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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Feb 28. 2022

어떤 질문과 씨름하고 있습니까?

<질문 빈곤 사회> 강남순


질문은 없고, 정답만 있다


한국은 정답 사회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는 그렇다. 모두에게 동일한 인생의 경로를 기대하고, 그 길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것처럼 불안해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하고, 좋은 일자리를 위해 스펙을 쌓는다.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집을 사고 퇴직 후엔 모아둔 돈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을 ‘정답’처럼 여겼다.


정답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질문은 WHY가 아니라 HOW에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나요?’ ‘편안한 노후를 위해 어떻게 재테크해야 하나요?’ 이런 식이다. 왜 내가 대학에 가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고, 노후가 나에게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 빈곤 사회>가 주목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출처: yes24.com



질문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존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이다. 나를 둘러싼 삶의 진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래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 가짜뉴스, 혐오와 차별이 확산되는 이유는 생각과 질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리더가 자신의 이익을 좇을 뿐 스스로 성찰하지 않을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혐오와 차별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우리 주변에 이런 인물들이 가득 진 치고 있다. 진지하게 사유하고 질문하지 않으면 진실과 정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시대이다.


많은 사람이 진실과 사실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지 않으며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소위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사는 것이다. 진실과 사실이 아니라 오직 자기편의 주장만이 중요한 사람들이 다수로 자리 잡게 될 때, 한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사회지만 내면적으로는 전체주의의 덫이 곳곳에 드리우게 된다. 개인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집단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출처: 로이터연합뉴스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질문들


<질문 빈곤 사회>의 저자인 강남순 교수는  ‘함께 잘 살아가는 삶’을 위한 질문을 던진다. 다층적인 사회 문제들에 대해 그녀만의 고유한 시선이 담긴 진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독자들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권력과 언론, 사각지대의 소수자, 능력주의와 반지성주의, 교육의 후진성, 혐오와 차별, 반민주성, 생명경시 등 우리 사회의 부조리하고 왜곡된 모습들과 마주하게 한다.


활자를 통해 날아오는 묵직한 질문들을 받아내며 나의 생각과 삶의 감각들도 깨어났다. 그동안 내가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살아온 문제들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나의 이익과 무관한 소수자들에게 무관심했고, 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에 침묵했다. ‘함께 잘 살아가는 삶’ 보다 ‘나와 우리 가족이 편안하게 사는 삶’에만 예민했다. 저자의 질문은 나의 시선을 돌렸다.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그 비판적 성찰이 기존의 현실에서 무엇이 결여되어 있고, 무엇이 변화되어야 할 문제들인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사안들에 대해 비판적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변화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출처: pixaboy.com




질문에는 질문하는 이의 관심사와 정체성이 담겨있다. 내가 던지는 질문이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나는 지금 어떤 질문과 씨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아마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가치를 쫓아 살아가고 있는지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원하던 삶이 맞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권력과 미디어가 던지는 잘못된 질문이 아니라, 삶을 행복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좋은 질문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나는 이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나의 남은 삶에서 씨름하며 살 문제들의 우선순위를 어떤 기준으로, 어떠한 가치관에 근거하여 정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자신만이 지속해서 구성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만이, 우리 각자의 삶이 지닌 무의미성과 부조리를 넘어서는 용기와 열정을 지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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