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면 엄마는 온 가족의 속옷과 수건을 삶았다. 원래의 모양과 색을 잃은 큼지막한 양은 대야가 가스레인지 위에서 하이타이 냄새를 뿜어댔다. 그 냄새는 토요일의 시작을 알리는 냄새이자 우리집 냄새가 되었다. 엄마는 매일 청소를 했지만 토요일에는 창틀과 창문, 욕실 청소를 더해서 했다. 좀 커서는 나도 청소를 거들었다. 내 구역은 주로 거실과 부엌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엄마만의 원칙이 있었다. 엄마는 방의 가구를 먼저 닦고 난 후 바닥을 닦았다. 부엌을 닦을 때에는 깨끗한 걸레로 싱크대와 냉장고를 먼저 닦아야 한다. 정해진 구역을 다 닦은 걸레로는 마지막으로 현관 바닥을 닦는다. 본분을 다 한 걸레는 어김없이 삶아졌다.
지금도 엄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수저랑 컵, 그릇을 끓는 물에 삶는다. 그래야만 그릇에서 물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서 나도 그러기를 종용하듯 이야기하지만 그런 말들은 귓바퀴 언저리에서 소멸해 버린다.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앞집 손주가 쓰던 블록을 물려받았다. 엄마는 오래된 블록을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면서 가지러 오라고 했다. 장난감을 집에 가지고 왔는데 블록이 도통 끼워지지를 않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블록의 모양이 약간씩 뒤틀려있었다. 엄마는 블록을 삶았다고 고백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정말 잠깐씩만 넣었다고 하는데 끓는 물에 데쳐진 블록은 오그라들면서 아귀가 맞지 않게 되어 버렸다. 친정 엄마는 삶기력은 종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집안일을 늘 즐겁게 한 것은 아니다. 청소나 설거지를 할 때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같은 말을 하며 소리를 높이고는 했다. 거기에 신세 한탄이 더해지거나, 가끔 분에 못 이겨 본인의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쏟아냈다. 신기하게 지금 나도 집에서 그러고 있는 것을 보면(매우 적게 일함에도) 집안일을 하는 순간 염색체 어딘가에서 이러한 레퍼토리가 일정 부분 발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목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집안일을 멈추는 경우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애석하게도 나는 엄마의 청소력과 잔소리에 지친 나머지 부작용의 산물로 전락해버렸다. 부끄럽지만 정리 정돈을 하지 못하고, 물욕마저 충만하여 미니멀리즘이 대세인 2022년에도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는 주부계의 이단아이다. 엄마는 결혼하고 아이들 돌잔치 때 말고는 우리집에 절대 방문하지 않았는데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불 보듯 뻔하게 눈뜨고 볼 수 없는 집안 꼴이 그려져서'라는 웃픈 이유가 따라붙었다. 얼마 전 엄마가 고구마를 캐러 밭에(친정 아빠 밭이 우리 동네에 있다) 오는 길에 우리집에 잠깐 들렀는데 현관에 들어서면서 어디 이사 가냐고 하는 말이 뼈를 때렸다. 심지어 토요일 아침 청소를 한 번 끝낸 상황이었는데. 따쉬.
그렇다고 엄마가 미니멀한 사람은 아니다. 김장도 직접 하고 철별로 온갖 청과 담금주, 고추장까지 직접 담근다. 취미가 우표수집이고, 어릴 적 동생과 내가 쓴 편지와 상장, 일기장까지 모두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미니멀리스트는 아닌 게 맞다. 그렇다면 엄마 집은 왜 늘 깨끗한가. 대체 엄마의 살림살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그 이유 두 가지를 깨우치게 된 일이 있었다. 지난 주말 시아버지가 따준 대봉 한 박스를 들고 친정에 갔다. 내가 안마의자에 누워 자는 동안 대봉은 겉옷을 벗고 곶감 걸이에 꽂혀 베란다 바람 드는 곳에 걸렸다.
"엄마 이거 언제 다 했어?"
"언제 하긴 바로 깎아서 걸어놓았지. 이따 이따 하면 못해"
그래! 엄마한테는 "이따가"가 없다. 나는 늘 이따가 이따가, 오늘 못하면 내일, 내일 못하면 주말에, 주말에 못하면 다음 주에. 이러니까 살림이 안 되는 것이다. 엄마는 미루지 않는다. 눈앞의 일감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날 해치워버리는 탓에 손이며 무릎이며 허리며 성한 곳이 없다. 엄마가 하도 손가락을 아파하길래 식기세척기를 알아보겠다고 하니 "먹고 바로바로 치워야지 언제 기계에 넣고 돌리냐"며 그럴 시간에 얼른 치워버리고 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음식 재료도 마찬가지다. 재료가 얼마큼 생기든 즉시 손질하고 다듬어서 바로 요리할 때 쓸 수 있도록 만들어 버린다.
어느 날 친정집 냉동실을 열 일이 있었는데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참 우리 엄마지만 적응 안 된다. 냉동실은 흡사 도서관 서가를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전쟁이 일어나도 몇 달은 거뜬히 버틸 만큼 반듯하게 정리된 냉동실은 과연 국가대표 주부 9단의 일면을 보여준다.
엄마의 냉동실
재활용 쓰레기도 음식물 쓰레기도 모아서 처리하는 나와 달리 엄마집은 재활용 쓰레기도 음식물 쓰레기도 외출할 때마다 있는 대로 가지고 나간다. 물론 각종 버리기 담당은 아빠다.
아이들은 외할머니 집에 가면 어김없이 치킨을 외친다. 시골에 있는 우리집은 배달이 되지를 않아 늘 배달 음식이 고픈 사정이 있다. 덕분에 나도 그런 날 오랜만에 단짠단짠 한 치킨을 맛볼 수 있기에 아이들을 크게 말리지 않는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으려고 상을 펼쳤다. 행주를 가져와 닦으려는데 엄마가 소리친다.
"가운데서 빼지 말고, 맨 오른쪽 것부터 빼서 써!"
"알아, 알아."
하면서 서랍을 열었다. 하얗게 삶아진 행주 여남은 개가 일열 종대로 나란히 개어져 어서 꺼내 써달라고 방긋 웃고 있는 것이다.
행주를 오른쪽부터 꺼내 쓰는 이유는 먼저 삶아져서 정리된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오른쪽 것을 빼서 쓰고 오른쪽으로 밀어놓으면 새로 삶아진 행주를 왼쪽에 채워 넣는 시스템인 것이다.
행주 시스템
엄마집에는 행주 하나에도 "시스템"이 있다. 이 물건은 여기에, 이 물건은 저기에. 순서는 이렇게, 계절별로 무게별로 크기별로. 아담한 집이지만 이사도 없이 30년을 내리 산 집 같지 않게 짐이 없다. 그런데 그 짐들이 말끔히 정리되어 안 보이는 것일 뿐이다.
몇 년 전 곤도 마리에 열풍이 불었을 때 나도 살림에 열을 올리며 미니멀리즘을 흉내 내 보려고 한 적이 있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비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이런 문장들을 메모해두었다. 성격 탓을 하는 게 비겁하지만 난 미니멀리즘과 맞지 않는 성격인 게 확실했다. 심술궂게도 '경제활동인구'에 속한다면 마땅히 적당한 소비를 해야 하거늘! 하는 마음까지도 들었다.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것처럼 구입한 책들은 누군가의 손에 넘겨졌다. 사실 나는 바다 건너 곤도 마리에 씨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눈앞의 엄마를 보고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지난여름 먼지 하나 없는 창틀을 보고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이렇게 깔끔한 거야?"
"아이고, 나는 네 외할머니 발끝도 못 따라가. 외할머니는 얼마나 깔끔했는 줄 아니?"
레퍼토리가 또 시작된다. 나는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외할머니지만 엄마의 기억 속 외할머니는 언제나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살아계신다. 그릇이며, 솥뚜껑이 얼마나 반질반질했는지, 일꾼들까지 더부살이했던 큰 살림을 어떻게 꾸리셨는지. 어떤 마음 씀씀이로 동네 가난한 사람들을 거두셨는지. 수 백번 들은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존경심이 차오른다. 엄마는 외할머니 발끝도 못 따라가서 이 정도인데 나는 어쩌나.
오늘은 엄마 그림자라도 총총 따라가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해묵은 옷들을 정리했다. 버릴 것들을 꺼내고 나와있는 것들을 집어넣기만 했는데도 조금 나아졌다. 이참에 나도 한 번 시스템을 만들어봐? 그래도 내가 우리 외할머니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았는데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알아, 30년 뒤쯤에는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