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우리를 숫자 속에 가두는 걸까? 왜 학교는 나라는 사람을 숫자로 규정짓지 못해 안달 난 걸까?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는데, 어른들은 나보다 더 많이 살았는데도 그 진실을 왜 모르는 걸까?
나는 결국 그것이 할머니의 일관된 삶의 자세인 것을 이해했다. 부모로서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고 생색내지 않는 것. 자식에게 어떤 기대나 대리만족도 추구하지 않아 부채의식이나 부담감을 주지 않는 것. 부모로서 고생스러움은 지극히 당연히 당신이 담당해야 할 몫이고, 잘한 것이나 좋은 것이 있다면 모두 자식의 몫으로 돌리는 것. 그리고 아버지와 고모들은 그 보이지 않는 응원 속에서 용기를 내어 각자 가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삶과 부딪쳤다.
지지와 격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진정으로 힘이 된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받을 때 진짜 산소가 되어 그의 폐로 스며들고 근육에 힘이 된다. 지지와 격려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서서히 긍정적인 힘을 잃고 부담이 되어간다. 격려의 탈을 쓴 부담은 마치 일산화탄소와 같이, 산소인 척하고 우리 몸속에 스며들지만 팔다리의 힘을 빼고 결국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든다.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