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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Dec 03. 2022

내 생애 첫 자기 주도 학습

  꼭 그런 애들이 있다. 시험기간에 공부 하나도 안 한 것 같은데 성적 잘 나오는 애들. 고백하자면 내가 그런 애들 중 한 명이었다. 시험기간이라고 딱히 티 내면서 공부하지 않았다. 시험 범위 정도만 파악하고 교과서랑 노트 필기 한 두 번 읽고 가면 성적이 꽤 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애들은 '같이 놀 거 다 놀았는데 쟨 왜 점수가 잘 나와?' 속으로 억울해 했을 거고, 엄마는... 엄마는... '조금만 신경 써서 공부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텐데'했다. 불성실했던 내 공부스타일이 엄마를 '조금만'의 늪에 빠져버리게 만들었다. 얄궂게도 나란 애는 시키면 더 하기 싫은 불치병에 걸린 아이였다. 엄마가 "공부 좀 해!" 하면 더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는 일기장에 이런 말들을 끼적였다.


세상은 왜 우리를 숫자 속에 가두는 걸까? 왜 학교는 나라는 사람을 숫자로 규정짓지 못해 안달 난 걸까?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는데, 어른들은 나보다 더 많이 살았는데도 그 진실을 왜 모르는 걸까?

  바야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머리 나고 처음으로 '이제 진짜 공부해야겠네'하고 정신 차리니 고3이었다. 누가 봐도 성실함이 부족했던 나는 때늦은 자기 주도 학습에 열을 올렸지만 점수를 끌어올리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해는 2002년. 기다리고 기다렸던 한일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고3이라니. 오호 통재라. 그래도 나만 고3인 것은 아니기에 마음을 달래며 축구 응원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매일 아침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한 두 숟가락 욱여넣고, 넥타이를 손에 쥔 채 통학버스를 향해 뛰었다.


  벼슬도 그런 벼슬이 없고, 유세도 그런 유세가 없었다. 고3이 뭐라고. 점수는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고, 마음이 급해져서 엄마한테 수학 과외시켜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빠듯한 살림에 과외를 두 달 보내줬다. 어느 날에는 숨이 안 쉬어진다고 난리. 코 밑에 여드름 났다고 짜증. 배 아프다고 투정. 한 마디로 지랄을 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수능 전차는 속도를 올리며 달려 나갔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한 시간 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왔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에 귀가했다. 기특함에 도취되어 현관문을 열면 엄마는 내 침대에서 자다 깨 "고생했어" 했다. 그렇게 다그칠 때는 안 하더니 뒤늦게 열을 올리는 나를 보며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수능을 코앞에 둔 늦은 가을. 학교는 본격 수능 체제에 들어갔다. 수능 시정표에 맞춰 생활했고, 시험실 대형으로 앉아 종일 자습을 이어갔다. 추워진 날씨에 긴장감까지 더해 몸에 한기가 들었다. 살이 내리고 신경은 예민해졌다. 엄마는 행여나 딸내미 기력 떨어질까 아침저녁으로 인삼이며 꿀차며 바지런히 챙겨 주었다. 


  새벽 1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인생에 공부하다가 쓰러지는 날이 오다니. 수험생 역할에 도취된 내가 들어오자 엄마가 자다 깨서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포근해. 내 침대. 솜이불 아래 따스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아. 무심해도 어쩜 이렇게 무심할까. 고3이라고 깝죽거리면서 정작 엄마가 날 위해 어떤 배경이 되어주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매일 밤 엄마는 늦게 귀가하는 날 위해 내 침대에 먼저 누워있었다. 쌀쌀한 가을밤 딸이 추울까 봐. 아침부터 밤까지 나보다 먼저 눈 뜨고 늦게 눈 감는 엄마. 유난히 힘들었던 그날 한참을 울었다. 이불 속이 따뜻해서.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젯밤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딸이 내 품을 파고들며 "아, 포근해!" 했다. 순간 20년 전 엄마가 날 위해 덥혀 놓았던 내 침대의 포근함이 떠올랐다. 그랬지. 우리 엄마가 그랬지.




  날씨가 쌀쌀해졌다. 이제 수능을 다시 보는 꿈같은 것은 더 이상 꾸지 않는다. 그래도 찬 바람이 불면 내 인생 가장 치열했던 그 시절과 엄마의 온기가 떠오른다. 마침 어제 잠든 딸을 곁에 두고 읽은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책에 나온 구절이 마음에 콕 박혔다.


  나는 결국 그것이 할머니의 일관된 삶의 자세인 것을 이해했다. 부모로서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고 생색내지 않는 것. 자식에게 어떤 기대나 대리만족도 추구하지 않아 부채의식이나 부담감을 주지 않는 것. 부모로서 고생스러움은 지극히 당연히 당신이 담당해야 할 몫이고, 잘한 것이나 좋은 것이 있다면 모두 자식의 몫으로 돌리는 것. 그리고 아버지와 고모들은 그 보이지 않는 응원 속에서 용기를 내어 각자 가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삶과 부딪쳤다.
  
  지지와 격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진정으로 힘이 된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받을 때 진짜 산소가 되어 그의 폐로 스며들고 근육에 힘이 된다. 지지와 격려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서서히 긍정적인 힘을 잃고 부담이 되어간다. 격려의 탈을 쓴 부담은 마치 일산화탄소와 같이, 산소인 척하고 우리 몸속에 스며들지만 팔다리의 힘을 빼고 결국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든다.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중에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순간을 맞을 때면 물 없이 사막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막막한 초보 엄마는 육아서며 유튜브며 도움이라도 될 만한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보면 무릎을 탁 치는 부모의 말들을 건지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입도 떼기 전에 잊어버리고 만다. 이제부터라도 내게 산소처럼 공급됐던 엄마의 지지와 격려를 떠올려 보려고 한다. 적어도 '나'라는 임상 결과로 확인된 엄마의 사랑을 떠올린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찾아 헤매는 시간도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엄마가 절대적으로 산소만 준 것은 아니지만. 흠.


  맹모(孟母)가 따로 있나. 딸을 위해 이부자리를 덥혀 놓았던 우리 엄마가 맹모고, 아이 잘 키워보겠다고 유튜브를 헤매는 나도 맹모다. 유 아 맹모, 아임 맹모. 위 아 맹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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