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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Jul 14. 2022

엄마 제사상에는 뭐 올려줄까?

영원히 천방지축 딸, 철부지 며느리이고 싶다

  어느 날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옆 동네에 사는 나도 아는 이모다. 그날 통화는 퇴직 후 삼식이가 되어 별다른 취미 없이 소파에 누워 지내는 아저씨에 대한 하소연이 주를 이뤘다. 보다 못한 이모가 하루는 아들 P를 부르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P야! 너는 나중에 네 아빠 제사 지낼 때 편하겠다. 아빠 제사상에는 리모컨 하나를 올려놓아라!"


그런데 그 아들 대답이 더 가관이다.

"응 알았어. 그런데 엄마 제사상에는 뭐 올려줄까?"


"응 내 제사상에는 아메리카노랑 조각 케이크 올려줘!"

엄마한테 전해 듣는 이모와 아들 P의 대화가 참 재밌었다. 이야기 끝에 엄마가 한마디 덧붙이셨다.


"수람아, 너는 아빠 제사상에 올릴 거 많아서 힘들겠다. 아빠가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 많아야지."


나는 웃다가 순간 얼어버렸다.


  엄마, 아빠의 제사상이라니. 엄마, 아빠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엄마의 이야기를 다큐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나는 왜 P처럼 받아치지 못했나. 웃지도 못하고 대답도 못하고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얼마 전에 둘째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을 했다. 링거를 맞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산책하다가 야외에 마련된 벤치에 잠시 앉았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아있는 큰 아이와 통화를 했다. 내일은 학교를 누구와 가고, 하교 후에는 어떤 스케줄로 움직이는지, 할머니와 아빠를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날 것인지 한 번 더 일러두는 내용이었다. 옆에는 다른 어르신이 앉아 계셨고, 전화를 끊고는 괜히 무안해서 "아휴, 아이가 아프니까 온 집이 난리네요." 넋두리를 했다.(아줌마 다됐다) 그랬더니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


"애기 엄마, 애 아프다고만 그러간. 부모가 아파도 똑같아. 온 집안이 난리야."


  그러네. 그렇겠네.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소아 병실에만 있었지 다른 입원 환자들은 크게 눈에 들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아픈 어른들이 많은 건지. 그분들의 나이는 어떻고, 어떤 병환이 있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이 발동하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환자들 곁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보호자들이 반, 유니폼으로 보이는 파란 반팔 상의를 입 간병인 분들이 나머지 절반 있었다. 외상환자는 물론이고 입원 환자는 대부분 링거를 꽂고 있으니 식사부터 화장실 가는 일, 씻는 일, 물 떠 오는 일 등 어느 것 하나 혼자서 쉬이 할 수가 없다. 큰 힘이 드는 일은 아니더라도 누군가 곁에 있어야지만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면 파란 유니폼을 입은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퇴근을 하시는 듯했다. 자녀로 보이는 보호자들이 오기도 하고, 혼자서 지내는 분들도 계셨다.


  나라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역시나 떠올리기도 싫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힘들다. 그렇다고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는 없다. 나조차 눈 깜짝하니 나이 마흔이 되었는데 그 시간만큼 부모님의 시간도 흘렀다. 야속한 시간은 지금도 무심히 흐르고 있다. 




  지난봄, 집 뒤편으로 시아버지가 새로 나무를 사다 심으셨다. 그러고는 30년 후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되면 우리는 없어도 우리 OO이(큰 아이) 자식들이 멋진 풍경을 볼 거야."


  이야기를 듣자마자 남편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100세 시대인데 아버지 100세 되시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건강하게 오래 살 생각만 하시라는 걱정어린 질책이 이어졌다. 요즘 들어 집 여기저기를 돌보면서 '우리 없을 때'라고 하시며, 자꾸 나중을 이야기하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말씀이 애달프다. 그럴 때마다 자식들 잔소리는 메아리처럼 따라붙는다.


  친정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가열게 직장생활 사회생활하시던 때와 달리 지금은 우리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물건 구입부터 서류 제출, 인쇄물 출력, 신고 등등 자꾸 부탁을 하시다 보면 어쩐지 남편이나 내 눈치를 보시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친정 아빠의 부탁 전화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딸, 월요일에 많이 바쁘냐?"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면 무조건 심부름이다. 전에는 꼭 할 거면서도 "내가 꼭 가야 돼?" 내지는 "내가 꼭 해야 돼?" 군말을 일삼았는데 요즘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아빠 목소리가 짠해서 싫다. 차라리 그냥 엄마처럼 당연하게 "네가 해줘야지. 너 아니면 누가 해." 이러셨으면 좋겠는데.


  이별이 두렵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을 거다. 상상하지 않을 거다. 엄마 아빠한테 평생 왈가닥 천방지축 딸이고 싶다. 시부모님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옆에 얹혀사는 철없는 며느리이고 싶다. 그저 오래도록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딸, 철부지 며느리이고 싶다. 친정 엄마한테는 "멸치볶음 해 줘. 양파 피클 해줘. 백숙 먹고 싶어!"를 외치고, 밭에는 내려가 보지도 않으면서 "어머니, 고추랑 오이 따놓으신 거 있나요?" 해맑게 묻는 게으른 며느리로 살고 싶다. 이렇게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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