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키우기는 아들 키우기보다 어렵다. 딸들 옷은 왜 이렇게 예쁜 게 많은지 고르는 것부터 있는 것을 조합해서 입히는 것까지 뭐 하나 쉽지가 않다. 신발은 또 어떻고. 크록스와 운동화로 1년을 사는 아들과 달리 딸의 신발은 반짝이 구두, 샌들, 슬리퍼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머리띠며 가방이며 딸들의 아이템은 셀 수가 없다. 패션감각이 없는 나 같은 엄마는 딸을 예쁘게 키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보통만큼 키우기도 어렵다. 우리 부부는 양가 첫 결혼이라 물려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아이들 옷을 대부분 사 입힐 수밖에 없다. 중고 거래를 하기도 하지만 헌 옷은 티가 나기 마련이라 계절이 바뀌면 한 두 벌씩은 구입한다. 백화점에 가면 애들 옷값이 어른 옷값만 한 게 바가지를 쓰는 것 같고, 인터넷에서 고르자니 입혀볼 수가 없어 사이즈도 어렵고, 소재감도 와닿지가 않는다. 이럴 때는 등 하원할 때 다른 친구들이 입는 옷을 보며 팁을 얻기도 하고 딸 키우는 친구들한테 물어보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딸 키우기의 정점은 아침마다 딸아이의 머리를 묶는 일이다. 고객님이 특별히 원하는 머리스타일이 있는 날에는 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보통은 하나로 묶을 것인지 양갈래로 묶을 것인지만 정하면 다음은 수월하다. 눈앞에 보이는 머리끈이나 핀의 종류에 따라 스타일이 결정되기도 한다. 딸이 가장 선호하는 머리는 하나로 올려 묶고 핀을 찌르는 것이다. 어느 날 다른 친구가 리본 머리를 하고 왔다고 해서 열심히 리본 모양을 만들어 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딸의 얇고 가는 머리카락이 끈에서 빠져나와 미끄러져버리며 리본 모양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가끔 인스타에서 '#딸머리묶기'로 검색을 하거나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손끝이 야물지 못한 엄마는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해내기가 쉽지 않다.
아침에 딸 머리를 묶이고 있자면 어렸을 적 엄마가 내 머리를 묶어주던 시간이 생각난다. 나는 앞에서 인형을 갖고 놀거나 책을 읽었고, 엄마는 한참을 정성 들여 내 머리를 묶었다. 엄마는 나의 머리를 묶는 일을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온 정성을 다했다. 칙칙 물을 뿌리고, 가느다란 참빗으로 머리를 몇 번씩 빗어 내리며 한 올도 빠져나오지 않도록 했다. 나의 시그니처 머리는 양갈래로 나누어 네 갈래로 땋은 머리였다. 엄마의 야무진 손 끝에서 내 머리는 예술 작품처럼 탄생했다. 가끔은 가르마를 지그재그로 타기도 하고, 양 갈래로 나눠 묶은 머리에 기다란끈을 감아 '삐삐머리'랑 똑같이 만들기도 했다. 양쪽 위로 동그랗게 말아 올려 '뿌까 머리'를 하거나 거기서 몇 가닥 뽑아 늘어뜨린'춘리 머리'도 해주셨다. 가족 모임이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는 가운데로 디스코 땋기를 했고, 피아노 대회가 있는 날에는 양쪽으로 디스코 땋기를 하고 리본으로 마무리해 주셨다.
엄마의 단출하고 검소한 옷차림에 비하면 내 옷은 늘 화려했다. 머리끈 하나도 양쪽 꼭 짝이 맞아야만 했고, 운동화도 하얀색만 신고 다녔다. 어릴 적부터 말괄량이에 천방지축이라 흰 운동화는 금세 더러워졌을 텐데. 딸을 키우다 보니 운동화를 하얗게 빨아 신기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겨 내보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엄마는 '내 딸 이렇게 내 손 타고 밖에 나갔다. 집에서 사랑받는 아이니 함부로 하지 말아라.'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매일 엄마의 사랑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결계처럼 치고 나갔다.
오늘 아침에도 핑크 손가방을 이걸 들까 저 걸 들까 고민하는 딸을 앉혀 놓고 머리를 묶였다. 기껏해야 세 갈래 땋기를 하는 것인데도 가르마의 균형이나 머리의 높낮이까지 신경 쓸 것이 많다. 자기는 조그만 손가방 하나만 들고, 유치원 가방은 나보고 들라는 딸을 보며 웃는다. 오늘 나도 딸에게 사랑을 입혀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