 섞여 퍼지는 광경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와, 이건 아니다" 동시에 말을 뱉었다. 참 생각도 잘 맞는 부부다.


  텐트 끝에 매달려 하늘하늘 흔들리는 드림캐쳐와 밤에 예쁘게 켜질 알전구도 우리의 첫인상을 지우지는 못했다. 지글지글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와 소시지 냄새를 맡아도 소용없었다. 캠핑장 곳곳에 <밤 10시 매너 타임> 팻말이 걸려있었다. 매너 타임까지 존재하다니. 그렇게 우리는 캠핑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빠져나왔다. 나도 불멍 하고 싶었는데. 낮에는 아이들이 숲을 뛰어다니면서 곤충 관찰하고, 밤에는 풀벌레 소리 들으며 맛있는 캠핑 음식 만들어 먹고 싶었는데...... 음. 뭐야? 이거 우리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우리가 캠핑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골목을 나서면 온통 논밭이고, 집 뒤는 산이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고, 새벽마다 우리를 깨우는 새들이 있다. 봄이면 멧비둘기가 구우 구우 거리고, 소쩍새가 소히쩍 소히쩍 운다. 여름이면 휘파람새가 휘이~~호로록 울고, 어느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았을 뻐꾸기가 뻐꾹거린다. 겨울이면 딱따구리가 텅 빈 나무를 쪼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요즘 같은 늦은 여름이면 잠자리, 장수풍뎅이, 매미가 근처에 툭툭 떨어져 있는 곳. 시골살이하는 사람에게 캠핑은 필요조건이 되지 못했다.


  아파트 살 적에 주말마다 밖으로 나갔던 이유를 떠올려 다. 주말이라도 층간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릴 적에 피아노 소리 듣기 싫다고 내가 피아노만 치면 인터폰을 울리던 매정한 이웃이 떠올랐다. 또 직장 생활할 때는 윗집 아이들 쿵쿵거리는 소리에 더 자고 싶어도 못 잤던 토요일 아침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발바닥에 스펀지가 달린 것처럼 소리 나지 않게 뛰고 걷는 게 몸에 익어있었다. 쿵쿵거리면 안 되기 때문에 양말을 신고 미끄러지듯이 발가락 쪽에 더 힘을 주고 걸어 다녔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를 피해 자연에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뻥 뚫린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캠핑을 가는 것이다.




  캠핑 안 해도 다른 곳에서 더 재밌게 놀면 된다는 엄마 아빠의 말에 설득될 리 없는 아이들의 입이 댓 발은 나왔다. 그래도 엄마 아빠가 캠핑에 별 뜻이 없어 보이는 분위기를 읽었는지 더 이상 캠핑 가자고 조르지 않았다. 캠핑 이야기가 쏙 들어간 가을, 큰 아이가 외쳤다. "엄마! 우리집에 텐트가 있어!"


  응? 우리집에 텐트가 있다고? 무슨 말이지? "맞다! 엄마 우리도 캠핑할 수 있어!" 둘째도 덩달아 외치더니 둘이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이 안방에서 꺼내온 것은 난.방.텐.트.였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공기에 며칠 전 꺼내 세탁해 둔 난방 텐트를 을 합쳐 꺼내왔다. 비록 아래는 뻥 뚫렸지만 분명히 텐트는 텐트다. 빵 터져서 웃는 나를 보더니 "엄마 바닥에 깔 것 좀 갖다 주세요" 했다. 마당 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은 난방텐트. 토요일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바닥도 도톰하게 깔아주고, 밖에서 먹을 도시락도 만들어 주니 캠핑 분위기가 그럴듯하게 났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마당캠? 낭만캠? 아, 아니 난방캠? 어쨌든.


'마당캠' 아니 '난방캠'


  "엄마 캐치티니핑 노래 틀어줘" "아니야, 까만리무진 틀어줘" "캐치티니핑!" "까만리무진!" 또 싸운다. 뒤 이어 텐트 안을 채울 온갖 살림이 다 나왔다.


  "그만 꺼내와. 너네 이따가 이거 다 너네가 치워야 돼. 엄마는 안 도와줄 거야!"


  내 잔소리는 아이들 귀에 닿기도 전에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결국 뒷정리는 내가 하고 있을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휴우. 언제 다 치우지. 이거 왜 시작했지. 맞다! 시골살이고 뭐고, 산새고 뭐고, 우리 부부가 캠핑을 시작하지 않은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게으르다. 정리하기 싫다. 생각만 해도 싫다. 캠핑은 시골에 살아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게을러서 못 하는 거다.


  그리엊그제 비가 쏟아지는 마당에서 아이들은 우중캠을 했다. 우중캠을 위한 텐트는 뭐였을까?

 


'우중캠' 아니 '우산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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