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두를 빚는 시간이다. 나는 엄청나게 뚱뚱하거나 기다란 만두를 만들거나 뿔을 달거나 빗금을 치거 나하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더했다. 바닥에 소를 다 흘린다고 늘 타박을 받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사실 손끝으로 상상한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나이 불문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요즘 엄마들은 밀가루 놀이며, 클레이며 돈을 들여 아이들 체험 활동을 시키는데 돌아보면 어릴 때 송편 빚고, 새알 반죽하고 했던 것이 전부 촉감놀이였다. 여기에 더해 송편이 쪄 나오는 순간, 혹은 내가 만든 새알 반죽이 팥죽 위로 떠오르는 순간! "내 거다!"하고 외치는 기분이란! 내가 만들었으면 내 작품이다. 동생과 나는 각자의 작품을 골라 맛있게 먹었다.
어릴 때 엄마는 인형놀이나 병원놀이 같은 것에 응해주지 않았다. 늘 말이 고팠던 나는 말 수 적은 엄마 대신 또래 친구들을 사귀어 밖에서 놀고 들어왔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엄마를 보고 있는 시간이 엄마랑 노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나를 조수처럼 부려주기만 기다렸던 그 시간. 싱크대는 가슴팍까지 오고, 엄마를 올려다봐야 했던 그 시절. 요란함 없이 조물조물 뚝딱, 맛난 요리를 척척 해내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멋졌다.
영화 <라따뚜이>(2007)에는 혹독한 음식 비평가 '안톤 이고'가 생쥐 '레미'가 해준 라따뚜이를 먹고 눈을 번쩍 뜨는 장면이 나온다. 안톤 이고가 레미의 라따뚜이를 입에 넣는 순간 안톤 이고가 앉아 있는 곳은 그의 고향집 식탁으로 변한다. 노을 지는 저녁 시간 엄마는 부엌에서 분주하고, 이제 막 음식을 만드는 따뜻한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식탁 한가운데에 앉아서 엄마가 해 준 라따뚜이를 먹던 어린 자신이 떠오른 것이다.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가 해 줬던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다시 먹고 싶어?"
엄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홍어애탕"
예전에 홍어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에 갈 일이 있어서 홍어애탕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그때 그 맛이 안 났다면서 이야기하셨다. 온 가족이 홍어를 좋아해서 외할머니가 홍어애탕을 끓이면 구 남매가 둘러앉아 그릇 긁는 소리가 나도록 먹었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엄마가 홍어애탕을 좋아했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홍어에 '애'라는 부분이 있는 줄도 몰랐다. 엄마에게도 김치만두 같은 음식이 있었구나.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엄마에게 맛있는 홍어애탕을 사드리고 싶다. 엄마도 그리운 엄마를 만날 수 있도록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짧지 않은 인생. 참 많은 음식을 먹고살았다.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비싼 호텔 레스토랑에도 가봤다. 그래도 우리는 인생 최고의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늘 엄마가, 아빠가, 할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을 떠올린다.
음식은 시간의 장벽을 허문다. 타임머신처럼 우리를 그때로 데려가 준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식의 힘. 그 힘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비록 아이들이 엄마가 해 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떠올리라고 하면 '라면'을 떠올릴지라도. 훗날 아이들의 타임머신이 되어 줄 음식을 생각하며 제법 비장하게 라면을 끓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