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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Jun 14. 2022

35년 워킹맘 선배가 후배 워킹맘에게 2편


"어느 날 아이가 초등학생 때였나 주말이었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어서 소파에 누워있는데 학생한테 전화가 걸려온 거야. "oo아, 그랬구나. 속상하겠다.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겠어. 또 무슨 일 있으면 지금처럼 선생님한테 전화하렴. 그래 월요일에 보자." 종일 아이한테 '엄마 피곤해', '엄마 못해'를 입에 달고 있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른 아이한테는 세상 따뜻한 목소리로 통화한 거지. 나는 그때 나를 바라보는 아이 눈빛을 잊지 못해."


먼 기억이지만 눈앞에 당시 아이 얼굴이 그려지는 듯 아련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를 이어서 전해주셨다.



4. 아이는 엄마가 못해주는 것인지 안 해주는 것인지 안다

아이는 엄마가 못해주는 것인지 안 해주는 것인지 귀신같이 안다. 엄마가 해줄 수 있었는데 안해준 것은 원망으로 돌아오지만, 어쩔 수 없이 못해준 것은 엄마에 대한 이해와 안쓰러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요즘 교육과 관련한 유튜브나 책을 살펴보면 '엄마표'가 붙지 않는 곳이 없다. 영어도 수학도. 이제는 글쓰기, 체험학습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엄마가 만능이 되어야 하는 시대다. 쏟아지는 교육 정보에 혼란함을 느끼기도 전에 '내가 이런 것들을 다 챙기지 못하면 어쩌나.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엄마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전해주신 말씀처럼 엄마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5. 아이들은 엄마의 기분과 태도를 읽는다

워킹맘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온 앤 오프를 잘하는 것이다. 엄마의 기분과 체력이 아이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해라.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집으로 가지고 가지 말자. 아이들은 엄마의 기분과 태도를 읽으면서 자란다.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퇴근하고 집에서 쓸 에너지를 남겨둬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직장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친절한 말이 나갈 리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뿐만 아니라 피곤한 날에는 유독 시간에 인색해진다. 그런 날에는 저녁 내내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있다. 날이 새도록 놀았던 20대의 체력은 이제 우리에게 없다. 휴대폰이 배터리 잔량을 알려주는 것처럼 워킹맘의 남은 에너지를 표시해주는 서비스가 나왔으면 좋겠다. 동료와의 수다로 5% 충전하고, 커피 한 잔으로 5% 충전되어서 집에 가기 전에 늘 에너지 20%를 채워가는 상상을 해본다.



6. 존재만으로도 귀한 아이

내 인생을 바꾼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외국에서 아이가 아팠을 때였고, 두 번째는 세월호 참사였다. 프랑스에서 아이가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아이를 기다리면서 나와 남편은 겸손해졌다. 아이를 향한 욕심과 기대는 사라지고, 존재만으로 귀함을 느꼈다. 세월호 참사를 겪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귀하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작년에 둘째 아이가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가는 시간이 영겁 같았다. 아이를 살려주고 나를 대신 데려가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속으로 외쳤다. 다 괜찮으니 그저 건강하기만 하라고 빌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가 무사히 깨어나기만 바랐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왜 꼭 위기의 순간에만 소중한 것이 명백해질까. 정말 소중한 것은 아이의 존재 그 자체이다.



 7.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자

지금 우리 세대 이후의 아이들은 결코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우리의 반만 해도 된다. 높은 자존감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임할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해주자.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허용하는 말을 많이 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만 내뱉는 엄마 밑에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자랄 수 없다. 아이에게 선택지를 줘라.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라. 단, 엄마가 아이를 믿어야 한다. 아이가 '엄마가 나를 믿어주고 있구나'느껴야 한다.


육아서나 자녀 교육서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자존감'이다. 대체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도 읽고 관련 영상도 많이 찾아봤는데 선생님이 핵심을 짚어주셨다. 허용적인 언어 사용, 아이가 스스로 선택, 결과는 본인지 책임질 것, 아이 믿어주기! 이 네 가지만 잘 실천해도 될 것 같다. 오늘부터 당장 실천에 옮겨야겠다.



8. 시험은 즐거운 이벤트

엄마들이 중심을 잃을 때가 아이가 성적을 받아오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시험기간의 경우를 보자. 아이보다 엄마가 더 조급하다. "이거 풀었니? 이 과목 봤니? 오답 정리했니?" 이런 식으로 아이를 재촉하면 아이에게 시험은 굉장히 부정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시험은 학교생활 중 가끔 찾아오는 이벤트로 생각하고, 결과는 쿨하게 받아들이자. 엄마가 시험에 대해 여유로운 태도를 가져야 아이도 의연한 태도로 임한다.

어느 중학교에서 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시험이 끝난 날 오늘 뭐하냐고 물었더니 가족과 외식을 간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시험은 생일처럼 가끔 찾아오는 이벤트 같은 날이었다. 결과와 관계없이 온 가족이 맛집에 가는 날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성적에 쿨하고, 시험을 이벤트 같은 날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마의 사고가 "양육=교육=입시"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해지는 것 같다. 양육은 결코 교육일 수 없고, 교육의 목표가 입시라면 아이들은 문제 푸는 기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음이 건강하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 그게 내가 품고 있는 희망이다. (거기에 공부까지 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앗, 욕심은 끝까지 버릴 수 없는 건가.)



선생님이 전해주신 이야기를 메모하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나도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하며 이 글을 썼다. 현실은 나를 위한 시간은 출퇴근 시간뿐이고, 다 놓고 떠나버리고 싶은 날이 수두룩 하다. 그렇지만 아직 나에게는 나를 변화시킬 쇠털 같은 날들이 남아있다. 포기하지 않겠다. 최선을 다해보자. '슈퍼 워킹맘'은 아니라도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은 워킹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날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선생님 댁에 수박 한 덩이 들고 놀러 가야겠다. 빨간 지붕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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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워킹맘 선배가 후배 워킹맘에게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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