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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Oct 02. 2022

내 아이 시골학교 보내기

  우리집은 나름 초세권에 위치해있다. 걸어서 15분이면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닿는다. 작년 겨울 취학통지서가 도착했을 때 온 가족이 조금씩 들떴다. 언제나 아기일 것만 같았던 아이가 학교라는 사회로 나간다는 게 기특했다. 그리고 주변 언니들이 결혼 전에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했던 "거기 들어가서 살면 나중에 애들 학원은 어떻게 할래?"를 고민해야 할 순간도 다가왔다. 막상 큰 아이의 입학을 앞두고 보니 그동안 시골살이하면서 굳건하게 '어릴 때는 뛰어노는 게 최고지'했던 교육철학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마음 깊은 곳에 꾹꾹 눌러놓았던 교육에 대한 열망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예체능은 저학년 때 좀 해줘야 하지 않나? 아이가 어디서 적성을 찾을지 모르는 일이잖아. 나중에 아무것도 안 시켜줬다고 원망하면 어째. 설마 우리 애가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가 여덟 살이 된 그날부터 내 마음은 교육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 잃은 종이배가 되어버렸다.


  아이 학교와 멀지 않은 동네에 아파트가 하나 둘 들어서면서 꽤 큰 단지를 이루었다. 상권은 물론이고, 학교와 아파트 주변으로 학원가까지 조성되어 요즘에는 지역에서는 괜찮은 학군으로 분류될 정도다. 동네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을 때 내 눈에는 오로지 어떤 커피숍이 새로 들어왔는지만 보였다. (집 가까운 곳에 갈 수 있는 커피숍이 생기다니!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여기서 가깝다는 의미는 차로 10분) 그런데 아이의 입학과 동시에 혹시 이 동네 학원들 중에 아이 학교까지 차량 운행을 해주는 곳이 있지는 않을까에 온 관심이 쏠렸다. 급기야 맘카페에 'OO초등학교에 학원 차량 들어오나요?'를 검색해보았다. 예비 학부모가 되자마자 조급해졌다. 당장이라도 아이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질 것 같아 마음이 바빴다. 여유롭고 아름다운 시골 육아를 꿈꿨던 나는 며칠 만에 뻔하고 시시한 학부모가 된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ㄷ'자로 논에 둘러싸여 있다. 학교 앞에는 문구점이라고 하기에는 슈퍼 같고, 슈퍼라기에는 동네 어르신들 쉼터 같은 전방이 하나 있다. 학교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왕버들 나무와 넓은 운동장이 역사가 깊은 학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도 둘러보니 체육관, 화장실, 교실 기자재 등의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걱정할 부분은 없었다. 무엇보다 급식이 맛있기로 주변 학교에 소문이 났다고 하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암만, 밥이 최고지) 드디어 입학식 날. 교문에서 어느 피아노 학원의 전단지를 받았다. <차량 운행>이라는 네 글자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워킹맘으로서는 원장 선생님의 경력이나 전공 여부를 따질 게 아니었다. 됐다!


  시골에 살면서 아쉬웠던 점은 딱 두 가지이다. 학원은 물론이고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우리집까지는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 아이들의 등 하은 온전히 가족들의 몫이다. 학교에 스쿨버스가 있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는데 우리집은 학교와 거리도 가깝지만 스쿨버스가 오갈 수 없는 길에 위치해있어서 해당이 안 되었다. 지금은 아이가 출근길에 내 차로 등교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두 번째는 동네 친구들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도 다른 친구들을 참 부러워했다.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시기가 있었다. 대부분 친구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만나 노니까 말이다. 더불어 나라고 아이 친구의 엄마들을 알 리가 없었다. 나에게는 아파트 단지와 놀이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엄마들의 네트워크가 없다. 시골 육아는 사실 좀 외롭다.




  그렇다고 머리가 굵은 이후로 쭉 인싸였던 내가 외롭게만 있을 리가 없지. 엄마들이야 오갈 때 인사나누며 친구하면 되고, 아이 친구들도 따로 만나면 되니까. 놀이터 네트워크를 대신할 모임은 ENFP 엄마가 커버했다. 하교 후 아파트 놀이터에서 못 노는 대신 온 가족이 별이와 함께 시골길을 걷는다. 아이들 웃음소리라고는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어르신들을 마주칠 때마다 멈춰 서서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합창하니 마을의 명물이 된 것은 자명하다. 그럼 된 거지!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을 반 이상 한 지금, 아이도 나도 학교생활에 대만족하고 있다. 봄에는 하천으로 밭으로 나물 캐러 다니더니 여름에는 학교 텃밭에 반별로 방울토마토, 상추, 고추, 대파를 심었다. 가끔 주말에 운동장으로 놀러 가면 아이 반 밭에서 방울토마토 한 알씩 따먹는 재미가 있었다. 주변 논이 모내기를 끝낸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아이가 생태교육 시간에 논에 나가 '긴꼬리투구새우'를 관찰했다고 말해주었다. "엥? 무슨 새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엄마 그리고 우렁이랑 또라이물달팽이도 봤어! 아, 아니 또.아.리.물달팽이" 나머지 생물들도 다 처음 들어 본다. 본 투 비 시골러인 나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생물들을 직접 관찰했다고 하니 뿌듯했다. 이게 시골학교 다니는 맛이지!


  계절마다 논으로 밭으로 뛰어다니며 직접 기르고 수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운동장에서 캠핑도 하고, 얼마 전 심은 배추와 무가 속이 차면 겨울에는 전교생이 김장도 한다고 하니 앞으로 학교 생활이 더 기대된다. 매일 아침 학생과 선생님이 팔짱 끼고 손잡은 채 맨발로 건강 걷기를 하는 풍경 본다. 아침 햇살 받은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엊그제 별이를 데리고 학교까지 산책을 갔는데 아이가 학교에 들어서며 "아! 사랑스러운 OO초등학교!" 외치며 뛰어 들어갔다.

  시내에서 부러 시골 학교를 찾아 통학하는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시내 학교로 전학을 나간다고 한다. 가끔 주변에서 언제까지 그 학교 보낼 거냐고 물어온다.


"글쎄요, 이런 학교 두고 어딜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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