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버이날카네이션을 받았다. 해마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정성스럽게도 만들어온다. 요즘은 어찌나 예쁜 디자인이며 도안이 많은지 종류도 모양도 다양하다. 제 아무리 카네이션이라도 그 수명은 다른 만들기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냉장고에 붙여두었다가 장식장 위에 올려두었다가 집안 곳곳을 한참 여행한다. 이리저리 떠돌다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먼지가 내려앉아 다음 카네이션을 받기 전에 쓰레기통으로 가고 만다. 그런 카네이션을 그냥 버릴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준 카네이션을 차에 두었다. 크게 시야를 방해하지 않아 하나는 대시보드 위에 두고 하나는 룸미러 근처에 붙여두었다.며칠 후 친구와 함께 볼일이 있어 근처 광역시까지 가야 했다. 차에 올라탄 친구는 깔깔 웃으며,
"알아, 알아, 너 부모인 거 온 세상이 다 알아." 했다.
볼일을 마친 후 대도시의 향기를 만끽하려고 근사한 레스토랑에들렀다.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 픽업에 늦을세라 차에 서둘러 올라탔다. 아뿔싸. 차에 타는 순간 차가 미묘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을 받았다.
"어? 왜 이래?"
나와보니 운전석 앞 쪽 바퀴가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평소 근거리 출퇴근만 하고, 운전도 무리해서 하지 않는 편이라 생각지도 못한 사고에 당황했다.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한 후 기사님이 오셔서 펑크 난 곳을 찾아 보여주셨다. 큼지막한 나사 하나가 타이어에 박혀있었다. 기사님은 빠른 손놀림으로 꿀쫀디기처럼 생긴 고무를 펑크 난 곳에 쑥쑥 집어넣어 구멍 난 곳을 메워주셨다. 타이어는 금세 제 모습을 되찾았다. 기사님은 "이제 가시면 돼요." 하며 쿨하게 사라졌다.
그 말을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집까지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임시방편으로 보이는 꿀쫀디기에 목숨을 걸 수 없었다. 더군다나 친구까지 함께 가야 하는데 말이다. 일단 가장 가까운 타이어 수리점으로 향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나 △△에 왔는데 타이어 펑크가 났어. 긴급출동 불러서 고쳤는데 이대로는 불안해서 도저히 못 내려가겠어. 근처에서 타이어 교체하고 가려고."
"집에 타이어 사놓은 것 있어. 괜히 바가지 쓰지 말고 천천히 내려와. 그 정도 거리는 괜찮아."
그 사이 타이어 수리점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타이어 펑크가 나서 긴급출동 불렀는데 한 번 봐주시겠어요? OO시까지 가야 하는데 불안해서요. 교체를 해야 할까요?"
"수리를 했는데 오셨다고요?"
"네,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너무 불안해서요."
"예~ 봐드릴게요."
수리점 사장님은 펑크 수리는 잘 되었고, 공기압을 맞춰주겠다며 네 바퀴에 바람을 넣어주셨다. 그러면서 앞바퀴 마모가 많이 된 편이라 교체할 때가 되기는 했는데 지금 당장 OO시에 못 갈 정도는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며 비용도 안 받으셨다.
내 불안함이 친구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침을 꿀꺽 삼키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96km. 이제부터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거리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후 내내 2차로에서 시속 80km를 넘지 않게 주행했다. 혹시나 타이어가 펑크 나면 어쩌나. 펑크 나면 바퀴가 빠지지는 않겠지. 나는 그렇다 치고 친구는 무슨 잘못인가. 우리 둘에 딸린 식구가 몇인가. 안전하게. 안전하게. 속도계 보고. 카네이션 한 번 보고. 내비게이션 보고. 카네이션 한 번 보고. 카네이션. 그래, 소중한 나의 천사들이 준 카네이션.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해지고, 핸들을 하도 꼭 잡아 어깨가 아픈데도 카네이션에 적힌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되뇌며 운전했다.
IC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자 긴장이 탁 풀렸다. 친구도 "아이고 우리 수람이 고생했어" 칭찬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 앞에서 무용담을 한참 풀어냈다.
"엄마가 어떻게 무사히 도착한 줄 알아? 다 우리 포동이 동글이 덕분이었다니까. 너희들이 만들어 준 카네이션이 엄마 차를 보호해 준거야.사랑의 힘으로 엄마의 안전을 지켜준 수호신이었어!"
날 지켜 준 그날의 카네이션
다음 날 아침부터 아이들은 차에 올라타면 카네이션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지킨 영광의 카네이션말이다.
꽃의 예쁜 색이 바래갈 때쯤 친정에 들러 카네이션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 들으라고 목소리도 높였다. 한참을 듣고 있던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빠도 우리 딸이 어버이날 써준 편지 차에 넣고 다니는데."
"응? 내가? 무슨 편지?"
아빠는 차에 가서 편지를 가지고 올라오셨다. 접힌 부분이 누렇게 변한 편지를 조심히 펼쳐보니 30년 전 어버이날 내가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 동생과 저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으시죠? 그동안 말 안 들어서 죄송해요. 앞으로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아빠께 효도할게요. 수람 올림.
특별할 것도 없는 감사 편지였다. 예쁜 카드도 아니고, 봉투도 없는 열 살짜리 딸의 편지를 30년 동안 품고 다녔다니. 차를 바꿔도 해외에 나갈 때는 지갑에 넣어서. 근무하다 힘들면 그 편지를 꺼내보고는 하셨다고 했다. 참 나. 나는 내 새끼한테 받은 카네이션 자랑하려고 했더니 이러기야 아빠.
이제는 카네이션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기 쉽지 않다. 삐뚤빼뚤 글씨에 어딘가 허술한 DIY 카네이션. 그 카네이션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나의 몫이다. 감사한 마음은 뒷전이고 만들기에 심취했을 아이의 시간을 떠올리며 웃음을 짓는다. 친구들 것을 곁눈질도 해보고, 예쁘게 꾸미려고 이 색 저 색 색연필을 열심히 바꿨을 고사리손을 떠올린다. 카네이션을 받았던 5월 그날의 힘으로 엄마와 아빠는 한동안을 산다. 그 시간은 30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