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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Aug 30. 2022

오늘 아침, 널 꼭 그렇게 보내야 했을까?

  월요일 아침은 다른 날보다 마음이 더 바쁘다. 출근은 8시 30분까지이고,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다시 직장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8시에는 나서야 한다. 8시 5분은 데드라인이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거실에 널브러진 빨랫감들을 치우고 문단속을 하는데 그새 또 4분이 지났다. 이제 지각 여부는 신호에 달려있다. 초침이 쉼 없이 다음을 향해 내달릴수록 아이들을 재촉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8시 9분에 시동을 걸었다. 골목을 내려가는데 뒷자리에서 아이가 외쳤다.


"맞다! 책 안 넣었다!"


  실내화 가방, 물통, 필통 속 연필까지 다 확인했는데 알림장 속 준비물,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씩 가져오기>를 잊고 있었다. 핸들 잡은 손을 꽉 쥐고 선택해야만 했다.


"지금 집에 돌아갈 수는 없어. 내일부터 잘 챙겨."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눈물이 쏟아지기 직전이다.


"돌아가! 집에 돌아갔다가 가면 되잖아~"


"그럼 엄마 출근 늦는다고! 지금 돌아가면 엄마 지각한다고!"


"지각하면 되잖아!"


  아들의 얼굴에는 나를 향한 분노와 책을 가져가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고 있다. 더 이상 큰 소리 내고 싶지 않아서 차를 돌렸다. 1초라도 벌어보려고 뒷문까지 열어놓은 후 못다 한 화장을 했다. '그래, 그래도 덕분에 화장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월요일 아침을 이렇게 망칠 수 없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눈썹을 그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나오질 않아 고개를 드니, 유유히 책을 읽으면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너 지금 그럴 시간이 있어? 얼른 타!"


  10초 전까지 먹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내 안에는 짜증과 화만 남았다. 골목을 내려가는 내내 잔소리가 폭주 기관차처럼 멈출 줄 몰랐다. 학교에 도착할 때쯤에는 차 안의 공기마저 얼어붙어버렸다. 아이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도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뒤에 차가 들어와 버렸다. 결국 아이와 눈을 맞추지 못했고, 아이는 끔찍했던 차를 벗어나 도망치듯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출근하는 내내 후회가 몰려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사실 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각할 걸 알고 있었다. 아니, 8시 9분에 차에 올라탈 때부터 어느 정도 예감했다. 그렇다면 아이가 미처 못 챙긴 준비물을 챙겨서 다행이다 여기고, 따뜻한 말을 건넬 수는 없었을까? 오늘도 아이의 욕구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나만 생각하느라 아들 마음에 생채기만 냈다. 그것도 월요일 아침부터.


  워킹맘에게 여유로운 아침은 속절없는 기대다. 이날은 이래서, 저날은 저래서. 일찍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또 다른 일이 생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더 일찍 아이들을 깨우면 되는 것을 매일 아침이 어렵다. 일어나 문을 열면 맞는 아침 공기마저 '지금부터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 같다. 일전에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무릎을 탁 치며 메모해 두었던 나희덕 시인의 시가 있다.


저녁을 위하여 / 나희덕

"엄마, 천천히 가요"
아이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칭얼거린다.
그 팔을 끌어당기면서
아침부터 나는 아이에게 저녁을 가르친다.
기다림을, 참으라는 것을 가르친다
"자, 착하지? 조금만 가면 돼.
이따 저녁에 만나려면 가서 잘 놀아야지."
마음이 급한 내 팔에 끌려올 때마다
아이의 팔이 조금씩 늘어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이를 남에게 맡겨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다른 것들에 더욱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게 삶이라는 것을
모질게도 가르치려는 것일까.
해종일 잘 견디어야 저녁이 온다고,
사랑하는 것들은 어두워져서야
이부자리에 팔과 다리를 섞을 수 있다고
모든 아침은 우리에게 말한다.
오늘은 저도 발꿈치가 아픈지
막무가내로 울면서 절름거린다.
"자, 착하지?"
아이의 눈가를 훔쳐주다가
나는 문득 이 눈부실 햇살을 버리고 싶다.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1994)


  아이의 팔이 조금씩 늘어나는 풍경을 그려본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다른 것들에 매달리는 삶은 바로 나의 삶, 그리고 당신의 삶 아닌가. 아이의 눈가를 훔쳐주다가 문득 눈부신 햇살을 버리고 싶은 탄식은 오늘 내가 느낀 마음이다. 그래. 뭣이 중헌디.




  점심때까지도 아침의 기분이 나를 짓눌렀다. '아이는 괜찮을까? 어떤 얼굴로 교실에 들어섰을까?' 후회와 반성은 사과를 해야겠다는 의지로 이어졌다. 오 박사님은 부모가 사과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 아이를 만나면 사과부터 해야지. 오늘 아침에 별 것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여서 미안하다고. 책은 잘 챙겨갔냐고.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한 번 더 다짐했다.


  학원에서 뛰어나오는 아이가 외쳤다. "엄마, 나 부반장 됐어! 그리고 유찬이랑 포켓몬 고 친추해서 너무 좋아!" 아이의 하루는 즐거웠나 보다. 부반장 된 이야기부터 포켓몬 고 이야기까지 한참 듣다가 아침에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 화낸 거였어? 나는 그냥 짜증 낸 줄 알았네. 책도 내일까지 가져오면 된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주니 고맙다. 그나저나 '화'와 '짜증'의 차이는 뭐지? 짜증은 화보다 더 일상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뜨끔. 또 반성한다.


  내일은 무결한 아침을 맞이하겠다. 아쉬운 소리, 서운한 소리 한마디 없는. 옷 입을 때까지 옷 입으라고 말하는 대신 기다려줘야지. 이 닦으라고 딱! 한 번만 말해야지. 내일은 카라얀에 빙의해서 '아침'이라는 악장을 완벽하게 연주해봐야겠다. 불협화음 없이 우아하고 부드러운 선율로만 채워보겠다. 아직 나에게는 무결할 수 있는 수 만 번의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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