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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May 30. 2022

고사리는 끊고, 상추는 따고, 부추는 자르고

나물마다 수확하는 손맛이 다르다

  올봄에 수확해서 정말 잘 먹었던 나물이 고사리다. 고사리는 뒷산 응달진 곳에 주로 퍼져있는데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자리에서 올라온다.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끊으러 갔다. 고사리는 잎이 펴지 않은 새순을 끊어야 한다. 흔히 아기 손을 보고 '고사리 손'이라고 하는데 정말 갓난아기들이 손을 꼭 쥐고 있는 것처럼 새순이 잎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있다. 내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데 두 아이는 어찌나 잘 찾는지 금세 한 움큼씩 따서 봉투가 묵직해졌다. "엄마 여기 있잖아, 여기!" 땅에서 곧게 올라와 아이들 눈에 잘 띄는 새순이 내 눈에만 안 보인다. "앗! 고사리다!" 어쩌다 발견한 내 고사리. 손 끝에서 줄기가 '뚝!' 끊기는 느낌이 든다. 아, 신난다. 내 고사리! 뚝! 뚝! 뚝!


  봄에 수확한 고사리는 볕에 바짝 말려 보관하다가 가을, 겨울에 불려서 나물을 해 먹는데 올해는 수확량이 많지 않아 바로 먹기로 했다. 다음 날 시어머니가 "고사리 넣고 지짐 했다." 하시며 아이들과 수확한 고사리로 만든 음식을 갖다 주셨다. 그게 '고등어 지짐'이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조림을 지짐이라고 한다.) 깨끗하게 씻은 고사리를 바닥에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자르지 않은 김장 김치를 포기째 넓게 펴서 올린다. 김치 국물과 물을 살짝 넣고, 맨 위에 고등어를 올리고 자글자글 끓이는데 마지막에 대파만 송송 썰어 올려주면 밥도둑 '고등어 지짐' 완성. 얼마나 맛있는지 나는 고사리와 김장김치를 한 번 더 넣고 리필을 해 먹었다.




  5월부터는 집 앞마당에 있는 텃밭 두 개가 번갈아가며 식자재 마트 운영을 시작한다. 우리 집에는 이 텃밭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살고 있다. 생산자는 시아버지고, 나와 시어머니는 주요 소비자다. 위쪽 텃밭은 절반이 꽃밭이라 규모가 작다. 주로 자주 먹는 부추나 상추를 심는다. 고랑이 다섯 개 있는 아래쪽 텃밭이 여름 내내 우리를 먹일 메인 코너이다. 지금 같은 초여름에는 오이, 고추, 가지, 쑥갓, 옥수수,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채소들이 쑥쑥, 죽죽, 댕댕 자라고 있다.


  텃밭 채소중 난이도가 낮으면서 엄청난 생산량을 보여주는 것은 상추다. 상추는 뿌린 씨에 비해 효율적으로 수확하는 대표 채소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따는 방법은 똑같다. 적당한 크기로 자라면 겉잎부터 따 주는데 상추의 가운데 도톰한 심부분이 손끝에서 똑똑 부러진다. 이때 나는 소리와 느낌이 정말 좋다. 어떤 사람들을 '상추를 뜯는다'라고 하는데 아니, 상추는 따는 게 맞다. 왜냐고? 따 보면 안다. 똑! 이 '똑'은 분명 따기 때문에 나는 소리다.

  

  상추는 쌈으로도 먹지만 나는 겉절이 같은 샐러드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고깃집에서 먹어본 게 맛있어서 집에서 얼추 흉내 내보았는데 그 맛이 났다. 고춧가루는 적게, 멸치액젓과 식초, 설탕(매실액), 마늘을 적당하게 배합하면 된다. 그러면 짭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상추 샐러드를 먹을 수 있다.




   다음으로 자주 먹는 부추는 가위로 '잘라서' 수확한다. 밑동까지 꽤 바짝 자르는데 며칠 뒤에 보면 어느새 다음 잎이 무성하게 올라온다. 자를 때 가지런히 담으면 씻을 때도 편하고, 요리하기에도 좋다. '삭삭' 가위질 몇 번만 하면 다음 식사 메뉴가 정해진다. 막 딴 부추는 향이 좋다. 부추는 역시 전이다.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 4cm 정도 크기로 잘라준다. 다른 채소를 넣는다면 양파나 당근 정도만 얇게 썰어주면 된다. 부추의 향을 가리지 않고 색도 예쁘고, 단맛도 오른다. 부침가루 솔솔 뿌리고 달걀은 한 두 개 정도 풀어준다. 집에 항상 냉동 오징어를 사두는데 오징어를 부추전에 넣으면 몸값이 배로 뛴다. 기름을 자작하게 두르고 얇게 부치면 바삭바삭 맛있는 부추전 완성. 부추는 달걀찜을 할 때도 잘 넣어먹는다. 아침에 한 움큼 잘라와서 잘게 썰고 소금 간만 살짝 하고 달걀찜을 해 먹으면 빈속이 든든하게 채워진다.




  고사리를 끊으러 뒷산을 헤매는데 '수렵과 채집'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중학교 사회 시간이었을 것이다. 흑백으로 구석기인의 상상도가 인쇄되어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수렵과 채집'이라는 말에 동그라미를 치고 외웠다. (외웠겠지?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이렇게 입에 쫙쫙 붙겠지) 그때는 이 말이 어려워서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구석기시대의 또 다른 특징 '뗀석기'도 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의 산증인이 아닐 수 없다. (신석기시대는 간석기, 청동기 시대는 고조선. 아놔.) 비록 수십만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처럼 채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꽤 재밌어하는 인간이다. 나 채집 좋아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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