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시댁은 열 걸음이면 닿고, 친정은 이십 분 거리에 있다. 부모님 입장에서 자식이 가까이에서 살면 아무래도 멀리 있는 것보다 더 의지되고 든든할 것이다. 그런데 양가 어른들을 보고 있자면 자식이 가까이 사는 것보다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더 큰 복으로 보인다. 나와 남편은 양쪽 집안의 첫째라 큰 아이가 부모님들의 첫 손주였다.
젊은 시절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들의 모습은 아득하기만 한데, 환갑이 다 되어갈 때쯤 만난 손주가 그 시절의 기억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불러일으킨 게 분명했다. 부모님들은 꼬물대는 아이가 울 때에도, 분유를 먹을 때도, 기저귀를 갈 때도, 응가를 할 때도, 자는 얼굴을 보면서도 "너 어렸을 때는"을 반복해서 이야기하셨다.
"네가 울음끝이 짧았어. 잠은 또 얼마나 잘 자는지 재워놓고 시장 보고 오면 그대로 자고 있었다니까."
"어릴 때 눈이 어찌나 동그랬는지 주변에서 아동복 모델시키라고 많이도 말했었어."
"애가 축 처져서 팔을 이쪽으로 하면 휙,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면 또 휙. 얼굴은 창백하지. 죽는구나 싶어서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어갔는데 딱 깨서 의사를 보면서 방긋방긋 웃는데. 나 참. 의사는 이런 애를 왜 데리고 왔냐며 쳐다보는데 황당했지."
누워있는 아기는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는데도 부모님들은 하품이며 딸꾹질이며 손짓 발짓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 세라 보고 또 보셨다. 아이가 안 생길 때 아이 이야기는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는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속으로는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싶었다. 둘째는 둘째대로 뽀얗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애교 넘치는 딸이라 지금껏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깊고 찐하며 각양각색이다.
자고로 부지런해야 간식이며 과일도 챙겨 먹는 법인데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의 게으름은 시어머니의 손을 바쁘게 만든다. 살면서 수박 한 번을 쪼개기를 해봤을까, 꽃 보고 사진이나 몇 장 찍었지 과실수에 달린 과일들을 따다 먹기를 했을까. 시어머니는 게으른 며느리를 대신해 바지런한 손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 과일을 깎아 갖다 주신다.
올해 처음으로 참외씨를 심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여름에 참외 따먹기는 글렀다 싶었다. 그런데 딱 한 알 열린 참외가 제법 큼직하게 자라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랑 참외 노랗게 익으면 따먹자고 이야기하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엊그제 어머니가 그 참외 한 알을 딴 것이다. "참외 익었다." 하며 아이들 맛보라고 깎아다 주셨는데 와!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그 길로 다시 어머니한테 달려갔다. "엄마, 맛도 못 보셨죠? 얼른 드셔 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며느리가 입 앞에 들이미는 참외를 드시면서 "우와! 진짜 맛있다." 하셨다. 먹기 좋게 자른 제철 과일은 할머니의 사랑이다.
집에서 딴 자두, 비파, 시어머니가 먹기좋게 잘라주신 수박
연둣빛이 짙어지는 진초록의 여름이 오면 정원과 집 근처 산에서 곤충이며 벌레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시아버지는 곤충이며 벌레며, 달팽이, 두더지 등 눈에 보이는 대로 아이들을 불러 꼭 한 번씩 보게 해 주신다. 잎사귀 뒤에 낳은 곤충의 알이나 매미가 벗고 간 허물, 개미들이 옮기고 있는 곤충의 사체,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거미줄 같은 것들 말이다.
해마다 7,8월이면 집 뒤편의 복숭아나무 아래로 장수풍뎅이랑 사슴벌레가 찾아온다. 뒤뜰은 그늘지고 습한 데다 여름이면 거미줄 천지라 별이랑도 잘 가지 않는다. 지난주에 시아버지가 아이들 보라고 복숭아를 먹고 있는 장수풍뎅이를 통째로 들어다가 문 앞 그늘에 놓아두셨다. 하교한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장수풍뎅이다!"를 외친다. 할아버지는 "아, 이게 장수풍뎅이야? 할아버지는 뭔지도 몰랐네." 한마디 덧붙이시는데 그러면 큰 아이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차이를 읊는다. 뒤이어 시아버지가 "우아! 우리 OO이 모르는 게 없네." 하며 감탄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방과후 수업에서 배워온 이야기나 Why책에서 알게 된 이야기를 우쭐해서 전하면 어김없이 시아버지는 "아 그러냐~ 할아버지는 몰랐네." 하신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모르는 척이다.
얼마전 할아버지가 발견한 매미 탈피
친정 아빠는 몇 년 전부터 주말마다 밭을 가꾸고 계신다. 내가 보기에는 텃밭이 아니라 농장 수준이지만 좋은 흙과 부지런한 엄마 아빠의 손길이 만나 계절마다 온갖 과일과 채소들이 자란다. 상추, 고추, 가지 같은 텃밭 채소는 우리집에도 있긴 하지만 아빠의 농장에서만 수확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얼마 전에 "딸 오늘 약속 있냐, 감자 캐러 올래? 우리 손주들 감자도 한 번 캐봐야지"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고구마 심을 때도 부르시더니 이번에는 감자 수확이다.
아이들이 가면 이것저것 챙겨야 하고, 채소에 상처가 나거나 느려서 효율이 떨어지는데도 꼭 아이들 체험해보라고 기다려주신다. 우리 애들이 고구마도 심어보고, 감자도 캐보고, 옥수수도 따 보고, 무도 뽑아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빠 덕분이다. 나무 심을 때는 아이들한테 거름도 뿌려보라고 하고, 물도 직접 주게 하신다. 이런 것도 해봐야 한다면서 작은 일이라도 꼭 임무라면서 맡기신다. 사십 평생 나도 안 해본 일을 아이가 여덟 살 인생에 다 해본다. 외할아버지의 사랑은 기다려주기다.
지난 6월 외할아버지 농장에서 감자 수확중인 첫째
친정 엄마의 손주 사랑은 결이 다르다. 어렸을 적 엄마는 무서웠다. 엄마의 완벽하고 원칙주의적인 성향은 자유롭고 어린 나에게 속박으로 느껴졌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꽤 힘들었다. 무계획적이고 게으른 나와 달리 엄마는 철두철미하고 결벽이 증(症)인 수준이라 나는 그런 부분에서 더 엇나갔다. 그랬던 엄마가 몸이 아프고 난 후 다른 사람처럼 달라졌다. 특히 손주가 생기고 나서는 '허용적인 사람'으로 변신을 했다. 엄마의 인생에서 "안돼"라는 말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제일 먼저 준 것도 아이스크림 맛을 알게 해 준 것도 모두 엄마다. 당류가 어쩌고 성분이 어쩌고 하는 나를 뒤로하고 딱 잘라 "이런 것도 먹어봐야 해. 자꾸 못 먹게 하면 나중에 더 찾는다"하신다. 친정에는 간식 창고가 있고, 아이들은 엄마집에 들어서자마자 투니버스와 재능TV 채널을 꾹꾹 누른다.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엄마는 "아이, 너도 다 보고 컸어!" 하는데 사실 할 말은 없다. 외할머니의 사랑은 몰래 주는 사랑이다.
작년 추석, 보름달을 보고 소원비는 아이들
작년 추석날 밤, 보름달이 휘영청 떴다. 아이들에게 추석날에는 보름달 보고 소원을 비는 거라고 나가서 소원 빌고 오라고 했더니 둘이서 한참을 두 손 모아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속없는 엄마가 뭐라고 빌었는지 여러 번 캐물었는데 힌트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 전에 둘째가 내 귀에 속삭였다. "엄마 나 아까 뭐라고 소원 빌었는지 말해줄까?" 하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랑 우리 가족 모두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하고 빌었어"하는 것이다. 다섯 살짜리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걸까? 나는 "우와 그렇게 소원 빌었어? 우리 딸 소원 꼭 이루어질 거야. 감동이야." 하면서 꼭 안아줬다.
어제는 둘째가 <꼬부랑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읽다가 왜 우리 할머니들은 진짜 할머니가 아니냐고 물었다. 내가 의아해서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더니 할머니들이 이 할머니처럼 '할머니'인 것이 아니라 '아줌마'같다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허리가 굽고 지팡이를 짚고, 하얗게 머리가 세었는데 아이 눈에는 할머니들이 그렇지 않아 보인 모양이다. 내가 웃으면서 할머니들이 아직 젊고 건강하셔서 그런 거라고 설명했는데 아무래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뒤이어 "엄마도 할머니가 돼?"물어왔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도 나이가 들면 할머니가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도 지금 낡고 있어?" 했다. 늙는다는 말이 생각이 나지 않은 모양이다. 안 그래도 두피가 근질근질하면서 흰머리가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던 터라 서글픈 표정으로 "엄마도 더 낡고 싶지 않다"하며 맞장구쳤다. 내 표정이 슬퍼 보였을까. 아이는 나를 보더니"엄마 낡지 마"하고 꼭 안아줬다. 둘째 품이 따뜻했다. 이 아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더 큰 사랑을 부모님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