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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Sep 13. 2022

마당이 있다고 고기를 굽지는 않아요

작지만 확실한 낭만

  우리집에는 마당이 있다. 처음 가져보는 나만의 마당이다. 신혼집에 마당이 있다고 하니 친구들은 "밖에서 고기 구워 먹을 수 있겠다"했다. 이 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도 친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날 풀리면 마당에 누워 별도 보고, 고기도 구워 먹어야지' 생각했고, 마당은 떠올리기만 해도 낭만이 피어오르는 공간이었다. 내심 '언젠가 아이들이 생긴다면 이 마당에서 뛰어다니겠지?' 하는 아기자기한 꿈도 품었다. 신혼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 드디어 마당에서 고기 굽기를 실현할 기회가 왔다.


  총 세 팀의 친구들이 집들이 겸 놀러 오기로 했고, 남편과 나는 마당에서 고기 구울 생각에 설렜다.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니까 우리는 주택살이에 집들이의 초점을 맞추자 싶었고, 시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어머니, 친구들 오면 밖에서 고기 구워 먹으려고 하는데 혹시 숯불 피울만한 것 있을까요?"


  손님맞이에 신이 난 우리와 다르게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셨다. "아휴, 연기 나고 모기 득시글거려서 밖에서 고기 구워 먹는 게 보통일이 아닐 텐데" 하셨지만, 우리 뜻이 확고하자 시아버지께서 반이 잘린 큼지막한 드럼통을 갖다 주셨다. 우리는 드럼통에 맞는 커다란 석쇠와 숯, 토치까지 야무지게 준비했다. 소시지에 고기, 김치만 있어도 얼추 '마당 바비큐' 느낌이 날 것 같았다.


  대망의 집들이 날, 불 피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고기 기름과 숯이 만나 내뿜는 뿌연 연기는 둘째 치고, 늦은 밤 조명을 향한 날벌레들의 무차별 공격과 모기떼의 습격은 마당에 서있는 우리들을 질색팔색 하게 만들었다. 밖에서 안으로 반쯤은 시꺼메진 고기를 나르며 낭만을 찾아보려 했지만 어디에도 낭만은 없었다. 장갑에 안경까지 야무지게 준비했지만 매캐한 연기를 맞으며 바깥에서 고기 굽는 남편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있었다. 평소에 저녁도 잘 안 해 먹는데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 집들이라니 우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친구들을 보내고 만신창이가 되어 정리를 하며 "이거 다시는 하지 말자" 다짐했다.


  두 번째 집들이 날에는 숯불 직화를 과감히 버렸다. 그렇다고 마당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처음 왔던 친구들이 일견에 "펜션에 놀러 온 것 같다"라고 했던 말에 어깨가 으쓱해서 손님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마당 바비큐는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나방과 모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더 이른 시간으로 옮기고, 긴 멀티탭을 연결해 바깥에서 전기 불판으로 고기를 구웠다. 훨씬 나았다! 숯불을 피우지 않으니 매캐한 연기도 나지 않았고, 고기가 타기 전에 노릇노릇하게 구울 수 있었다. 역시 전기가 최고야! 그런데 말이야, 이럴 바에는 굳이 밖에서 안 구워도 되지 않아?


  세 번째 집들이 날.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전기 불판에 소고기를 올렸다. 치이이이익! 암, 자고로 인간이라면 마땅히 도구를 이용해야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지. 이렇게 우리는 집들이 세 번만에 '마당 바비큐'라는 야무진 꿈을 접었다.




  십년이 지나는 동안 초록 초록한 잔디를 밟으며 두 아이가 아장아장 발걸음을 뗐고, 좀 더 커서는 나비랑 메뚜기 잡는다고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녔다. 별이와 뛰어 놀기도 하고, 비눗방울도 날리고, 심심할 때면 공도 차고 자전거도 탄다. 마당은 여름에 수영장이 되기도 하고, 겨울이면 눈사람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신기할 정도로 해마다 같은 장소로 찾아오는 개구리와 두꺼비 가족도 있다. 요즘처럼 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면 초저녁에 반딧불이 서너 마리 만나는 행운까지도 누릴 수 있다.


여름의 마당


겨울의 마당

  '집'은 너머의 하늘과 풀과 바람까지 이른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언제든 걷고 뛸 수 있는 마당에 닿는다. 마당은 모두가 거리를 두고 집에만 머물러야 했을 때 숨통을 트여주었다. 도처에 있는 벌레와 지네도 막을 수 없는 행복이 분명히 있다. 마당이 있다는 것은 작지만 확실한 낭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집 마당에는 고기 빼고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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